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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다정 Sep 22. 2023

까미노, 그 후의 이야기 1

우리는 산티아고 패밀리

  퇴직 후 늘 꿈꾸던 인생을 이제 막 길 위에 펼치기 시작하신 안 선생님, 치열하게 생존했던 20대를 지나 몸과 마음의 터닝포인트가 필요했던 민정 언니, 입대를 앞두고 딱 3주간의 시간이 허락되었던 상훈이, 그리고 아빠와 제대로 된 이별을 하고 싶었던 나. 서로 다른 사연과 이유로 우리는 각자 그곳으로 갔고, 다른 시간을 걸었지만 결국 운명처럼 한 곳에서 만났다.   

   

  까리온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저녁식사. 사실 그 한 끼의 식사가 우리 네 명 모두가 함께한 시간의 전부였다. 나와 민정 언니는 다음 날 버스로 이동했고 일정이 짧았던 상훈이도 곧 안 선생님과 헤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함께한 까미노는 곧 끝이 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길을, 그리고 서로를 잊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 뒤에도 그 이상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소중한 인연을 이어나갔다.      


  <나의 산티아고>라는 영화가 몇몇 독립영화관에서 상영되던 때였다. 이런 영화는 절대 각자 볼 수 없다며 굳이 한날한시에 서울에서 모였다. 남들이 주책이라 해도 좋았다. 누가 봐도 산티아고 다녀온 사람들 티를 맘껏 내고 싶어 가슴에 노란 화살표까지 붙이고 보았다. 영화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길 위에서 우리가 만났고 여전히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겐 이미 최고의 영화나 다름없었다.    

 

  멀리 동해에서 열린 나의 결혼식에도 다들 카메라 장비를 한 보따리 챙겨 달려와 주었다. 당시 상훈이는 결혼 스냅 보조 작가, 언니는 세계테마기행 PD였다. (지인 찬스란 바로 이런 것!) 드레스를 입은 신부였지만 이들과 함께 있으니 어김없이 순례자 모드가 되어 스틱을 쥐고 걷는 포즈로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우리가 모여서 수다를 떨면 그곳이 어디든 그 자리는 바로 까리온 알베르게의 주방이 되었다. 우리는 곧 안 선생님이 해주신 카레에 ‘¡Salud!’을 외치며 포도주를 마시던 순례자가 되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산티아고가 맺어준 가족이 되었다.     


  산티아고 아빠는 그 후로 산티아고를 3번이나 더 가시며 우리 모두의 부러움을 샀고 그 경험을 글과 강의로 나누고 계신다. 남미 배낭여행부터 자전거 전국 일주까지. 늘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인생 2막을 멋지게 살고 계신 선생님은 여전히 청춘, 그 자체이시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무릎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열을 가리킨다.

인생이라는 깊은 샘의 신선함을 이르는 말이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택하려는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Samuel Ullman, <청춘>


  

  한편 산티아고 큰언니는 본업인 PD로 돌아가 멋진 작품을 만들고 있다. 언니 덕분에 나는 아는 사람의 이름을 보기 위해 엔딩 크레딧을 뚫어져라 보는 설렘도 처음 느껴보았다. 영상으로, 책으로, 연극 무대로 언제든 산티아고 이야기를 풀어낼 준비가 되어있는 능력자 언니. 그런 언니 곁에 나는 언제까지고 바싹 붙어있을 것이다. 신선한 경험과 새로운 세상이라는 콩고물을 넙죽넙죽 받아먹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산티아고 막냇동생은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다녀오더니 이번에는 독일로 훌쩍 유학을 떠났다. 그때마다 나에게 외국 냄새 가득한 엽서를 써 보내는 그만의 감성이 여전하다. 그런 감성으로 외국인 여자들의 여심을 공략하는 것인지 항상 그 곁에는 외국인 여자친구가 있다. 독일에서는 부디 소시지 냄새에 적응 잘해서 스페인 햄들과의 트라우마도 극복하길 바랄 뿐이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산티아고를 향한 그리움.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우리의 인연은 계속될 것이다. 언젠가는 다시 그곳을 함께 걸을 날도 오지 않을까. 다시 한번 까미노가 보여줄 기적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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