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각자의 초상으로

나의 요가 여정

by 보리밥고봉



지금까지의 요가 여정에서 요가는 나에게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사실 따져보면 그다지 긴 여정도 아니었다. 요가가 내 하루의 일부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 겨우 반년을 넘을까도 의문스럽다. 나는 요가 선생님도 아니고, 어떤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것도 아니다. 뭘 깨달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요가의 심오한 역사와 철학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르겠다. 나는 탐구하고 싶은 주제가 생기면 유튜브나 어떤 검색창보다도 가장 먼저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관련된 책을 찾아보는 사람인데 요가에 대한 책조차 읽어본 일이 없다. 누군가에게 요가를 소개할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으나 나의 수련일지와 요가에 대한 짧은 철학을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한참 열심히 요가원을 다닐 때, 친구들은 요가의 어떤 점이 좋은지 물어보곤 했다. 이에 시원하게 대답해 준 적은 없으나 잠들기 전에 골똘히 생각해 보곤 했다.

'그러게. 요가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은 거지?'

이 글이 그에 대한 대답이 될 수도 있겠다.






요가 수련일지를 풀어가기에 앞서 나의 요가 역사에 대해 묻는다면 짚고 넘어가는 것이 인지상정.


나는 이런저런 '합당한 이유'와 핑계로 몸을 움직이기를 마지막까지 미루는 사람이었고, 사실 지금도 그렇다. 대학생 시절, 방학이면 하루종일 자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하루 8시간 잠을 잔다는 가정 아래 인간은 삶의 3분의 1을 침대에서 보낸다고 하던가? 나의 경우에는 반대였다. 잠은 일종의 보상이자 도피처 같기도 했다. 방학의 3분의 2 가량을 침대에서 보냈고 그나마 깨어있을 때는 요가원을 갔다. 요가원을 찾은 것은 10시간 이상 잠을 자는 것에 최소한의 당위성을 부여하고 싶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쏟아지는 피트니스 전단지와 광고 중에서도 왜 요가인가 하는 것에는 불순한 의도가 섞여 있었다. 인터넷에서 플라잉 요가라는 것을 발견했고 아무것도 모르던 내 눈에는 해먹에서 즐기는 레저 같아 보이기도 했다. 대단한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 매달려서 그네를 타고, 해먹에 포근하게 안겨 있는 사람들은 즐거워 보였다. 집 근처 플라잉 요가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았지만 시간표 상으로 플라잉 요가는 일주일에 한 번뿐, 나머지 일주일에 네 번은 매트에서 하는 요가에 참여해야 했다. 시간표는 알록달록 화려했고 시간표는 알 수 없는 이름의 요가들로 가득 차있었다. 요가에는 종류도 참 다양한 것 같았다.


이렇게 약간은 불순하게 여름방학 2달, 겨울방학 2달씩 요가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수업마다 요가의 이름은 달랐지만 차이도 잘 모르겠고,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요상한 동작들을 보고 경악하며 수업을 따라가기에 바빴다. 매일 1시간 열심히 동작을 따라 하고 땀을 흘리는 것은 어쨌든 운동을 했다는 뿌듯함과 적당한 성취감을 안겨줬다. 집에 돌아와서는 조금 더 마음 편하게 빈둥거릴 수 있었다.


방학에 다니던 요가원은 본과 3학년, 그러니까 대학교 5학년에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1년간 방학이 없는 장장 53학점의 병원 실습을 시작한 것이다. 운동으로서의 요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나는 요가에 대해 잊고 살았다. 의대를 졸업하고는 1년의 인턴, 4년간의 전공의(레지던트)의 길이 내 앞에 있었다. 때때로 요가 생각이 났고 몸이 찌뿌둥했지만, 숨쉴틈도 없이 주 100시간 이상 병원에서 살며 최저시급을 간당간당하게 받던 나는 요가원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바빴던 시기가 지나고 내 인생에 느닷없는 무료함이 찾아왔다. 요가를 다시 시작할까 막연하게 생각하던 중 요가에 관심이 생긴 남자친구의 제안으로 함께 가까운 요가원을 찾았다. 선생님은 아쉬탕가 요가를 수련했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렇다고 아쉬탕가 수업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몇 가지의 요가수업이 함께 있었다. 선생님은 내가 생각하던 -표본 삼을 데이터도 얼마 없지만- 내 기준의 일반적인 운동 강사들보다 수강생들에게 인간적인 관심을 보였고 즐겁게 요가를 했으며, 사람들도 즐거운 마음으로 요가를 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수업 중에는 알 수 없는 산스크리트어로 구령을 붙였고, 몸의 움직임과 호흡을 섬세하게 설명했다. 바쁘게 수강생들을 살피며 핸즈온으로 각자에게 맞는 아사나를 찾아줬지만, 설명을 듣다 보면 아사나보다 호흡이 더 중요한 것 같았다. 수업전후로는 간단한 요가철학과 반다, 드리시티 같은 것들이 뭔지 설명해주기도 했다. 수업에 집중하다 보면 60분 수업이 10분 만에 끝나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이 전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게 요가구나 싶었고 단순히 운동을 넘어선 무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만난 요가는 운동이라기보다는 '수련'한다는 단어가 잘 어울렸다.



몇 개월 뒤, 발리로 한 달간의 여행을 떠났다. 단순한 관광은 아니었고 23일간의 요가 지도자 자격증 수업을 포함하는 여행이었다. 샬라(shala) - 요가 수련을 하는 공간, 단순한 장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 에 각국에서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였다.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고, 수업을 들으러 온 이유도 다양했다. 요가원을 차리고 강사가 되기 위해서, 취업에 도움이 되는 자격증일 것 같아서, 불안을 조절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자연 속에서 몇 주간 쉬고 싶어서... 각자가 수련해 온 요가도 모두 달랐고, 각자가 생각하는 요가도 제각각이었다. 발리에서 알게 된 요가는 단순히 아사나를 넘어서 삶의 태도이기도 했다.






나 혼자서 경험한 요가만 해도 계속해서 다른 의미를 가지고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왔는데, 이 세상에는 각자의 초상이 담긴, 얼마나 다양한 요가가 존재할까.


지금까지 요가를 하며 느낀 점은 요가와 우리 인생에는 놀랍게도 비슷한 점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요가를 통해 내 인생을 재조명하다보니 삶의 태도와 나만의 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정신과 진료실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 아직 그런 적은 없지만 - 의사로서 요가를 권하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


천의 얼굴을 가진 요가.

그 중에서도 내가 경험한 요가, 그리고 요가에서 발견한 짧은 인생철학을 풀어보고자 한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