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오가는 곳이라면 집과 가까운 곳이 좋다.
고등학교 때는 집에서 횡단보도 하나 건너서 운동장을 가로지르면 도착할 수 있는 학교를 다녔고, 수영을 다닐 때는 거실에서 창문으로 내려다보면 보이는 수영장에 다녔다. 지금도 자주 가는 카페는 작은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면 도착할 수 있다. 늦잠을 자도 허둥지둥 준비하면 10분 만에 출근할 수 있는 곳이 좋다. 기숙사 같은 병원 숙소를 배정받을 때도 계단으로 헐레벌떡 뛰쳐나갈 수 있도록 3층 이하로 부탁드렸다. (반 감긴 눈으로 갓 태어난 사슴처럼 계단을 겅중겅중 뛰어 내려갔던 지난날들을 떠올리면 3층 방을 받게 되어 정말 다행이었다.) 거처를 정할 때 1순위 고려사항은 항상 이동시간이었다. 여행을 다닐 때도, 아무리 매력적인 여행지라도 이동시간이 너무 길다면 그다지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만큼 이동시간은 줄일수록 좋을 뿐인 존재였고, 어딘가로 향하는 길을 즐긴 적은 딱히 없었다.
요가원은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멀다. 나의 라이프스타일로는 한두 번 걸어갈 만하지만 매일 오가기에는 조금 멀게 느껴졌다. 20분 이상의 거리를 매일 걸어서 오갔던 건 요가원이 처음이었던 것도 같다. 그래도 요가원을 다니기로 결심한 데에는 '여차하면 운전해서 가면 되니까'라는 생각도 한 몫했다.
어쨌든 시작해 보니, 왕복 40분의 산책은 꽤나 즐거웠다.
나에게는 시부야를 방불케 하는 큰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는데, 남자친구는 언제쯤 신호를 받을 수 있을지 계산해서 횡단보도가 아득한 곳부터 내 손을 붙들고 달리곤 했다. 남자친구는 취미로 달리기를 즐기던 터라 거의 끌려가는 것에 가깝긴 했지만, 횡단보도가 가까워지면 귀신같이 파란 불이 들어오곤 했다.
"어때!!! 뛰길 잘했지!"
"앗... 응……!"
그렇게 항상 약간의 땀을 흘리고 몸이 풀린 상태에서 요가를 시작했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자면 옆에서 하얀 털뭉치가 헥헥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아무도 모르게 강아지한테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강아지조차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횡단보도를 건너고 나면 롯데리아가 있다. 여름에는 요가를 마친 뒤에 롯데리아에 들려 토네이도를 즐기기도 했고, 설빙에서 빙수를 포장해 가다가 요가원 동료분들을 마주쳐서 야식이냐는 질문에 멋쩍게 웃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편의점에 들러 좋아하는 맥주와 과자를 한 봉지 집어 들었다. 걸어 다니다 보면 차로 다닐 때는 보이지 않았던 식당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통닭 굽는 냄새에 콧구멍을 벌렁거리기도 하고, 간판과 메뉴들을 눈에 담았다가 다음에 방문해 볼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매일 똑같은 요가원에서 같은 시퀀스의 요가를 하지만 매일 다르게 느끼는 것처럼, 요가원을 오갈 때도 같은 길인데도 항상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산책을 계기로 내가 살던 동네와 조금씩 친해지는 것 같았다. 10년 가까이 한 동네에 지내면서도 살기 좋은 곳이라고 느낀 적은 없었다. 나는 출근시간을 줄이기 위해 거주할 뿐이고 얼른 그 동네를 벗어나고 싶어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살기 좋은 동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몇 가지 들어오긴 했지만 크게 바뀐 건 없었다. 갈대가 무성하고 밤에는 반딧불이도 볼 수 있어서 좋아하는 강변 산책로도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여기는 처음부터 나쁘지 않은 동네였는데,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 방식이 변한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고 그 동네와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만족스러울 수 없다.
친구와 함께 보낸 시간만큼 친밀감을 느끼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