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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각선생 Sep 24. 2024

귀신의 집

사는 곳이 중요한 이유

부동산에서 집을 계약할 때 지저분한 집은 오랫동안 안 나간다. 실제 투자에 안목 높은 사람은 집이나 회사를 계약할 때 그 공간을 사용한 사람이나 심지어 옆집이 많이 지저분 해도 그 집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대상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냄새와 싸~한기운은 그냥 무시하고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나도 직업 상 많은 집을 가본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는 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친한 친구가 좋은 조건에 집이 나왔다고 이사 갈 거 같다고 좋아했다

기존 살던 집이 워낙 좁아 조금이라도 큰 평수 노래를 불렀던 터라 들뜬 친구를 보며 나 역시 기분이 좋았다

친구는 계약까지 속전속결 마치고 그 집에 가는 날 나도 같이 가자길레 들뜬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기대를 안고 친구를 따라간 집은 복도식 아파트인데 현관에 다다르자 절로 내 걸음을 멈칫거리게 했다.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기분 나쁜 냄새가 코를 확 찔렀다.

이게 무슨 냄새지? 친구한테 물어보기도 조심스럽다.

계약까지 마친 상황에서 집에 관해 안 좋은 말은 안 하는 게 예의고, 괜히 코가 쓸데없이 예민한 수도 있으니 말이다.

친구 눈치를 한번 쓱~ 살피니 표정을 알 수 없다. 장판과 도배를 어떻게 할지 그것만 생각하는 듯했다.

괜히 쓸데없는 말이 튀어나올 거 같아 얼른 내 입을 막고 숨을 참은 상태로 집부터 둘러봤다.

근데 어째 집 꼬락서니가 더 가관이다.

냄새도 냄새지만 주방 개수대 앞 상판에는 설거지하다 열받았는지 도끼로 찍은 듯한 자국이 선명하게 나있고, 환풍50년 전통 중국집도 보다는 깨끗하겠다.

대체 음식을 어떻게 튀기면 이렇게 시꺼먼 기름때가 환풍 전체를 덮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불 안 난 게 다행 정도다.

게다가 개수대 뚜껑을 막은 상태로 장시간 물을 틀어 놨흘러넘쳐 물 먹은 바닥재 사이로 틈이 심하게 벌어져 있었다.

대체 주방에서 뭔 지랄을 한 거야?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보고 있으면 올라오는 냄새부터 뭔가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


욕실도 만만치 않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곰팡이가 휘감은 상태다. 바로 앞이 산이라서 그런가 안방 벽 에도 곰팡이는 많았다.

이쯤 되니 친구에게 물어봐야겠다.  너는 지금 이 집에서 아무 냄새도 안나냐고 하니 친구가 어차피 업체 불러서 청소도 할 거고 도배도 장판도 새로 싹 다 할 거라고 했다.

다들 형편에 맞춰 사는 거지, 좋은 집에 살 줄 몰라서 덜 좋은 집에 일부러 들어가 사는 사람은 없을 거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친구에게 그래~ 정 붙이고 살면 거기가 고향이다~하며 우린 웃었다.

나는 들뜬 친구에게 예쁜 그릇 세트를 선물해 줬다.


그렇게 일은 빠른 속도로 진행다.

어느새 장판과 도배작업을 마쳤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입주 청소를 마친 날, 나는 한번 더 그 집을 방문했다.

현관문이 열린 상태로 청소업체 사장님과 친구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니 처음 갔던 날 맡았던 이상한 냄새는 여전했다. 조금 옅어졌을 뿐이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드나들고 환기시켜도 이 기분 나쁜 냄새는 안 없어지려나 보다.

" 이 냄새는 대체 언제 빠지는 거야. 굳이 티는 내지 않기로 한다.

어찌 된 일인지 아저씨와 대화 나누는 친구 표정이 어둡다.

대충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온 친구는 술 한잔 하자더니 않자마자 이야기를 꺼낸다.


한참 일하실 시간에 청소업체 사장님께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여기 일반 가정집 맞냐고 물어보셨단다.

혹시 중국인 여러 명이 사는 숙소냐는 질문에 친구 헛웃음이 나왔다.

모습을 직접 본 사람이면 누구 공감할 거다.

청소 업체 사장님 청소를 하시던 중, 일반 가정집 더러움 수준을 넘어선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어 청소하다 말고 내려가서 이 집 우편함을 열어 봤단다.

전 주인이 대체 뭐 하던 사람인지 궁금하셨단다.

그 안에는 독촉장 같은 고지서가 하나 있더란다.

오는 길 바로 옆집 할머니를 만나 이것저것 여쭤보니 할머니가 옆집 얘기에 학을 떼시더란다.

할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를 듣고 범상치 않음에 친구에게 아저씨가 웬만하면 이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말씀하셨단다.

그렇게 좋은 기운이 있던 집은 아닌 거 같다고 말이다.

앳되고 착한 인상의 친구가 딸 같고 안쓰럽던 모양이다.


원래 이 집에 아기 키우는 부부가 살았는데 언제부턴지 애기도 안 보이고 남편이랑 그렇게 부부싸움 해대서 주변에 폐였던 집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그 엄마 정신 온전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니 뭔가 퍼즐이 맞춰진다.

이 집 부부는 주로 주방에서 싸웠나 보다. 그래서 도끼자국인지 모를 칼자국이 찍혀 있던 것 같다.

게다가 떤 구석방을 청소할 때 자그마한 단지 한 개가 나왔다 한다.

집이 비워진 상태에서 단지만 덩그러니 있는 게 여간 찜찜한 게 아니다.

아마 샤머니즘 의식에 쓰였던 단지 같다고 했다.

그래혹시 몰라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단지를 어떻게 할 물어 구는 그 집에서 나온  전부  버려 달라고 다.

그 단지 속에 뭐가 들었는지 우린 아직 모른다.

뭔가 무서운 게 들었을 것만 같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친구는 결국 그 집에  이사 가지 않았다.

도배와 장판도 새로 하고, 소독과 청소까지 마쳤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전 주인의 취와 흔적들이

그 집에 사는 내내 구를 따라다닐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친구와 나는 요즘도 가끔 그 집 얘기를 한다.

귀신의 집이라 하면 서 알아듣는다.

때 그 집에 들어갔더라면 누구 하나 죽어서 나왔을 거라 당시를 회상한다.




집마다  가보면 특유의 기운이 있다.

방문상담을 마치고 나왔을 때 유난히 내 기가 쇠약해진 느낌이 드는 집들은 대체로 어둡다.

방향제로 애써 감추려 해도 좋은 향기가 나질 않는다.

며칠 뒤 그 집을 정리해 보면 몸정신이 아파복용 중인 약들이 많이 발견된다.


사람은 우울한 감정에 사로 잡히면  가장 먼저 어둡고 습한 환경을 조성하게 된다.

불도 안 켜고 잘 씻지도 , 청소도 안 하게 된다

만사가 귀찮다.

다들 살면서 한 번쯤 그럴 때가 다.

그럴 땐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 몸도 마음도 쉬어가는 편이다.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을 정도로 약하게 오면 다행오래가도록 무작정 방치해선 안 된다.

그때부터는 빠져나필사적으로 노력해 한다.

우울하게 조성된 환경은 사람의 감정을 더 우울하게 만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사는 집의 창문과 방문을 막을 정도로 답답하게 짐이 쌓인  환경, 지저분한 환경에서는 그 누구도 기분 좋은 을 맞이할 수 없다.

지금 내 마음이 암막커튼처럼 무겁고 어둡게 쳐진 상태라면 우선 창문부터 활짝 보자.

어느덧 선선한 가을바람이 다.

집안에 가둔 나쁜 에너지를 보낼 나이스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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