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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각선생 Aug 13. 2023

함박눈이 오면 생각나는 사람

손이 많이 가는 고객님

함박눈이 펑펑 오는 날이면 나에겐 생각 나는 고객

이 있다.


고객)  "저,,  여보세요? 혹시 정리 ,,


나) 아 정리 문의 하시게요?


고객) 네. 여기는 낙성대 쪽이고 비용이 어쩌고 저쩌고 우물우물 블라블라 (뒤엔 잘 못 알아듣겠음)


통화를 마치고 고객님이 알려 준  찾아갔다

지하철역에 내려 한참 언덕배기를 올라가야 했다

오래된 빌라 하나가 는데 거기 반 지하에 있는 원룸이었다

남자 고객님이셨는데 숫기 없던 전화 목소리와 달리

나를 보자마자 살짝 놀라시며 걱정의 말부터 건네셨다

세상이 험한데 이렇게 여자 혼자 다니냐고 하

그 뒤 상담을 마칠 때까지 현관문을 닫지 않으셨다

혹시 내가 불편할까 배려해 주시는 이 느껴졌다

그보다 고객님의 집 상태가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

공부하시는 분이라 대부분 시간을 집에서 보냈으며

이곳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심지어 책도 읽으셨

이 상태로 몇 달을 생활하셨다고 했다


이유인즉슨 하던 사업을 말아먹고 집을 확 줄여서 이사 오는 바람에 이삿짐을 다 풀지 못했다고 했다

박스에 들은 채로 필요한 걸 꺼내 쓰다 보니 이렇게 되었단다

이쁘게 할 필요도 없으니 그저 물건이 눈에만 잘 띄게 해 달라 셨다


주로 전선과 책이 많았다

각종 셋톱박스, 멀티탭, 그리고 리모컨들이 진짜 많았다

못 찾아서 또 사고하다 보니 이만큼 늘었다고

그에 비해 옷이며 주방살림은 아주 간소했다

역시 사람마다 꽂히는 물건들이 다 다르구나 ~

새삼 또 .



어떤 박스는 꺼내야 되는 책들이 들었다고 하셨다

마침 근처에서  책장을 누가 버린 걸 봐둔 게 있다고 컨설팅 전까지 옮겨 놓겠다고 하셨다




컨설팅 당일 아침엔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다

집을 나설 때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겨울왕국을 걸으며

닿는 차가운 공기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예쁜 눈 사진을 찍어 운치 있게 고객님께 모닝 문자 보냈다

눈 오는 날  우리 운치 있게 일해보자는 내용이다

돌아오는 답변은 이런 나의 낭만을 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괜찮

현재 고객님은  정리에 시간과 비용을 쏟을 마음 상태가 아님을 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고객님께 눈처럼 깨끗한 방을 물해 드리겠노라 다짐했다.


고객님이 최근 허리를 다쳐 무거운 걸 잘 못 들겠다고 하셔서 정리선생님 한분과 셋이서 작업했다

하루에 마치려면 시간이 부족하다고 머 좀 미리 조립해 놓으라고 하면 무조건 못 한다고 하셨다

근데 참 신기한 건 그런 행동이 내 보호본능을 일으켰다

미운게 아니라 뭔가 하는 행동들이 짠하다

툴툴거리시면서도 또 할 건 하신다

누가 버려놓은 책장 두 통을 진짜 구해 놓으셨다

고객님이 기존에 갖고 계시던 것과 크기와 칼라가 맞춤이었다

이런 센스쟁이 고객님ᆢ

득템 했다고 칭찬을 마친 뒤, 자리 잡고 겉에 묻은 먼지를 한참 닦다 보니 왜 이렇게 멀쩡한 걸 버렸는지 알겠다

이건 먼지가 아니라 곰팡이였다

고객님은 크게 여의치 않으셨다

만약에 나중에 다시 또 곰팡이가 살아나면 락스에 희석시켜서 한번 더 닦으시라 했다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보이는 곰팡이꼼꼼히 닦는 게 최선이었다.


옷 정리 선생님께 부탁했다

고객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내가 맡는 편이다

깨끗이 닦은  책장은 가구배치를 마친 후, 고객님께 맡겼다

이곳에 꽂아야 될 책들을 직접 꽂으시라 했다

더불어 책상 위 문구정리도 고객님께 맡겼다

확연한 티도 안 나면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전선 정리는 나중에 마지막 타임에 셋이 박차를 가하기로 하고 나는 주방정리를 맡았다


주방정리 그리 어렵지 않았

근데 주방 아래쪽  다리 부분에 틈이 있었는데 거기 물든 아이스팩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혹시 집 무너질까 봐 이렇게 해 놓으신 거냐고 물으니

돌아오는 답변이 허무했다

어떻게 버릴지 몰라서 모아 놓으셨다고 했다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나의 모성애가 또 꿈틀댄다

몸을 엎드려서 일일이 정성스레 깔아놓은 아이스팩들을  다 꺼내서 가위로 잘라 물을 버렸다

며칠만 더 지났더라면 집에 홍수  상황이다

아무리 코팅된 종이라지만 물에 불어서 금방이라도 터질 상태에 놓였다

이렇게 손이 많이 간다 우리 고객님~


주방 정리를 가볍게 마치고 이제 차를 가할 차례다

본격적으로 셋이 붙어 전선들을 정리했다

전선들이 다  잘 보이게 해달라고 하셔서 미리 투명한 수납함을 주문해 놓으시라 했다

최대한 비용을 아끼려고 조립식 제품으로 권해드렸더니 쉬운 대로 쓸만하지 확 좋진 않다

미리 조립 좀 해 놓으시라 했더니 이런 거 잘 못 한다고 안 하셔서 할 수 없이 내가 했다

모서리가 딱딱 안 맞아서 만들다가 성격 버릴 뻔했다

그래도 셋이서 자취방에 둘러앉아서 도란도란 대화 나눠가며 일하니까 크게 힘들진 않았다

당장 쓸 전선만 따로 빼고 나머진 다 책장 위로 올렸다

고객님은 정도 많았다

정리하다가 좋은 거 나오면 선물도 주셨다

그렇게 셋이 힘을 모아 하루에 정리를 모두 쳤다.


주방 비포 애프터


전체 비포 애프터


일을 마칠 때쯤 고객님은 아침과 많이 달있었다

이 집이 얼마나 바뀌겠어? 정리가 그래봤자지,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살짝  믿는 눈치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호의적으로 바뀌셨다


로부터 몇 달이 지났다

반가운 목소리다

고객님은 그 사이 다른 동네로 이사를

이 집 보다 더 넓고 깨끗한 이었다

심지어 곰팡이도 없

집에서도 나에게 한번 더 정리를 부탁하셨다

함께 작업했던 선생님의 안부까지 물으시는 여생기셨다

그때보다 표정이 한결 좋아 보여서 나도 좋았다

두 번째 집무사히 정리를 마치고 집을 는데

고객님이 밖으로  따라 나와 지하철역까지  배웅을 해주셨다

그리고 일을 진짜 잘한다면서 리뷰를 하나 써주고 싶다고 하셨다

진심이 느껴졌다

고객님은 숨고 사이트를 통해 의뢰한 게 아니라서 당시

리뷰를 쓸 수가 없었는데 그래도 써주고 싶다고 방법까지 물으시는 그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나는 신규고객 보다 이렇게 기존에 만났던 고객을 더 자주 본다

원룸 특성상 이사도 자주 가고 그래서 일 년에 한 번꼴로 재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낯선 데면함 보단 만나서 반가움이 더 크다

살이라도 빠지면 건강도 염려되고 막 그런다

내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는 고객과 친구처럼 친척처럼

한 번씩 안부를 묻는 사이로 세월을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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