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보통 퇴임자를 공표하지 않았다.
누가 그만두는지 가까이에서 일하는 사람 외는 잘 몰랐다.
심지어 보직 발표가 있은 후 그 자리에 새로운 이가 오는 것으로 전임자가 속칭 ‘잘렸음’을 알게 될 때도 있었다.
나가는 사람은 업무의 인계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조용히 빨리 흔적도 없이 사라져 주는 것. 그것이 암묵적인 룰이기도 했다.
절차를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프로세스는 HR 부서의 캐비닛에나 들어 있을 것이었다.
그에 반해, 신규 임원이 되거나 진급자는 사내 게시판에 공지했다.
신문에도 작게나마 이름이 나오기에 생각지도 못한 이로부터 축하 전화를 받기도 했다.
한 사람이 소리 소문 없이 내려간 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만인의 축하를 받으며 오르는 일은 하루 사이에 일어났다.
퇴임 통보를 받은 다음 날, 나는 출근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골백번은 왔을 전화가 신기하게도 그날은 아무에게서도 오지 않았다.
후임자가 정해졌을 테니 빨리 방을 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 날 느지막이 출근했다.
도둑고양이처럼 집무실로 들어갔다.
이틀 전만 해도 나는 그 방의 주인이었지만, 몇 시간 사이에 전세가 만료된 집에서 나가지 않고 버티는 불량 세입자가 되었다.
그만 둘 준비를 하지 않았던 터라 치울게 제법 있었다.
잠시 맡겨진 것이 내 것인 양, 영원할 것인 양,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이 땅에서 나의 쓸모가 끝날 때, 내가 자랑처럼 쌓아둔 쓰레기로 남은 이에게 불편을 끼치는 일이 없도록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누가 들어왔다. 한창 바쁜 신규 사업부의 이 상무였다.
내가 자매사에서 옮겨와 힘들 때, 새로운 보직을 맡아 헤맬 때, 고비마다 도와준 고마운 후배였다.
그가 입사할 때부터 알고 지냈으니 삼십 년 가까운 인연이었다.
나의 상황에 마음 아파해 주는 것을 그의 말과 표정에서 느낄 수 있었다.
두어 사람이 더 다녀갔다.
공감과 위로의 가치는 그 상황에 처해봐야 안다.
그 이후로 나는 후배들이 퇴직을 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의 불편함을 누르고 전화를 했다.
한 번은 딸기 한 통을 들고 집 앞에 찾아가 잠시 보고 오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그들의 힘든 마음이 조금이라도 내려놓아지기를 바랐다.
이제 할 일이 없고 시간이 남아 돌아서 그렇게 하는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
의자를 돌려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쓰던 집무실은 가까이에 야트막한 산이 보이고 볕이 잘 드는 아주 좋은 자리였다.
찾아오는 이마다 부러워하던 위치였다.
창 밖의 사람들은 나의 상황과는 달리 평소와 다름없이 바삐 오가고 있었다.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남들은 다른 이의 행복이나 불행에 관심이 없다.
남의 시선은 내가 만들어 낸 허상일 가능성이 높다.
신경도 쓰지 않는 그들을 의식해서 스스로를 규정짓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그렇게 바보처럼 살았다. 저기 보이는 게이트를 벗어나면 앞으로 다르게 살 수 있을까.
정리가 마무리되어 갈 즈음. 잠시 밖으로 나와 달라고 했다.
낯익은 얼굴들이 꽃다발을 들고 줄을 지어 서 있었다.
‘꽃은 축하의 의미일 텐데, 같이 일하지 않아도 되니 기쁘다는 뜻인가’라며 실없는 농담을 했던 것 같다.
여사원 몇은 눈물을 흘렸다. 고마웠다.
그들의 눈물마저 없었다면, 나의 삼십 년 회사 생활 마지막 퇴근길은 더 쓸쓸했을 것이다.
우리가 비록 일로 얽힌 관계였어도 사람 대 사람의 교감이 한 움큼도 없다고 느꼈다면 나의 모든 것이 부정당한 것 같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티 내지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최대한 멋지게 떠나야 했다.
사람들이 자리로 돌아간 뒤 방으로 들어왔다.
구성원 모두에게 감사와 용서를 구하는 작별의 메일을 썼다.
나의 마지막 업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