Here and now 지금, 여기

by 보리밥고봉


young-yogi-attractive-woman-savasana-pose-white-loft-backgro_1163-3106.jpg 사바아사나


1시간가량 진행되는 요가 수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있다. 바로 마지막 5~10분간의 사바아사나이다. 사바아사나, 이른바 송장자세. 수련 후에는 죽은 것처럼 몸을 편안하게 내려놓고 몸과 마음을 완전히 이완한다. 누워있다 보면 몸의 열기가 점점 식으면서 가빴던 호흡이 안정되어 가는 것이 느껴진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에 들 수도 있지만, 선생님은 의식적으로 깨어있는 상태와 잠에 드는 상태 사이에서 머물라고 했다. 의식적으로 휴식을 하고 있음이 느껴지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런 평화도 잠깐, 어느 정도 몸의 열기가 식고 나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옆에 있는 분은 고수 같은데... 요가 몇 년 하셨을까? 오늘 저녁은 햄버거를 사먹을까? 간단히 먹고 일찍 자야 내일도 일찍 일어나겠지... 그나저나 아까 그 말을 전해줄걸 그랬어.'

수련 중에는 바쁘게 몸을 움직이느라 딴생각을 할 틈도 없었는데, 오히려 수련 후에 가만히 누워있자니 더 생각이 복잡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다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과거로 돌아가지도, 미래의 시간을 끌어오지도 말고 현재에 머무는 거예요."


나도 모르게 지난 것들을 후회하고 다가올 일에 대해 걱정하느라 엉뚱한 곳에 내 집중력을 쓰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다시 이 수련실의 사바아사나로 돌아온다. 나는 이미 몸에 힘을 다 뺐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내일을 걱정하느라 미간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미세한 구멍이 생긴 풍선처럼 몸이 조금씩 이완되는 걸 느끼면서 나도 모르게 얼마나 몸에 힘을 주고 긴장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1시간 동안 열심히 몸을 움직였는데, 집에 가는 길에는 몸보다 마음이 더 후련한 것이 정말 이상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정신과에서는 here and now, 즉 '지금 여기'를 중요하게 다룬다. 지금 내가 어떤 생각 때문에 고통스러운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도록 충분히 이야기한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데 우리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몇일 전으로 돌아가 이불킥을 하기도 하고 다가오는 시험이나 평가에 대해 걱정하느라 잠을 못 이루기도 한다. 그러면 부끄러웠던 과거의 현장에 와있는 것처럼, 불안한 미래에 갑자기 던져진 것처럼 우리는 그 현장을 생생하게 느낀다. 얼마나 생생하면 가슴이 빠르게 뛰고 손에 땀을 쥐기도 한다. 오늘도, 내일도, 내년에도 '지금'을 살아갈 뿐인데 우리 마음은 조금만 방심하면 어디로든 훌쩍 떠나버리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무 걱정 없던 우리의 선조는 후손을 남기기 전에 이미 죽어버렸으니까.

'아까 그 버섯은 왠지 이상했는데... 먹지 말라고 말렸어야했어... 내일 매머드 사냥에 인원이 부족하지 않나?'

아무 걱정 없이 독버섯을 먹고 매머드와 정면승부한 선조들은 다 죽었다. 이렇게 근심으로 가득 찬 선조들만 살아남았고, 이러한 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뼛속 깊이 본능으로 저장된 것이다. 그런데 21세기의 우리 삶에는 후회하고 걱정한다고 바꿀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많아졌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나 내 눈앞의 행복은 버려두고 단지 후회하느라, 걱정하느라 현재를 낭비하기에는 조금 아깝게 되었다.


타임머신이 개발되지 않는 이상 과거를 바꾸거나 미래를 미리 알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는 명백하다. 사건은 바꿀 수 없지만, 그 사건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안타깝게도 과거의 기억으로 고통받는 사례는 정말 많다. 목숨을 위협 받을 정도의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사건을 재경험하기도 한다. 마치 몸 전체의 모든 감각들이 그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데, 위협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도 갑자기 떠오르면서 그 곳에 가있는 것처럼 온몸이 각성되는 것이다. 매일 매일 불가피한 위험에 대비해서 항상 보초를 서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사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인생에서 크고 작은 부정적인 경험들을 가지고 있고, 과거의 기억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생각과 감정에 영향을 주며 일상생활과 인간관계를 망가뜨리기도 한다. 누구나 과거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다시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우선 우리는 '생각'과 '감정'을 구분해야 한다. '철수는 조별과제에서 발표를 맡게 되자 저번처럼 발표내용을 다 까먹어버릴 것 같아 불안했다.'라는 문장을 보자.

'조별과제에서 발표를 맡게 되자'는 사건,

'저번처럼 발표내용을 다 까먹어버릴 것 같아'는 생각, 즉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에 대한 것이고

'불안했다'는 감정이다.

감정은 생각에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은 부정적인 과거 경험을 데이터로 삼는 경우가 많아 논리적이지 못하다. 게다가 우리가 이것저것 따져볼 틈도 없이 자동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이것을 '자동적 사고'라고 하는데, 우리는 무논리로 밀고 들어오는 멍청한 생각에 감정적으로 휘둘리고 마는 것이다. 우리가 늘 하는 '나는 안 될 거야' 같은 생각도 사실은 자동적 사고의 일종이다. 정신과에서는 이런 자동적 사고를 찾기 위해 다양한 작업을 하는데, 여러 개의 자동적 사고를 모으다 보면 그 사이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보인다. 이것을 '핵심 신념'이라고 부르고 감정에 영향을 주는 핵심 신념이 어떤 오류를 가지고 있는지 따져보기도 한다.

우리가 논리 없는 생각에 얼마나 속절없이 당하는지는 한 문장의 일기만 써봐도 알 수 있다. 십중팔구는 '조별과제에서 발표를 맡게 돼서 불안하다.' 이렇게 생각이 생략된 문장을 쓸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생각과 감정을 통해 앞서 언급했던 사건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가 결정된다.



불안이.jpg 인사이드 아웃 2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에는 찰떡같은 비유가 등장한다. 불안이는 불안한 기억들을 모아 신념을 만드는데, 라일리를 위하던 불안이의 마음과 달리 기억이 모여 자라난 핵심신념은 'I'm not good enough'였다. 선조의 본능대로 후회하고 걱정하며 불안한 기억들을 모았지만, 라일리는 '난 아직 부족해'라는 핵심신념 아래에서 무엇을 경험하든 '내가 부족해서 날 싫어하나봐'와 같은 부정적인 자동적 사고를 하게 되었다. 자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났던 과거 일들을 후회하고 부진할 것 같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보지 못하고 옆에서 자신을 지지해주는 친구들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앞서 언급한 '자동적 사고'와 '핵신 신념'을 스스로 찾아내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과거 부정적인 기억에서 부정적인 자동적 사고, 부정적인 핵심 신념으로 과거의 고통을 다시 경험하는 이 연쇄적인 고리는 계속 우리를 괴롭히는데, 어떻게 이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좀 더 손쉬운 방법은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냄새나는 과거를 다 파헤쳐보지 않아도 괜찮다. 나의 자동적 사고가 뭔지, 핵심 신념이 뭔지 파헤쳐보지 않아도 간단하게 뚜껑을 덮어버리고 없는셈치면 더 이상 냄새는 나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 신경을 끄고 현재에 집중하는 데에도 연습이 필요한데,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명상이다. 의식적으로 '지금, 여기'에 머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침묵 속에서 가만히 앉아 생각을 비우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우리 뇌는 끊임없이 지나간 일을 복기하고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각을 비우려고 하면 할수록 이런저런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래서 나는 그 중에서도 '움직이는 명상'이라고 불리는 요가를 권하고 싶다. 명상에 대한 걱정과 달리 선생님의 가이드를 따라가다보면 몰입을 통해서 너무 자연스럽게 현재에 머물 수 있게 된다. 1시간 수업이 10분만에 끝난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의식적으로 호흡하고, 몸을 조절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움직이는 동안 몸의 감각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사바아사나에서 몸의 긴장을 푸는 것처럼, 잠깐이라도 마음의 불필요한 후회와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다.


요가는 우리에게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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