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의 미 대신 얻은 4가지
마상입은 첫 컴플레인
숨고에서 고수로 활동하며 좋은 리뷰가 차곡차곡 쌓였다.
리뷰는 또 다른 고객을 불러왔고, 그렇게 일에 대한 재미도 갈수록 커졌다.
나 스스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기분에 살짝 우쭐해지기도 했다.
적어도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처음 마주한 컴플레인은 내 진심이 통째로 외면당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 많이 쓰리고 오랫동안 아팠다.
고수 활동을 잠시 그만둘까도 고민했을 정도다.
하지만 그날의 경험은
사장으로서 내 그릇을 얼마나 더 키워야 하는지 조용한 깨달음을 준 사건이었다.
오지랖의 발단
친화력 있고 살가운 성격의 고객이었다.
최근 건강상의 이유로 직장을 그만둔 터라 주머니 사정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새 마음으로 꼭 집 정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의뢰 공간은 혼자 사는 원룸이었다.
본인이 최대한 돕겠다는 의지도 분명했다.
수화기 너머로 대단한 열의가 느껴졌다.
지금껏 일해본 경험상, 이렇게 적극적인 고객이라면
둘이서 빡세게 정리하면 하루면 충분한 결과가 나오는 편이었다.
나는 무엇보다 고객의 그 적극성이 마음에 쏙 들었다.
사실 나는 조금 기분파다.
그렇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선에서 가장 최저가로 진행하겠다고 약속부터 덜컥해 버린 채, 다음 날 집을 찾았다.
예상치 못한 변수들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변수가 많았다.
고객은 그냥 가볍게 몸이 안 좋은 정도가 아니었다.
최근 대 수술을 받았고, 회복도 거의 되지 않은 상태였다.
체중은 언뜻 보기에 100kg은 돼 보였다.
‘저 몸으로는 당장 힘쓰는 게 무리일 텐데…’ 싶었다.
한편으로는 몸도 아픈데 이렇게 어수선한 집에서 지내려니 얼마나 답답했을지 짐작이 갔다.
그래서 작업 규모는 벅찼지만 약속 대로 비용은 올리지 않기로 했다.
대신 혹시 모르니 이틀 정도 걸릴 수 있으니 그때까지 스케줄을 비워두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기분 좋게 웃으며 계약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나
돌아오는 길,
좋은 일을 한 것치곤 어쩐지 유난히 마음이 무겁다.
여러 가지 걱정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무엇보다 침대 배출이 가장 큰 문제였다.
고객 체중으로 침대가 많이 내려앉아 안전상 버려야 할 상태였고, 사이즈도 2인용이라 나 혼자서는 옮길 수 없었다.
턱없는 예산으로 선생님 한 분을 급히 섭외할 수밖에 없었다.
하필 선생님 스케줄이 오후부터 가능하다고 했지만
그래도 와달라고 했다
가구 배치가 어수선한 집은 정리 전에 배치부터 다시 잡아야 한다.
이 집은 전체 배치를 바꿔야 될 상황이다.
결국 오전 시간 동안 자잘한 가구부터 큰 가구까지
혼자 낑낑대며 옮길 수밖에 없었다.
침대를 옮길 때만 고객 도움을 잠깐 받았다.
제대로 정리는 아직 시작도 못 했는데, 오전에 이미 내 체력은 바닥이 났다.
점심 무렵,
고객이 점심 메뉴를 고르라고 했다.
솔직히 입맛은 없고 목만 탔다.
그래도 오후를 버티려면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 시원한 냉면을 시켰다.
그날따라 하는 일마다 안 풀렸다.
냉면이 고무줄같이 질겼다.
아무 말 않고 질겅질겅 씹는데
함께 먹던 고객이 갑자기 화장실로 달려갔다.
곧이어 구역질 소리가 들렸다.
수술 여파로 아직은 찬 음식이 몸에 받지 않았던 모양이다.
‘괜히 냉면을 먹자 했나…’
나도 더 이상 젓가락이 가지 않아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렇게 점심은 먹는 둥 마는 둥
급히 상을 치우고 다시 일을 이어갔다.
뭘 해도 안 풀리는 날
오후에 선생님이 도착했다.
일하다 말고 차를 빼달라는 전화가 여러 번 왔다.
서울 원룸은 늘 이렇다
저녁까지 둘이서 매달렸지만 작업은 생각만큼 진전되지 않았다.
그만큼 잔짐이 많았고, 컨펌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참 안 풀리는 날이다 싶다.
계속 자거나 누워 있는 고객을 깨워가며 컨펌을 받는 일이 쉽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이 모든 건, 초보 사장의 역량 부족으로 발생한 상황들이다.
애초에, 기분으로 낸 견적부터가 잘못이었다.
선생님을 먼저 보내고, 나는 늦은 밤까지 일을 이어갔다.
고객도 많이 지쳐 보였다.
몸이 힘드니 손과 머리가 따로 놀아. 한 번에 끝낼 일도 두세 번씩 반복했다.
그러다 급기야, 고객의 날 선 말 한마를 듣고서야
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언니, 진짜 멍청하다~”
‘언니? 멍청?’ 내가 뭘 지금 잘못 들었나?
나이도 한참 어린 고객에게 이렇게 선 넘는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결국 남은 일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후다닥 그 집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밤새 고민하다 결국 문자를 보냈다.
오늘까지 한 작업 비용은 받지 않을 테니
다른 업체를 알아보시라고 했다.
“제가 부족해서
고객님이 오늘 많이 고생하신 것 같습니다.”
고객의 답장은 의외였다.
꼭 내가 마무리해 주길 원한다고 했다.
형식적인 말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래. 나를 믿고 시작한 일이니 내가 끝까지 마무리하자.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마음으로 나는 다시 한번 그 집을 찾았다.
이미 물 건너간 유종의 미
다시 찾은 집은 여전히 진척이 보이지 않았다.
이날 고객은 중간에 외출까지 했다.
내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물건들은 바로 해결을 못하고 따로 모으다 보니 시간이 더 소요됐다.
외출에서 돌아온 고객의 품에는 강아지가 안겨있었다.
강아지에 정신이 팔린 고객은 컨펌은 하는 둥 마는 둥이었다.
강아지는 오자마자 내 작업 시트에 영역 표시까지 했다.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겨우겨우 일을 마쳤다
문 앞에는 버릴 옷과 신발더미가 쌓여 있었다.
나가면서 버릴 심산으로 고객에게 물었다.
근처에 “의류수거함이 어디 있을까요?”
내 물음에 참으로 건조한 답이 돌아왔다.
“몰라요.”
일단 밖에 나가면 어딘가 있겠지 싶어 고객에게 간다는 인사를 하고 버릴 것들을 주섬주섬 챙겨 나왔다.
첫째 날은 선생님이 먼저 가시면서 쓰레기를 챙겨나가신 덕분에 내가 안 챙겨도 됐었다.
막상 나오니 밤이라 보이지도 않고,
결국 그 무거운 것들을 이고
지하철을 타고 우리 동네 수거함까지 와서야 버릴 수 있었다.
마지막 신발 한 짝을 넣는 순간 유종의 미를 거뒀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잘 마무리된 줄 알았지만, 결국 유종의 미는 거두지 못했다.
유종의 미 대신 얻은 것
며칠 뒤, 이른 아침이었다.
찾는 옷이 없다며 고객에게 연락이 왔다.
사실 충분히 설명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그 순간 터져버린 것 같다.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아이와 외출 준비에 한창이던 중 전화를 받고 나니
그날의 불편했던 기억이 다시 살아났다.
당시의 나는 더 이상 이 집과 관련된 그 어떤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 집에서 겪었던 이틀간의 작업은 앞으로도 경험하고 싶지 않을 기억이기 때문이다
나는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들면 전체 환불을 해드리겠다고 먼저 말했다.
그러자 고객은 그 말에 몹시 기분이 상해했다
이후 장문의 불만 리뷰를 남겼고, 숨고에도 정식으로 항의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 일을 겪은 얼마동안은 이 일 자체가 하기 싫어졌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참에 일의 기준을 명확히 정해둘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로서 고객을 대하는 나만의 철칙이 생겼다.
일할 때 지키는 4가지 매뉴얼
1️일의 기준을 명확히 정한다.
내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범위를 분명히 정하고,
그 기준 안에서만 책임을 진다.
2️ 체력을 관리한다
하루 일정과 에너지를 계산해 일한다.
지쳐버리면 실력도 감정도 모두 흐트러진다.
3️감정보단 원칙으로 일한다
견적은 감정이 아닌 경험 데이터와 기준으로 판단한다.
감정이 아닌 원칙이 결국 신뢰를 만든다.
4️정해진 시간 안에 결과를 완성한다
약속한 시간에 일을 끝내는 것도 실력이다.
완벽은 마지막 단계에서 점검한다.
당시엔 속이 쓰렸지만, 지나고 보니 그날 제대로 공부한 날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숨고로부터 전화가 왔다.
고객이 항의한다고 했으니 그건가 보네 하고
(아주 조금은) 띠꺼운 마음으로 덤덤하게 전화를 받았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