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ool Life1 7화 Spalsh

부제: 슬기로운 학교 생활, 본격 초딩 교사 성장 로망 소설

by Red 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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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ool Life1 Splash(회상 편)

부제: 슬기로운 학교 생활, 본격 초딩 교사 성장 로망 소설


S1. 꿈을 향한 첫 비트: 드럼의 발견


2003년,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가 1년이 지나도 식지 않은 그때,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정수학의 가슴속에도 기타를 향한 뜨거운 열정이 활화산처럼 끓어올랐다. 복학 수속을 밟는 그 순간에도 그의 손은 허공에서 기타 코드를 짚고 있었고, 낡은 기타 케이스는 마치 보물처럼 그의 곁을 지켰다. 그는 경인교육대학교 캠퍼스에 복학하자마자 '기타 신동'이라 불리는 독고철의 명성을 귀가 닳도록 들었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그 애와 함께라면 내 음악 인생도…' 일말의 희망을 품고 그를 수소문했지만, 소문처럼 자유로운 독고철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강의실, 학과 사무실, 학생회관을 전전하며 이틀 밤낮을 보낸 끝에, 정수학은 마지막 희망처럼 학교 락 동아리 '바라'의 연습실 문을 향했다. 낡은 방음 스펀지에서 오래된 커피 냄새와 퀴퀴한 담배 냄새, 그리고 젊은 날의 열기가 뒤섞인 묘한 기운이 풍겨 나왔다. 그 문만 열면 그 기타 신동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수학은 기타 케이스를 든 채 떨리는 손으로 문을 반쯤 열었다. 연습실 안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지만, 이내 눈에 익은 기타의 실루엣이 보였다. 독고철이었다. 그는 낡은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앰프도 연결하지 않은 채, 낡은 통기타의 넥을 살짝 비틀며 아련한 하모닉스를 울리고 있었다. 현 두 개만 건드렸을 뿐인데, 방 안의 공기가 마치 그의 음색에 물든 듯 달라졌다. 정수학이 밤낮으로 연습했던 모든 코드와 스케일은 마치 아이들의 장난처럼 보잘것없게 느껴졌다. 독고철의 손끝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는 단순히 음계를 넘어선, 영혼을 꿰뚫는 어떤 깊이가 있었다.


"아… 이 정도면 난…."


정수학은 저도 모르게 뜨거운 한숨을 삼켰다.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안 되겠구나. 죽어라 노력해도 저런 천재성을 따라갈 수는 없겠구나.' 불과 몇 분 전까지 타오르던 기타에 대한 열정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낙심한 채 동아리에 가입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서려던 찰나, 연습실 구석의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독고철을 감상하던 한 남학생이 정수학의 존재를 눈치챘다. 앳된 얼굴이지만 '바라'의 오랜 동아리 선배인 듯,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어이, 저기. 신입생인가? 동아리 들어오려고? 무슨 파트?"


정수학은 그 선배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복학한 00학번 정수학이라고 합니다. 저는 기타 파트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선배는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보다 학번은 높지만, 동아리에는 이제 막 발을 들인 '신입' 복학생. 묘한 위계의 긴장감이 흘렀다. 선배는 이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마치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아…. 선배님이시네요. 근데 죄송합니다. '바라'는 기타 자리, 지금 꽉 찼습니다. 더 이상 기타는 안 받거든요."


선배는 옆에서 덤덤하게 기타를 치고 있는 독고철을 힐끗 보았다. 그 말투에는 기타 실력으로는 더 이상 발 디딜 틈이 없다는 단호함이 묻어났다. 정수학은 그대로 돌아서려 했다. 기타가 아니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짓밟힌 열정은 아픔이 되었다.


"대신… 스틱 한번 잡아볼 생각 있어요?"


선배는 굴러다니던 드럼 스틱 한 쌍을 정수학의 발치로 툭 던졌다. 스틱이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히며 '텅' 하는 허무한 소리를 냈다. 기타를 치고 싶던 마음은 이미 스스로 웅크리고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음악을 포기해야 할까. 군 생활 내내 밤마다 꿈꾸던 기타리스트의 꿈이 한순간에 산산조각 나는 듯했다. 하지만, 스틱의 존재. 음악의 영역에서 완전히 멀어지는 것보다, 어떤 식으로든 밴드에 합류하는 것. 그것이 지금의 정수학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발치에 놓인 스틱을 집어 들었다. 차가운 스틱의 감촉에 묘한 떨림이 전해졌다.


"… 해볼게요."


그의 목소리는 희미했지만, 그 속에는 체념과 함께, 어쩌면 새로운 비트에 대한 미약한 갈망이 담겨 있었다. 정수학은 드럼 스틱을 건네받으며 잊고 있던 심장의 비트를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젊음이 기타가 아닌, 드럼이라는 새로운 문을 통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이 악기가 자신을 어디로 데려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S2. 심장을 울리는 코드: 듀오에서 트리오로

드럼 스틱을 쥔 채 '해볼게요'라고 말했던 그날 이후, 정수학의 마음은 묘한 파동으로 일렁였다. 비록 기타리스트의 꿈은 좌절되었지만, 드럼이라는 새로운 악기에서 예상치 못한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다. 선배들에게 인정받으며 동아리 '바라'의 회장까지 맡게 된 그는, 새롭게 부여받은 '책임감'이라는 타이틀 아래 숨겨진 드럼에 대한 열정을 마음껏 폭발시켰다. 딱딱했던 손목은 유연해졌고, 어색했던 비트는 어느새 심장을 울리는 리듬으로 변모했다. 그의 열정은 낡은 드럼 세트의 헤드를 깨뜨릴 듯, 거침없이 타올랐다.


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식고, 캠퍼스에 낭만적인 가을이 찾아오더니 이내 겨울방학이 성큼 다가왔다. 학과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져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학기 내내 미뤄왔던 여행을 떠났지만, 정수학과 독고철은 동아리 연습실에 틀어박혔다. 정수학이 선배로서 독고철을 불러들인 것이 아니었다. 드럼을 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독고철의 기타 연주에 더욱 귀 기울이게 되었고, 독고철 또한 자신의 연주를 정확하고 묵직하게 받쳐주는 정수학의 드럼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묘하게 둘만의 연습이 잦아졌다. 낡은 연습실은 밤이 되면 둘만의 아지트이자 무한한 음악적 영감을 뿜어내는 우주가 되었다. 동아리의 통상적인 곡들 대신, 그들 각자의 깊은 곳에 억눌려 있던 '하고 싶은 음악'에 대한 갈증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여타 대중가요의 팝록 멜로디가 아닌, 복잡하고도 긴 연주곡, 변박과 불협화음 속에서 폭발하는 짜릿함, 초고속으로 몰아치는 리듬과 찢어질 듯한 기타 솔로에 열광했다. 마치 드림 씨어터(Dream Theater)의 'Metropolis Part 1'이나 메탈리카(Metallica)의 'Master of Puppets'처럼, 테크닉과 스피드로 무장한 프로그레시브, 스피드, 그리고 스래시 메탈이 그들의 심장을 움직였다.


서로의 '하고 싶은 음악'이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을 때, 정수학과 독고철의 눈빛은 마치 밤샘 수학 문제를 풀다 정답을 발견한 천재들처럼 이글거렸다. 정수학의 드럼은 묵직하면서도 정확한 비트로 독고철의 기타 리프를 받쳐 주었고, 때로는 더블베이스 드럼이 마치 기관총처럼 폭주하며 곡에 새로운 영역을 탐험했다. 독고철의 기타는 단순히 오버드라이브를 넘어 찢어질 듯한 디스토션 속에서 빛나는 초고속 피킹과 현란하고 복잡한 솔로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냈다. 그들의 합주는 마치 마이크 포트노이(Mike Portnoy)와 존 페트루치(John Petrucci)의 즉흥 연주를 보는 듯, 서로의 음악적 의도를 완벽하게 이해하며 서로를 다음 단계로 이끌었다. 음악적 재능은 차치하더라도, 음악적 '궁합'이 이렇게 완벽하게 맞아떨어질 수 있을까. 두 사람 사이에는 묵언의 이해와 강렬한 시너지가 흐르는 듯했다.


둘만의 합주가 몇 번 쌓였을 때였다. 정수학과 독고철은 평소처럼 동아리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서다, 뜻밖의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앰프도 연결되지 않은 맨 마이크로 멜로딕 스피드 메탈 그룹 앙그라(Angra)의 명곡, 'Carry On'의 도입부가 찢어질 듯한 고음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날카롭고도 청량한 그 목소리는 마치 브라질의 칼바람처럼 연습실을 휘몰아쳤다. 김도진이었다. 그는 연습실 한가운데 서서, 다른 이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온몸으로 노래하며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젓고 있었다.


"Like the wind

That's coming from the sea

I'll carry on

Yeah, I'll carry on…"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파워풀했고, 가사에 담긴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었다. 정수학과 독고철은 서로를 쳐다봤다. 그들이 요즘 한창 맞춰보려 했던, 정수학이 몇 번이고 카피하다 막혔던 그 곡이었다. 그들은 홀린 듯 악기를 집어 들었다. 정수학의 손이 무심코 스틱을 잡고 낡은 하이햇 위를 가볍게 툭 건드리자, 김도진의 노래에 맞춰 정확한 리듬이 흘러나왔다. 독고철의 손도 저절로 기타 넥 위를 미끄러졌다. 앙그라 특유의 현란하면서도 비장한 리프가 김도진의 목소리에 합류했다. 연습실에 있던 그 누구도 사전에 약속하지 않은, 완벽한 즉흥 합주였다. 김도진은 잠시 움찔하는 듯했지만, 곧 그들의 연주에 맞춰 더욱 깊은 고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세 사람의 음악적 에너지는 연습실의 낡은 방음벽을 뚫고 솟아오르는 듯했다.


마지막 앙그라 특유의 멜로디와 함께 격렬한 연주가 멈추자, 밴드실에는 땀 냄새와 함께 팽팽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숨소리마저 크게 들릴 지경이었다. 세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놀라움, 희열, 그리고 무엇보다 강렬한 확신. 정수학은 이 순간을 영원히 붙잡아두고 싶었다.


"와… 방금 그거… 미쳤다." 정수학이 멍하니 내뱉었다.


김도진은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숨을 헐떡였다.

독고철은 피식 웃으며 김도진에게 맥주 캔 하나를 던졌다. 그리고 자신도 하나를 땄다. 김도진의 눈이 커졌다.

"이거... 혹시..."

"하하. 보컬이 먼저 '입단 신청'하는 밴드는 또 처음 보네. 보통 우리가 찾아다니는데. “

독고철은 말을 이었다.

"사실… 내가 불렀어, 우리 밴드 보컬 없다고. 그런데 합주까지 이렇게 완벽할 줄은 몰랐네."


정수학은 독고철을 흘끗 보더니 김도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눈빛 속에서 음악에 대한 뜨거운 갈망을 읽었다. 밴드를 향한 자신의 열정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순수한 열정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랑 같이 할래? 너라면 우리 음악에 완벽한 퍼즐 조각이 될 거야."


김도진은 망설임 없이 정수학의 손을 잡았다. 그날, 세 사람은 이름 없는 밴드의 탄생을 기념하며 시원한 맥주로 '건배'를 했다. 차가운 캔이 부딪히며 '쨍' 하는 소리가 연습실에 울려 퍼졌다. 맥주 한 모금이 목을 타고 넘어가자, 짜릿한 청량감이 온몸을 감쌌다. 그들은 곧장 다음 합주곡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메가데스(Megadeth)의 'Holy Wars… The Punishment Due'나 핼러윈(Helloween)의 'Eagle Fly Free'처럼, 또 다른 고음과 스피드, 그리고 광기가 넘치는 곡들을 향한 갈증이 불타올랐다. 아직 팀명은 없었지만, 그들의 음악을 향한 열정은 합주실 공기를 넘어, 캠퍼스 전체를 울리는 듯했다. 세 개의 심장이 마침내 음악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가 된 순간이었다.


S 3. 무대 위의 열정: 첫 클럽 공연의 꿈


밴드 결성 후 1년. 정수학의 폭발적인 드럼, 독고철의 신들린 기타, 그리고 김도진의 압도적인 보컬은 나날이 완성도를 높여갔다. 이들은 단순한 합주를 넘어, 각자의 숨통이 터지는 듯한 음악적 갈증을 해소하는 데 열중했다. 메탈리카, 메가데스, 핼러윈을 넘어, 그들의 시선은 더욱 빠르고 기술적인 사운드로 향했다. 마침내 그들의 첫 데뷔곡으로 낙점된 것은 핀란드의 멜로딕 스피드 메탈 밴드 스트라토바리우스(Stratovarius)의 'Speed of Light'였다. 곡명 그대로 현란한 속주와 번개 같은 드럼 비트, 쉴 틈 없이 터져 나오는 고음이 난무하는, 연주 난이도가 극악인 곡이었다.


'Speed of Light'를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그들은 문자 그대로 '연습의 연습'을 거듭했다. 정수학의 손목은 마치 기계처럼 정확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더블베이스 페달은 그의 발아래서 기관총처럼 폭주했고, 손에 쥔 스틱은 마치 보이지 않는 실처럼 공중을 갈랐다. 피멍이 들고 손가락이 찢어져도 멈추지 않았다. 독고철의 기타 솔로는 매일 밤 연습실에 번개처럼 내리쳤다. 악보에 표기되지 않은 미세한 비틀림과 그루브까지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수백 번을 되감고 멈추고 반복했다. 그의 손가락 끝은 물집과 굳은살로 범벅이 되어 고통스러웠지만, 그 고통조차 음악적 희열로 승화시키는 듯했다. 김도진의 보컬은 'Speed of Light'의 광기를 온몸으로 표현했다. 목청이 찢어질 듯한 초고음 샤우팅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매일 낡은 보컬 부스에서 밤샘 연습을 반복했다. 목은 항상 쉬어 있었고, 믹스 커피에 녹차가루까지 타서 마시는 기행을 벌였다.


수많은 합주와 밤샘 연습, 끊임없는 시행착오 끝에, 이들은 드디어 인디 클럽에서의 첫 공연 기회를 잡았다. 허름한 클럽의 사장에게 겨우 오디션 기회를 얻어내, 'Speed of Light'와 다른 자작곡 한두 개를 들려주었고, 결국 클럽 공연 스케줄을 확정받았다는 연락이 왔다. 그 순간, 세 사람은 연습실 바닥에 뒹굴며 소리를 질렀다. 가진 건 낡은 악기와 피 땀 눈물뿐이었지만, 이들이 꿈꾸던 '무대'가 현실이 된다는 사실만으로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설렘과 긴장이 교차하는 가운데, 공연 준비는 생각보다 훨씬 만만치 않았다. 낡은 장비의 고장, 촉박한 시간, 학교생활과의 병행, 멤버들 간의 사소한 마찰까지. 라이브 공연의 압박감은 연습실에서의 합주와는 차원이 달랐다. 온몸이 부서질 듯 피곤했지만, 무대 위에서 자신들의 음악을 선보일 그날을 상상하며 이들은 이를 악물고 연습에 매진했다. 그들에게 음악은 단순한 취미가 아닌, 삶의 모든 것이었다.


1년간의 합주. 세 사람의 손은 이미 굳은살로 단단해졌고, 너덜너덜해진 노트에는 악보 대신 밤샘 연습 도중 낙서처럼 끄적여 놓은 밴드 명과 자작곡 아이디어만 늘어갔다. 그렇게 기다리던 대망의 첫 클럽 공연 날, 리허설 무대. 스트라토바리우스의 'Speed of Light'는 그들의 열정만큼이나 난도가 높은 곡이었다. 막상 실제 공연 장비로 연결된 무대 위에서의 리허설은 생각만큼 매끄럽지 않았다. 드럼은 하이햇과 스네어 사이에 미세하게 박자를 놓쳤고, 독고철의 기타는 빠른 브릿지 구간에서 미세하게 음정이 흔들렸다. 김도진의 보컬은 마지막 코러스에서 한 박자 늦게 들어와 버렸다.


"자, 밴드 'SPLASH'의 첫 무대, 'Speed of Light'입니다!"


클럽 사장의 소개가 끝나자마자, 불꽃 튀는 스피드 메탈 사운드가 클럽을 가득 메웠다. 정수학의 더블베이스 드럼이 기관총처럼 쏟아졌고, 독고철의 기타는 불타오르는 듯한 속주를 토해냈다. 김도진의 고음은 그 모든 사운드 위에서 춤을 추듯 폭주했다.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연주였다. 하지만 클라이맥스를 향해 질주하던 곡이 끝나고, 마지막 코드의 잔향이 사라진 순간, 클럽 안에는 단 10초간의 완전한 침묵만이 흘렀다. 관객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그 침묵은 마치 천둥이 치기 전의 고요함처럼 세 사람의 심장을 조여왔다. '너무 부족했나? 우리가 너무 성급했나?' 무대 위 세 사람의 얼굴에는 당황스러움과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 짧은 침묵은 곧 거대한 폭발음으로 변했다. 이내 여기저기서 "와 씨! 대박이다!" 하는 탄성과 함께,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저걸 라이브로 한다고? 말도 안 돼!"

"진짜 개쩐다! 어떻게 저런 테크닉을…!"

"진지하게 감동했다! 또 들려줘!"


밴드의 음악적 패기는, 관객들에게 전율과 충격을 동시에 선사했다. 무대 아래 사장은 그들의 떨리는 눈빛을 보고 귀엽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그는 마이크를 들고 한마디 던졌다.


"이봐, 학생들. 많이 긴장했나 보네. 방금 그 사운드… 아주 그냥 끝내주던데? 이걸 라이브로 친다고? 보통 배짱 아니야. 오늘 맥주 서비스 더 나간다. 긴장 풀고 즐겨, 이 무대는 너희 거야."


클럽 사장의 격려에 세 사람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그들은 무사히 첫 무대를 마치고 내려왔다. 가진 건 낡은 악기, 몸에 밴 피로, 그리고 무대 위에서 얻은 황홀한 경험뿐이었다. 거대한 환호성 속에서 그들은 마치 날아갈 듯 행복했다. 세 사람의 눈빛 속에는 '우린 분명 올라갈 수 있다'는 이상한 확신 하나가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청춘의 열정과 꿈을 향한 열정이 비로소 한데 모이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S4. 멀어진 꿈: 낙방과 고독한 시간


스트라토바리우스의 'Speed of Light'가 울려 퍼졌던 첫 무대의 뜨거운 여운은 채 가시지도 않은 채, 졸업이라는 현실이 세 사람의 목을 죄어왔다. 연습실에서의 합주만큼이나 치열했던 임용고시의 전쟁. 'SPLASH' 밴드의 열정은 잠시 뒤로하고, 이들은 책상에 머리를 파묻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3월,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임용고시 합격자 발표는 세 사람 모두를 밀어냈다. 첫 번째 낙방.


"뭐, 괜찮아! 다음에 붙으면 되지!"


정수학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멤버들을 다독였지만, 그의 눈빛에도 실망감이 역력했다. 그들은 다시 각자의 공부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뒤로 이어진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낙방 소식은 이들의 젊은 어깨를 짓눌렀다. 노력해도, 애를 써도 뚫을 수 없는 철옹성 같은 임용고시의 벽은 그들의 자신감과 희망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이들은 점차 지쳐갔다. 매번 실패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다시 책을 펴야 하는 그 막막함은 비수처럼 날아와 심장을 꿰뚫었다.


그즈음, 독고철과 김도진은 잠시 음악과 임용의 꿈을 접고 군대에 입대했다. 더 이상 실패에 연연하고 싶지 않은 마음, 혹은 그 막막한 현실에서 잠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정이었다. 입영 통지서를 받아 들고 돌아서는 그들의 뒷모습은 홀로 남은 정수학의 마음에 무거운 짐을 올려놓았다. 밴드는 강제적으로 휴지기에 들어섰다. 낡은 연습실은 쥐 죽은 듯 고요했고, 그들의 음악은 더 이상 캠퍼스를 울리지 못했다. 심지어 동아리 회장으로 책임감을 느꼈던 정수학은, 연습실 사용료조차 감당하기 어려워져 결국 그들이 밤낮으로 땀 흘렸던 '바라'의 밴드 연습실마저 유지할 수 없게 되자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그들의 추억이 깃든 공간마저 지키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그를 짓눌렀다.


정수학은 독서실 총무로 들어가 낮에는 고시 공부에 매진하고, 밤에는 아무도 없는 독서실 구석에서, 혹은 낡은 자취방에서 홀로 드럼 패드를 두드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피를 토하듯 몰아치던 더블 베이스 드럼 페달은 임용 준비에 보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중고 시장에 내놓았다. 스틱이 고무 패드를 때리는 소리는 '착! 착! 착!' 하고 작게 울릴 뿐이었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 소리가 마치 더블베이스 드럼의 굉음처럼, 독고철의 기타 리프처럼, 김도진의 시원한 고음처럼 터져 나오고 있었다.


'계속 드럼 치고 있어?'


종종 밤마다 김도진이, 혹은 독고철이 환청처럼 물어왔다. 그의 손은 늘 스틱을 놓지 않았다. 차가운 고무 패드 위로 피 땀 눈물이 스며들었다. 무대 위에서 뿜어내던 폭발적인 에너지는 이제 그 작은 패드 위에 응축되어 고독하게 쌓여갔다. 그의 마음속에서 울리는 소리. 그 소리마저 멈추면, 모든 것이 끝나버릴 것 같았다. 그의 드럼은 마치 고독한 투쟁의 서사시처럼 밤마다 이어졌다. 그리고 가끔, 그는 꿈에서 다시 밴드 'SPLASH'의 완전체 합주를 하곤 했다. 드럼은 박자를 쪼개고, 기타는 속주를 쏟아내고, 보컬은 광기 어린 고음을 토해냈다. 꿈에서 깨어나면 밀려오는 허탈감은 더욱 컸지만, 동시에 가슴 깊이 음악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다.

추운 겨울밤이었다. 훈련소에서, 자대에서 각각 휴가를 나온 김도진과 독고철이 정수학에게 연락을 해왔다. 오랜만에 셋이 모인 곳은 대학가 근처의 허름한 삼겹살집이었다. 불판 위에서 지글거리는 삼겹살 냄새는 구수했지만, 그들의 대화는 씁쓸했다.


"형님, 계속 드럼 치고 있어?"


김도진이 삼겹살을 뒤집으며 물었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음악에 대한 갈망이 서려 있었다. 독고철은 말없이 고기만 집어먹고 있었지만, 그의 시선도 정수학에게로 향했다.


"연습패드로만. 조용히 때려도, 소리는 나더라. 마음에서."


정수학의 목소리는 희미했지만, 그 속에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쇠약해진 몸으로 다시 스틱을 쥐고 연습패드 위를 두드리는 그의 외로운 밤들이 스쳐 지나갔다. 김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다르지 않았다. 보컬 부스나 기타가 없는 곳에서, 그들도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연주를 해왔을 터였다. 김도진은 종종 밤이면 거울을 보며, 찢어질 듯한 고음 샤우팅을 토해내며 'Carry On'을 불렀고, 독고철의 손가락은 때때로 공허한 허공에서 리프를 그려냈다. 그들도 가끔은, 꿈에서 다시 연습실에 모여 'SPLASH'의 합주를 하는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깨면, 꿈속의 앰프 소리가 귀에서 맴도는 듯했고, 현실의 공허함이 그들을 짓눌렀다.

소주잔에 술이 찼고, 채웠던 술잔만큼 그들의 말들은 반쯤 비어갔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임용고시의 압박,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현실은 그들의 웃음소리마저 먹먹하게 만들었다.


"미안하다. 결국 연습실도 더 유지하지 못하고 문 닫았다."

정수학의 말에 김도진과 독고철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들은 서로의 공백을 채우려 애썼고, 그 애씀 속에서 여전히 밴드 'SPLASH'의 불씨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술자리의 끝에서, 그들은 비장한 약속 하나를 남겼다. 취기와 희미한 희망이 뒤섞인 약속이었다.


"다시 모이자. 언젠가."


그들은 비록 잠시 각자의 길을 걸어야 했지만, 그 약속은 마치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임용고시의 높은 벽과 군 생활의 고독 속에서도, 다시 함께 음악을 할 그날을 꿈꾸며, 세 사람은 각자의 어둠 속을 걸어갔다. 'SPLASH'는 잠시 꿈을 연기했지만, 그 꿈은 사라지지 않고 더욱 깊게 그들의 마음에 뿌리내리는 시간이었다.


S5. 재회의 멜로디: “합격의 톤”


삼겹살집에서 나누었던 그 비장한 약속, “다시 모이자. 언젠가.” 그 ‘언젠가’는 마치 멀고 아득한 꿈처럼 느껴졌던 현실이었다. 그러나 꿈은 때때로, 현실보다도 더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찾아오는 법. 정수학이 매일같이 드럼 패드를 두드리며 마음속으로 비트를 새기고, 김도진이 훈련소의 침상에서 몰래 앙그라의 고음을 읊조리고, 독고철이 야간 경계근무 중 공허한 허공에 기타 리프를 그리는 사이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약속의 시간이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새벽. 독서실 총무로 일하며 쪽잠을 자던 정수학의 낡은 피처폰이 ‘띠링’ 하고 울렸다. 잠결에 간신히 손을 뻗어 확인한 문자 메시지. 발신인은 교육청. 떨리는 손으로 메시지를 연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두 글자.

“합격”


정수학의 귓가에는 세상의 모든 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지는 듯했다. 합격. 합격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수없이 낙방하며, 이제는 거의 체념하다시피 했던 그 꿈의 단어가 현실이 되는 순간, 그의 가슴속에서는 마치 굳어있던 드럼의 베이스 드럼 페달이 폭발하듯 격렬한 비트가 터져 나왔다. 피 땀 눈물로 얼룩진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김도진과 독고철의 얼굴이었다. ‘다시… 다시 함께 음악을 할 수 있을까?’ 그 벅찬 감격과 함께, 잊고 있던 음악에 대한 갈증이 마치 오랫동안 메말랐던 땅에 단비가 내리듯, 그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정수학의 합격 소식이 전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군복을 벗은 김도진에게서도 전화가 걸려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해방감과 함께 벅찬 감격이 뒤섞여 있었다.


“형, 나 붙었어요! 충청도로 발령 났어요!”


정수학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비록 지역은 달랐지만, 김도진 역시 같은 교단에 서게 된 것이다. SPLASH’의 재결성은 이제 더 이상 꿈이 아니었다. 한 발짝 더 가까워진 꿈이었다. 충청도의 작은 학교에서 교단에 선 김도진은,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홀로 빈 교실에서 허밍으로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그러나 인천에 있는 두 형과 함께 음악을 하고 싶은 갈증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1년 뒤, 다시 한번 인천 임용고시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그에게 인천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었다. 음악이 기다리는 약속의 땅이었다. 또 한 번의 밤샘 공부와 치열한 시험 끝에, 마침내 그가 기다리던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인천 합격”


김도진은 충청도의 낡은 자취방에서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에게 인천 합격은 교사로서의 새로운 시작이자, 밴드 'SPLASH'의 완전체 재결성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았다.

그리고 1년 뒤, 독고철마저 어렵게 인천에서 임용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마치 긴 인내의 시간을 기다린 듯, 담담하면서도 짧은 한마디.


“인천 합격.

그들의 약속이, 마침내 완전한 그림으로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각자의 교실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그들에게는 마치 스네어 드럼의 날카로운 스내어, 독고철의 기타 리프, 김도진의 폭발적인 보컬이 동시에 카운트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이젠 그 모든 노력의 시간이 현실이 되었다. 각자의 교실에서 종이 울릴 때,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임용고시의 높은 벽을 넘어, 다시 함께 음악을 할 그날에 대한 희망의 멜로디가 터져 나왔다.


드디어 인천에 다시 모인 세 사람.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그들에게는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 꺼지지 않는 불씨가 남아 있었다. 그 숙제는 바로 '음악'이었다. 오래전 사라졌던 동아리 '바라'의 연습실 대신, 구석진 골목에 위치한 낡은 합주실을 빌렸다. 지하 깊숙한 곳에서, 그들은 다시 각자의 악기를 맞대었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굳은살 박인 손은 예전만큼 자유롭지 않았고, 호흡은 삐걱거렸다. 김도진의 고음은 학기 중 내내 아이들의 이름 부르느라 지쳐 있었고, 독고철의 손가락은 밤샘 공부 탓에 굳어 있었으며, 정수학의 드럼 페달은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


하지만 음악은 마치 마법과 같았다. 한 음 한 음 맞춰갈수록, 녹슬었던 감각은 되살아나고, 잊었던 기억들은 선명해졌다. 오래된 감정의 먼지를 털어낸 소리였다. 스네어가 '탁!' 하고 울리고, 독고철의 기타가 파고드는 리프를 쏟아내자, 김도진의 목소리가 그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이들은 마치 '음악이 내 직업이 아니어도, 내 삶은 음악'이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듯, 뜨거운 열정을 다시 불태웠다.

연습이 끝나갈 무렵, 김도진이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피식 웃었다. 그의 눈에는 어린 시절의 순수한 열정이 가득했다.

"근데 우리, 밴드 이름이 뭐였지?"

정수학과 독고철은 서로를 쳐다봤다. 첫 클럽 공연 때 무대에 올랐던 'SPLASH'라는 이름은 그때뿐이었다. 그 이름은 어느덧 잊힌 듯했다. 정수학은 문득 학창 시절, 독고철과 처음으로 함께 합주했던 날, 앰프에서 튀어나오던 강렬한 사운드가 떠올랐다.


"스플래시(SPLASH)!"

정수학의 말에 김도진은 환하게 웃었다. 독고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개의 심장이 다시 모여 하나가 된 순간이었다. 그날의 합주는 그저 단순한 연주가 아니었다. 그것은 혹독했던 지난 시간을 보상받는 축제이자,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음악적 여정에 대한 굳은 맹세였다.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잊고 지냈던 음악에 대한 갈증, 임용고시의 혹독한 시간들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이들은 주말마다 연습실에 모여 폭발적인 음악적 에너지를 분출했다. 다시 뭉친 'SPLASH' 밴드의 사운드는 더욱 깊고 성숙해져 갔다. 그들의 손끝에서, 그리고 목소리에서, 꿈틀거리는 음악 혼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S6. 삶의 변주: 결혼과 이별 “청첩장과 공백”


혹독했던 임용고시의 터널을 지나, 다시 모여 폭발적인 음악적 에너지를 뿜어내던 'SPLASH' 밴드의 세 남자. 그들의 음악은 다시 깊이를 더해가고 있었지만, 삶은 언제나 새로운 변주곡을 들려주는 법이었다. 음악 외에 또 다른, 더 큰 인생의 변주곡이 이들을 찾아왔다.

먼저 정수학에게서 청첩장이 날아들었다. 가장 뜨거운 열정으로 밴드를 이끌던 그가, 결혼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 것이다. 낡은 합주실에 모인 김도진과 독고철은 어딘가 서운한 표정으로 그의 청첩장을 받아 들었다. 그들의 복학생 맏형은 이제 가정을 꾸리는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나 이제 드럼보다 기저귀를 더 많이 갈지도 몰라. 이 손가락으로…"


정수학은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묘한 상기감과 함께 기대감이 가득했다. 김도진과 독고철은 그런 그를 축하해 주면서도, 미묘한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들에게 음악은 취미를 넘어 삶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기에, 정수학의 결혼은 밴드에 찾아올 변화의 전조처럼 느껴졌다. 그의 신혼 초 합주는 격렬한 드럼 비트 대신 아기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고, 연습실 대신 집 안을 뛰어다니며 땀을 흘렸다.

그로부터 1년 뒤, 독고철 역시 멤버들에게 청첩장을 건넸다. 김동준 강사님의 강연 속 '배우자'라는 단어가 낯설었던 남도윤처럼, 독고철에게도 결혼은 새로운 세계였다. 그는 평소처럼 차분했지만, 깊은 고민이 담긴 말을 뱉어냈다.


"기타는 줄이 끊어지면 바꾸면 되는데, 인생의 줄은 언제 바꿔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의 말에는 삶의 복잡성에 대한 사색이 묻어났다. 늘 차분하고 냉철하던 독고철이었지만, 가족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이면서 그 역시 삶의 예측 불가능한 변화 앞에 무던히 적응해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의 결혼으로 밴드의 합주 시간은 더욱 줄어들었다. 주말마다 모이던 연습실은 이제 한 달에 한두 번, 혹은 그보다도 뜸하게 겨우 얼굴을 볼 수 있는 약속 장소가 되었다. 기타 줄은 녹슬어갔고, 앰프는 먼지를 뒤집어썼다.


행복과 안정 속에 각자의 삶을 꾸려가는 듯했던 정수학과 독고철과는 달리, 김도진에게는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도 결혼했지만, 채 1년이 되지 않아 파경을 맞이하고 말았다. 가장 자유로워 보였던 그에게 가장 큰 상실감이 찾아온 것이다. 오랜만에 셋이 모인 술자리. 정수학과 독고철은 조용히 김도진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는 취기가 오르자 낮게, 그러나 비감하게 웃었다.


"노래는, 슬플 때 더 잘 불러지더라고. 감정선이 막… 터져 나오니까."

그의 목소리는 힘없이 읊조리는 듯했지만,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근데… 꼭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싶네. 이렇게까지 슬퍼야… 노래가 잘 불러지나…"


이혼의 상처는 그의 목소리를 더욱 깊고 날카롭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그의 영혼을 갉아먹었다. 한때는 밴드의 활력소였던 그의 눈빛은 텅 비어 있었다. 정수학과 독고철은 말없이 그의 어깨를 두드려 줄 뿐이었다. 그들의 합주는 이제 점점 모이기 힘들었다. 각자의 가정, 육아, 그리고 김도진의 개인적인 상실감까지. 삶의 무게는 그들을 조금씩, 그리고 자연스럽게 음악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밴드 'SPLASH'는 그렇게 잠정적인 휴식기에 들어서는 듯했다. 연습실은 이제 폐허처럼 굳게 닫혔고, 악기들은 소리 없는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모일 때마다, 이전보다 더 조용하고, 더 깊었다. 그들은 더 이상 음악을 연주하지 않았다. 그저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지친 삶을 말없이 위로했다. 스물 남짓 청춘의 열정으로 똘똘 뭉쳤던 이들의 밴드는, 그렇게 각자의 삶의 변주곡에 맞춰 희미한 배경음악으로만 존재하게 되었다. 악기가 놓인 자리에는 기저귀와 분유통이, 기타 줄이 걸렸던 손에는 아기띠가, 찢어질 듯 샤우팅 하던 목에는 씁쓸한 한숨만이 남아 있었다. 그들의 음악은 멈췄지만, 삶은 멈추지 않았다. 매일매일 아쉬움과 씁쓸함이 남는 나날이었지만, 그들은 묵묵히 각자의 삶을 이어갔다.


S7. 다시 불타는 심장: “후배의 전화”

정수학의 더블 페달이 팔려 나가고, 독고철의 기타 줄이 녹슬고, 김도진의 목소리가 슬픔에 잠겼던 그 시간. 'SPLASH' 밴드는 그렇게 잠정적인 휴식기를 넘어, 해체에 가까운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임용고시 합격 후 각자의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가정을 꾸리며, 혹은 아픔을 겪으며 보낸 3년의 시간은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젊은 시절 뜨거웠던 음악적 열정은 삶의 무게에 눌려 아련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넘어가 버린 듯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연습실에 모여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던 그들의 모습은 이제 꿈처럼 느껴졌다.

한여름, 푹푹 찌는 듯한 저녁.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서던 정수학의 휴대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지만, 발신자 이름은 '바라 동아리 후배'였다. 그들의 밴드 'SPLASH'가 한때 활동했던 경인교육대학교 락 동아리 '바라'의 이름이었다. 정수학은 잊고 지냈던 동아리의 이름을 듣자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선배님…! 혹시… 정수학 선배님 맞으신가요?"


풋풋한 목소리의 후배는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이내 숨겨왔던 부탁을 조심스레 꺼냈다.


"저희가… 동아리 창립 30주년 기념 동문 공연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꼭 선배님들, SPLASH 선배님들이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배들 음악… 저희 진짜 너무 듣고 싶어요… 간절히…."


'선배들 음악, 듣고 싶어요!' 그 한마디가 마치 잊고 지냈던 마법 주문처럼 정수학의 가슴속 깊이 박혔다. 아득했던 과거, 'Speed of Light'를 연주하며 무대 위에서 느꼈던 짜릿함, 그리고 멤버들과 함께했던 열정적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정수학은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전율을 느꼈다. 땀으로 젖었던 드럼 스틱의 감촉, 심장을 울리던 베이스 드럼 소리가 귓가에 다시금 맴도는 듯했다.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곧장 휴대폰을 들어 독고철과 김도진에게 연락했다. 며칠 뒤, 한적한 카페에 모인 세 남자. 왁자지껄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각자의 삶의 무게가 실린 표정이었다.


"후배한테 전화 왔더라. 동문 공연에 SPLASH 나오래. 선배들 음악 듣고 싶다고." 정수학이 말문을 열었다.

독고철은 힐끗 정수학을 쳐다보더니 무심하게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벌써 30주년? 하긴, 우리도 20년 돼 가는데, 오래됐지."


김도진은 피식 웃었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지난 아픔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내 목소리가 과연 아직 'Carry On'을 부를 수 있을지… 아침 조회 때보다 더 목이 갈라지는 것 같던데."


정수학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야, 내가 군대 있을 때 밤마다 패드 두드리면서 꿈에 본 게 앰프 빵빵하게 울리던 너희 둘 소리였어. 근데 이젠 내 어깨 관절이 말썽이다. 아마 리허설하다 어깨 빠질지도 몰라."


독고철은 고개를 갸웃하며 읊조렸다.


"내 손가락 마디마디에 관절염이 도져서 이젠 속주가 아니라 속독이 더 빠르겠구먼."


김도진이 한숨처럼 내뱉었다.


"그럼 나는? 이혼하고 나니까 목소리가 더 칼칼해진 것 같던데. 슬픔의 미학인가? 그럼 뭐 해. 아이들 동요나 불러주는 게 일상인데."


현실적인 고민과 푸념이 뒤섞인 대화 속에서도, 이들의 눈빛에는 잊고 지냈던 음악에 대한 희미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김동준 강사가 그랬듯, '다시 한번'이라는 미약한 희망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피어났다.

정수학이 먼저 결심한 듯 손을 내밀었다.


"그래. 마지막으로 우리 '아재 밴드' 한번 가자. 애들 앞에서 한 번쯤은 미친 짓 해봐야지 않겠어? 합주실은 내가 알아볼게. 드러머의 책임이지!"


독고철은 마지못해 손을 뻗는 듯했지만, 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뭐, 나야… 기타 줄만 새로 갈면 되니까. 내가 알아서 세팅하고… 합주실 나도 한번 찾아보지, 뭐. 대신… 이번 선곡은 김도진이 한테 맡길게. 우리 '테크니컬 메탈' 말고… 관절에 무리 안 가는 걸로 좀 골라봐."


김도진은 독고철의 농담에 활짝 웃었다. 그의 웃음은 진심이었다.


" 90년대 감성으로 '서시' 같은 거 하지, 뭐. 내가 '선곡'해야 할 것 같긴 했어. 이젠 'Soldier of Fortune'도 힘든 나이인데."


세 사람은 서로의 손을 굳게 잡았다. 지친 일상에 파묻혀 지내던 이들에게 '동문 공연'이라는 이야기는 뜻밖의 기적처럼 들렸다.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목표를 향해 다시 나아가는, 그들의 심장은 다시 음악에 맞춰 뜨겁게 울리기 시작했다. 'SPLASH'의 이름으로 다시 무대에 오를 생각에, 세 사람의 눈은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의 삶의 변주곡에는, 다시금 강렬한 메탈 사운드가 채워질 참이었다.


S8. Rebirth: 베이스의 합류


3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기로 했다는 약속은 세 남자의 마음을 다시 뜨겁게 달구었다. 정수학의 드럼 스틱은 녹슬었지만 그의 열정은 그렇지 않았고, 김도진의 목소리는 여전히 칼칼했지만 그의 가슴은 활활 타올랐다. 독고철의 손가락은 관절염이 도졌지만 기타를 향한 그리움은 굳은살처럼 단단했다.

하지만, 현실의 장벽은 높았다. 당장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이자 결정적인 공백은 바로 베이스 파트의 부재였다. 첫 클럽 공연 때에도 객원 베이시스트의 도움을 받았던 터라, 이들의 음악은 완벽한 하모니를 위한 마지막 퍼즐 조각을 갈구하고 있었다. "Bass is Base."는 것은 모든 밴드맨이 통감하는 진리였다. 특히 멜로딕 스피드 메탈을 추구하는 'SPLASH'에게 베이스는 단순한 반주를 넘어, 곡의 웅장함을 뒷받침하고 기타와 드럼의 복잡한 연주 사이를 채우는 핵심이었다.

고민에 빠진 독고철의 머릿속에 불현듯 한 남자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어릴 적부터 기타 레슨을 함께 받던 친구이자, 한때는 함께 밴드를 꿈꿨던 '박영수'였다. 그는 겉으로 드러나진 않아도 묵직하고 정확한 연주를 자랑하던 베이스 기타리스트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잊고 지냈던 이름이었지만, 독고철은 그에게 연락을 취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오랜만에 걸려온 독고철의 전화에 박영수는 낯설어하면서도 기꺼이 술자리에 나와주었다. 독고철은 망설임 없이 'SPLASH'의 상황과 동문 공연 이야기를 꺼냈고, 박영수는 조용히 독고철의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몇 번의 제안에는 쑥스러워하며 고사하던 박영수였지만, 독고철의 끈질긴 설득과 음악에 대한 뜨거운 진심 앞에 결국 마음을 열었다.

그렇게 'SPLASH'는 오랜만에 새로운 얼굴을 맞이하게 되었다. 정수학과 김도진은 박영수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묘한 기대감과 함께 살짝의 어색함을 느꼈다. 조용하고 과묵한 박영수는 인상 한번 찌푸리는 일 없이 묵묵히 베이스를 세팅했다. 그들의 첫 합주. 긴장감과 설렘이 교차하는 가운데, 박영수가 수줍은 듯 말을 꺼냈다.


"한번 맞춰볼까요?"


정수학의 굳어진 손이 스틱을 움켜쥐었다. 독고철의 기타에서는 다소 어설픈 리프가 흘러나왔고, 김도진은 오랜만에 목을 풀듯 허밍으로 멜로디를 따라갔다. 어설프게 시작된 그들의 연주 사이로, 박영수의 베이스가 낮은 울림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의 손끝에서 시작된 베이스 라인은 정수학의 드럼 비트 위를 견고하게 받쳐 주었고, 독고철의 기타 리프에 탄탄한 기반을 제공했다.

그리고 첫 곡의 후렴에 들어선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박영수의 베이스가 더욱 묵직하고 정확하게 리듬을 타기 시작하자, 밴드 멤버들은 동시에 눈을 들었다. 마치 오랜 방황 끝에 제자리를 찾은 듯, 독고철의 기타 리프는 이전에 비해 훨씬 더 단단해지고 깊이를 더했다. 김도진의 보컬 발성은 박영수의 베이스 위에 안정적으로 중심을 잡았고, 정수학의 드럼 킥은 한 음절씩 더 명확하고 시원하게 뻗어 나갔다. 그들의 연주가 완벽한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연습실을 가득 채웠다. 연주가 끝나자마자,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입을 열었다.

"됐어, 됐다."


이제 'SPLASH'는 진정한 완전체가 되었다. 3년 만의 컴백 무대를 위한 준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대학 동아리 동문 공연이 열리는 날. 장소는 아이러니하게도 20년 전 첫 공연을 했던 바로 같은 클럽이었다. 정수학, 독고철, 김도진, 그리고 박영수. 'SPLASH'는 백스테이지에서 마지막으로 땀을 닦아내며 서로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오랜만에 오르는 무대였다. 그리고 그 무대는 20년 전, 그들의 첫 클럽 공연을 허락해 주었던 그 허름한 인디 클럽이었다. 클럽은 세월의 흔적만큼 낡았지만, 그들에게는 마치 성지처럼 느껴졌다. 그때의 그 젊었던 열정만으로 음악을 했던 그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정수학은 드럼 스틱을 굳게 쥐었다. 그들의 삶과 음악, 그 모든 것을 이 무대 위에 쏟아낼 참이었다. "20년 만이네, 여기." 독고철이 읊조리자 김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든 것을 기억하는 유일한 관객이자, 증인인 클럽 사장이 어딘가에 앉아 있을 터였다.

마침내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SPLASH'의 이름이 호명되자, 정수학의 묵직한 베이스 드럼 비트가 클럽을 흔들었다. 첫 곡은 메가데스(Megadeth)의 'Dread and the Fugitive Mind'.

복잡하고 공격적인 기타 리프가 날카롭게 귓가를 파고들었고, 정수학의 더블 베이스 드럼은 마치 거대한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Let me introduce myself, I'm a social disease. I've come for your wealth and leave you on your knees! “


김도진의 날카롭고 광기 어린 보컬이 이들에게 씌워졌던 낡은 프레임을 깨부수며 외쳤다. 과거에 좌절하고 고뇌했던 'SPLASH'가 이제는 '음악이라는 질병'을 퍼뜨리러 돌아왔다는 선전포고와 같았다. 독고철의 손끝에서 쏟아지는 짜릿하고도 현란한 기타 솔로는 잠들어 있던 메탈 팬들의 심장을 일깨웠다. 박영수의 베이스는 이 모든 광기 속에서 묵직하게 중심을 잡으며 곡의 무게감을 더했다. 이들은 마치 "아무것도 잃지 않을 것이다!"라고 외치는 듯, 지난 3년간의 침묵을 깨고 화려하게 자신들의 컴백을 알렸다. 관객들은 'SPLASH'의 폭발적인 오프닝에 얼어붙은 듯한 감탄과 함께 열광했다.

강렬한 오프닝이 끝나자, 클럽 안에는 짧은 정적이 흘렀다. 숨 고를 틈도 없이 이어진 두 번째 곡은 앙그라(Angra)의 'Rebirth'. 장엄한 전주가 시작되자 클럽은 숙연해졌다. 독고철의 서정적이면서도 날카로운 기타 아르페지오가 김도진의 맑은 음색과 어우러지며 'SPLASH'의 부활을 웅장하게 알렸다.


"Cooling breeze from a summer day. Hearing echoes from your heart. “


정수학의 드럼은 플로어탐을 통해서 강약 조절을 섬세하게 하며 곡의 감정을 이끌었고, 박영수의 베이스는 묵직하게 그 감정을 지탱했다. 김도진의 목소리는 절규하듯 외쳤다.


"Learning how to recompose the words! Let time just fly! “


그의 목소리는 삶의 변곡점을 맞이하며 잊고 지냈던 음악적 감각을 다시금 찾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중간에 이어지는 독고철의 스피드 하면서도 서정적인 기타 솔로는 앙그라 특유의 감성을 완벽하게 재현하며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그들의 연주는 단순한 카피를 넘어, 지난 고통의 시간을 보상받는 듯한 치유의 선율이었다. 무대 위 네 남자의 눈에는 다시 살아난 음악적 불꽃이 이글거렸다. 관객들은 곡의 웅장함에 압도되었고, 'SPLASH'가 선보이는 음악의 깊이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어둠이 깔린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가 김도진을 비추었다. 마지막 곡은 뮤지컬 '헤드윅'의 'Midnight Radio'였다. 어쿠스틱 사운드인 기타의 섬세한 반주가 시작되자, 강렬했던 앞선 두 곡과는 또 다른 깊은 감성이 클럽을 채웠다. 김도진은 마이크를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나지막이 노래하기 시작했다.


"사라져 가는 아름다운 나의 꿈, 나의 노래..."


그의 목소리에는 이혼의 아픔, 그리고 꿈이 좌절되었던 지난 시간들에 대한 회한이 서려 있었다. 정수학은 부드러운 드럼 비트로 김도진의 감정을 섬세하게 어루만졌고, 독고철의 기타는 울부짖는 듯한 애절한 선율로 곡의 서정성을 더했다.


"내리치던 여름, 세찬 폭풍처럼 사라지는 꿈. 숨 쉬고, 느끼고, 사랑하며… 날아가라."

노래의 중반부, 김도진의 목소리는 점차 힘을 얻어갔다. 희망을 갈구하듯, 자신의 모든 아픔을 토해내듯 폭발하는 보컬은 관객들의 심장을 강하게 흔들었다.


"Know in your soul, like your... Rain falls hard, burns dry, a dream or a song. That hits you so hard, filling you up and suddenly gone. Breath, feel, love, give free. “


그는 노래를 통해 지난 힘들었던 순간들을 서사적으로 떠나보내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김도진의 눈물 젖은 목소리는, 단순한 노래를 넘어 그들의 지난 청춘을 위로하는 깊은 독백처럼 들렸다. 객석 곳곳에서는 흐느낌과 함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공연이 끝나자, 클럽 안에는 잠시 정적에 휩싸였다. 10초간의 완전한 침묵. 그 침묵은 마치 천둥이 치기 전의 고요함처럼, 세 사람의 심장을 조여왔다. '역시 너무 오래 쉬었나?' 정수학의 뇌리에는 20년 전 첫 무대에서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그 짧은 침묵은 곧 거대한 폭발음으로 변했다. 이내 귓청을 때리는 듯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앙코르! 앙코르!"


관객들의 열렬한 외침이 클럽을 가득 메웠다.


"와 씨! 대박이다! 이걸 라이브로 한다고? 말도 안 돼!"

"진짜 개쩐다! 어떻게 저런 테크닉을…!"

"진지하게 감동했다! 또 들려줘!"


이들의 진심은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클럽 전체를 감동으로 물들였다.


'SPLASH'는 다시 무대에 섰다.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내듯, 앙코르에 대한 답으로 퀸(Queen) 메들리를 시작했다.


"Don't Stop Me Now!"


경쾌한 리듬이 시작되자, 무대 위 네 남자의 얼굴에는 다시 미소가 피어났다. 이제 그 누구도 이들을 멈출 수 없다는 듯, 해방감과 에너지가 폭발했다. 김도진은 온몸으로 흥을 표현하며 노래했고, 독고철과 박영수는 서로를 바라보며 리프를 주고받았다. 정수학의 드럼은 더욱 강렬하고 즐겁게 리듬을 쪼개 나갔다.


'Bohemian Rhapsody' 후렴으로 이어지며 김도진의 감성적인 목소리가 프레디 머큐리의 영혼을 빌린 듯 자유롭게 유영했다. 복잡한 곡 구성과 파트마다 변화하는 드라마틱한 감정선은, 'SPLASH' 멤버 각자의 파란만장했던 삶의 굴곡을 그대로 담아내는 듯했다. 자신들이 겪어낸 복잡한 내면의 갈등과 희열을, 음악을 통해 관객들에게 진솔하게 보여주었다. 그들의 연주는 단순한 멜로디를 넘어선, 진정한 '독백'이었다.


그리고 메들리의 대미를 장식한 'We Are the Champions'. 합창 파트에서는 관객들도 함께 'We are the

champions, my friends!'를 외치며 떼창을 이어갔다. 정수학의 드럼은 승리의 개선가처럼 강렬하게 울렸고, 독고철의 기타는 승리의 함성처럼 터져 나왔다. 김도진의 목소리는 이제 슬픔을 넘어, 모든 것을 이겨낸 자의 벅찬 감격과 함께 힘껏 솟아올랐다. 'SPLASH'의 승리이자, 각자의 삶 속에서 챔피언이 되어가고 있는 모두의 노래였다. 그들은 마치 "난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가 결국 이겼다"라고 외치는 듯했다.


3년 만의 컴백 무대. 화려한 조명과 대형 스크린도 없었다. 하지만 그날의 앙코르는 그들에게 3년간의 침묵을, 그리고 지난 20년 전의 아쉬움과 응어리를 천천히, 그리고 완벽하게 지워주었다. 공연이 끝나고, 백스테이지로 돌아온 네 남자는 서로를 끌어안고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음악은 그들에게 직업 이상의 의미였고,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의 모든 것이었다. 그들의 뜨거운 열정과 진솔한 음악은, 클럽을 가득 메운 관객들에게도 깊은 감동과 함께 잊지 못할 추억으로 새겨졌다.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채, 멤버들은 박수와 환호 속에 무대를 내려왔다. 무대 아래에는 예상했던 대로 20년 전 그들에게 첫 용기를 주었던 클럽 사장이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깊게 파여 있었지만, 눈빛만은 20년 전과 변함없이 따뜻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봐, 자네들… 여전히 괜찮네. 오늘 밤… 정말 '끝내주는' 무대였어. 고마워… 다시 돌아와 줘서."


그의 말에 정수학과 김도진, 독고철의 눈에서는 다시금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박영수는 말없이 그들의 어깨를 감쌌다. 20년 전의 약속, 20년 전의 용기가, 마침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SPLASH'는 그렇게, 다시 한번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S9. 90년대의 역습: 마로니에의 영광


20년 만에 다시 오른 동문공연의 컴백 공연은 ‘SPLASH’에게 단순한 재회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난 세월의 모든 아쉬움과 회한을 털어내고, 다시금 자신들의 음악에 대한 확신을 심어준 일종의 '세례'였다. 귓가에 맴도는 환호성과 박수 소리는 죽었던 밴드 혼을 다시 일으켰고,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도전 의지를 뜨겁게 불태웠다. 이들은 단순한 아마추어 밴드로 남아있기에는 너무나 깊은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이번엔 진짜다. 우리가 살아있음을 보여줄 차례다!'

오랜만에 다시 뜨거워진 밴드의 열정. 이들은 본격적으로 사회인 밴드 음악 경연대회에 출전하기로 결심했다. 아마추어 밴드를 위한 소박한 축제가 아니었다. 이 대회는 음악 전공자 출신의 쟁쟁한 실력자들, 젊은 피가 끓어오르는 인디 밴드들까지 대거 참여하는, 전국구 규모의 치열한 경연장이었다. 나이와 삶의 경험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기술과 감각의 벽이 존재했다.

그러나 그들의 발목을 잡은 것은 예상치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였다. 전 세계를 덮친 팬데믹으로 인해, 대면 경연은 모두 취소되었고, 대회는 비대면 영상 제출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SPLASH' 멤버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무대 위에서 관객들과 호흡하며 폭발적인 라이브 에너지를 뿜어내는 것을 꿈꿨던 이들에게,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듯 연주하는 영상 심사는 너무나 아쉬움이 컸다.


"아니, 이게 말이 돼? 음악은 라이브 아니야? 스크린으로 우리가 가진 모든 걸 어떻게 보여줘?!"


정수학은 드럼 스틱을 던지며 불평했다. 김도진도 허탈하게 웃었다.


"내 고음이 온라인에서는 '삐빅' 소리로 들릴지도 몰라."


독고철은 무심하게 영상을 확인하며 말했다.


"어쩔 수 없지.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지. 이걸로 우리 음악을 판단한다면, 뭐... 그것도 현실의 한계겠지."


아쉬움 속에서도 이들은 최고의 영상 퍼포먼스를 만들어냈다. 낡은 합주실에서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열기를 담아냈고, 땀과 노력을 갈아 넣어 촬영했다. 그리고 마침내 입상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오랜만에 등장한 진짜배기 메탈 사운드", "40대 교사 밴드의 반란"이라며 짧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 무대 위에서 관객들의 환호를 받지 못한 아쉬움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단체 대화방은 입상 소식에도 불구하고 조용했다. 축하 이모티콘 몇 개가 전부였다. 정수학이 마지막으로 한 줄을 남겼다.


"다음엔, 사람 앞에서."


그 한 마디에는 무대에 대한 갈증과 라이브에 대한 진한 열망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열망은 또 다른 시작을 예고하고 있었다.


코로나19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SPLASH'는 다음 해, 다시 한번 사회인 밴드 음악 경연대회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이번에는 대면 공연이 가능하다고 했다. 예선은 녹화 영상 심사였지만, 이들은 그들의 노련함과 변함없는 테크닉으로 힘겹게 예선을 통과했다. 마침내 대망의 본선. 대학로의 작은 소극장이었다. 대회장에 들어서자마자, 이들은 자신들이 '유일한 40대 메탈 아재 밴드'임을 깨달았다. 참가팀 대다수는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전공자 출신들이거나 트렌디한 인디 밴드들이었다. 메탈 밴드는 'SPLASH'가 유일했다. 마치 멸종 위기종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와, 다들 파릇파릇하네. 우리가 평균 연령 확 올려놨네. “


정수학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김도진은 목을 풀며 중얼거렸다.


"젊음은 좋지만, 노련함은 못 이기지. 우리는 연륜으로 조져버린다! “


독고철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가락을 풀었다.


"어깨가 좀 쑤시는군. 이러다 기타 줄이 아니라 내 팔이 끊어지겠어."


박영수는 말없이 베이스를 튜닝하며 그들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에는 묵직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그들의 차례가 다가왔다. 조명 감독이 "삼 번 팀, 준비"라고 외쳤을 때, 정수학은 드럼 스틱을 들어 하늘에 작은 십자를 그렸다. 이는 그들 밴드의 성공을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었다. 무대 위 조명이 번쩍이고, 드디어 'SPLASH'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낡은 무대 세팅과 투박한 그들의 모습은 다른 팀들의 세련된 연출과는 사뭇 달랐다. 그야말로 '레트로' 그 자체였다. 하지만 90년대 락 키드의 감성을 그대로 간직한 그들의 등장은 묘한 향수를 자극하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첫 곡은 신성우의 '서시(序詩)'. 관객들은 멜로딕 스피드 메탈 밴드가 들려주는 뜻밖의 선곡에 술렁거렸다. 일순간 클럽 안에 숙연한 분위기가 흘렀다. 정수학의 드럼은 묵직하면서도 서정적인 리듬을 선사했고, 독고철의 기타는 감성적인 아르페지오를 섬세하게 엮어냈다. 박영수의 베이스는 깊은 울림으로 곡의 토대를 다졌다. 그리고 김도진의 보컬이 시작되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파워풀한 메탈 보컬의 힘이 남아있었지만, 이제는 세월의 깊이가 더해져 더욱 애잔하고 호소력 짙었다.


"해가 지기 전에 가려 했지 너와 내가 있던 그 언덕 풍경 속에"


그의 목소리는 지난 20년간의 세월, 이들이 함께했던 모든 순간들을 불러냈다. 대학 동아리 연습실에서 피땀 흘리며 음악을 갈망하던 시절, 혹독한 임용고시의 시련, 각자의 삶 속에서 겪었던 기쁨과 슬픔, 이혼의 아픔까지. 그의 노래는 단순히 곡을 부르는 것을 넘어, 삶의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고백이었다.


"아주 키 작은 그 마음으로 세상을 꿈꾸고 그리며 말했던 곳"


김도진의 목소리는 절규하듯 터져 나왔다. 그들이 처음 음악을 시작했던 그 순수하고 작은 마음을 노래했고, 이제는 어른이 되어버린 자신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했다. 젊은 시절의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했던 그들의 모습이 관객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SPLASH'는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노래하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뿜어지는 김도진의 진심은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40대의 아저씨 밴드가 들려주는 '서시'는, 관객들에게 단순히 익숙한 노래를 넘어선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일부 중년 관객들은 눈을 감고 추억에 잠기는 듯했다.


첫 곡이 끝나자 클럽 안에는 짧은 정적과 함께 ‘우—’ 하는 깊은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객석 어딘가에서 터져 나온 진한 감동의 한숨 소리였다. 정수학은 무대 위에서 관객들의 진심 어린 반응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들은 이어 두 번째 곡, 라우드니스(LOUDNESS)의 'Soldier of Fortune'을 시작했다. '서시'로 감동을 주었다면, 'Soldier of Fortune'으로는 'SPLASH'의 건재함과 파워풀한 음악적 정체성을 확실히 보여줄 참이었다.

묵직하고도 빠른 드럼 비트가 울리고, 독고철의 기타가 강렬한 리프를 뿜어냈다. 김도진의 목소리는 다시금 포효하듯 광기 어린 샤우팅을 터뜨렸다.


"Rebel young, tracks to burn. We take the glory, we belong."


그들의 노래는 마치 "우리는 여전히 뜨거운 영혼을 가진 반항아들이다! 이 무대의 영광은 우리의 것이다!"라고 선언하는 듯했다. 격렬한 사운드가 클럽을 흔들었고, 관객들은 머리를 흔들고 주먹을 휘두르며 열광했다. 그들의 무대 위에서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곡의 클라이맥스. 독고철의 기타 솔로가 시작되었다. 그의 손가락은 마치 보이지 않는 빛을 따라 움직이듯 현 위를 미끄러졌다. 그의 솔로는 한 박자 늦게 시작하는 듯했지만, 그 뒤로 한 박자 길게 이어지며 감탄사를 자아냈다. 의도된 연주였지만, 마치 운명처럼 느껴지는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Through the light of a million eyes, we know (move)."


김도진의 샤우팅은 수많은 눈빛이 자신들을 향하고 있음을 알리는 듯, 'SPLASH'가 다시 한번 이 무대의 주인공임을 선포하는 듯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으로 관객들을 열광시켰고, 클럽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공연 내내 묵묵히 베이스를 받쳐주던 박영수의 연주도 단단하고 정확하게 곡의 전체적인 균형을 잡았다. 그들의 음악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90년대 메탈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모든 연주가 끝나고, 클럽 안에는 폭발적인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 열광은 단순한 갈채를 넘어선, 진심 어린 존경과 감동의 표현이었다. 모든 팀의 공연이 끝나고, 대망의 시상식. 객석의 심사위원들은 'SPLASH'를 호명하기 위해 잠시 망설이는 듯 보였다.


"이번 사회인 밴드 경연대회 특상은… 'SPLASH'입니다!"


호명이 끝나자 클럽은 다시 한번 뒤집어졌다. 비록은 우승은 아니었지만, 환호성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껴안고 무대 위에서 기쁨을 나눴다.


다음 날, 인터넷 신문에는 특상 수상 소식이 크게 실렸다.

<스플래시, 대학로 본선 특상… “90년대 메탈 감성, 아저씨 교사 밴드의 저력 보여줘”>

그들은 이 기사 링크를 서로에게 보냈다. 말 대신 이모티콘이 오갔다. 드럼 이모티콘(정수학), 기타 이모티콘(독고철), 마이크 이모티콘(김도진), 그리고 파란 물결 이모티콘 하나. 그들의 밴드 이름처럼 'SPLASH'였다. 코로나19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SPLASH'는 다시 한번 사회인 밴드 음악 경연대회에 도전하여 마침내 본선에 진출, 특상이라는 영광스러운 결과를 얻어냈다. 대회 웹사이트와 인터넷 신문에는 'SPLASH'의 수상 소식과 함께, 교사 밴드의 감동적인 스토리가 기사로 오르며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다. 그들에게 음악은 더 이상 단순한 취미가 아닌, 삶의 한 부분이 되었음을 세상에 알리는 순간이었다. 그들의 열정적인 연주와 가슴을 울리는 보컬은 심사위원들과 관객들을 사로잡았고, '90년대 감성'으로 '레트로' 무대를 완벽하게 연출하며 그들만의 영역을 개척했다.


S10. 운명의 참결초등학교


2025년. 참결초등학교 교직원 연수실. 여름방학을 앞둔 학교는 새로운 활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 해 새로 전입해 온 교사들을 소개하는 자리. 정수학은 드럼 스틱 대신 볼펜을 든 채, 새로 온 교사들의 이력을 훑어보고 있었다. 이미 며칠 전, 그는 조용히 인사이동 발령 명단을 확인했었다. 그곳에서 김도진과 독고철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 그의 입가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몇 년 전부터 이 학교에 몸담고 있던 그는 이제 어엿한 선임 교사로서의 연륜이 묻어나고 있었다. 귓가에는 여전히 'SPLASH'의 음악이 맴돌았지만, 이제 그에게는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배경음악 같은 것이었다. 사회인 밴드 경연대회 특상 수상은 분명 큰 영광이었지만, 그 후로도 이들의 밴드 활동은 늘 녹록지 않았다. 각자의 학교 업무와 가정이 그들을 옭아맸고, 틈틈이 이어지는 합주와 공연은 늘 삶의 낭만이면서도 버거운 과제였다.


"자, 다음은 우리 학교로 새로 오시게 될 5학년 1반 담임, 김도진 선생님과 6학년 1반 담임, 독고철 선생님을 모시겠습니다!"


교장 선생님의 힘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수학은 그들의 등장에 놀라는 척도 하지 않았다. 대신, 무대 옆에서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들어서는 두 남자를 향해 은근히 시선을 주었다. '하긴, 이놈들도 이제는 교단 베테랑들이 다 됐군.' 그의 입가에 묘한 만족감이 감돌았다. 분명 김도진이었고, 독고철이었다.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교단에 섰던 그들이, 20년이 흐른 지금, '참결초등학교'라는 같은 공간에 나란히 서 있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상황 자체는 여전히 운명적이었다.


"5학년 1반 김도진 선생님, 6학년 1반 독고철 선생님."


다시 한번 명료하게 울려 퍼지는 호명에, 정수학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인사이동은 원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순위명부에 따라 학교를 배정하고 안되면 멀리 날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이 이 참결초등학교에 온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운명의 실이 그들을 한 곳으로 끌어당긴 듯했다. 정수학은 고요히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마치 그림을 완성한 화가처럼 미묘한 승리감을 맛봤다.


강당에는 전입 교사를 환영하는 교사들의 박수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그 박수 소리 위로, 무대 옆에 서 있던 정수학은 마치 약속된 리듬을 타듯 두 손을 마주쳤다. '짝! 짝! 짝!' 마치 드럼의 스틱 소리처럼 정확하고 힘찬 박수였다. 그의 눈빛은 김도진과 독고철을 향했다. 김도진은 자신을 발견한 정수학의 얼굴에 놀라움과 반가움이 뒤섞인 환한 미소를 지었고, 독고철은 무심한 듯하면서도 눈빛으로 복잡한 감정과 함께 '이것이 바로 당신의 큰 그림이었습니까'라고 묻는 듯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세 사람의 눈빛이 스쳐 갔다. 말은 없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똑같은 소리가, 하나의 비트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오랜 시간 함께 맞춰온 밴드의 합주를 시작하기 전의 카운트 같았다. 그 소리는 정확하고, 뜨거웠다.


"—원, 투, 쓰리, 포."


그 순간, 정수학의 귓가에는 드럼의 격렬한 비트와 독고철의 날카로운 기타 리프, 김도진의 시원한 샤우팅이 다시금 울려 퍼지는 듯했다. 2025년.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며 참결초등학교는 이들 세 남자, 그리고 그들의 음악으로 인해 이전과는 다른 뜨거움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정수학은 자신을 소개하는 김도진과 독고철을 향해 진심을 다해 환영의 박수를 쳤다. 오랜 세월, 음악과 삶의 굴곡을 함께했던 세 남자가 다시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낡은 밴드부실도, 허름한 클럽 무대도 아니었다. 아이들의 꿈이 자라는 참결초등학교라는 더없이 거대한, 새로운 무대에서.

그들의 'SPLASH'는 다시금 새로운 비트를 새길 준비를 마친 듯했다. Music is my life. 그들의 삶은 이제, 또 다른 음악을 시작할 참이었다.


에필로그. “Music is my life”


뜨거운 여름의 절정, 그리고 인천의 상징처럼 우뚝 선 록 페스티벌. 송도 달빛축제공원,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입구는 이미 인산인해였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강아름은 햇살보다 더 뜨겁게 손에 든 표를 흔들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마치 열아홉 소녀 같은 해맑은 흥분이 가득했다. 머리에는 페스티벌에서 나눠주는 야광 머리띠를 삐딱하게 걸치고,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여… 여러분! 드디어 왔어! 펜타포트! 우리가 여기를 오게 될 줄이야!"


강아름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인파 속으로 흩어졌다. 그 뒤를 이어 도착한 것은 남도윤과 한지온이었다. 남도윤은 햇살 아래서도 완벽하게 각 잡힌 정수리만큼이나 불만 가득한 얼굴이었다. 여름용 셔츠와 반바지 차림에도 그의 표정은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수학 공식을 풀러 가야 할 것 같은 심각함을 풍겼다.


"강아름 선생님… 제가 이번 주에 논문 제출인데…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정말입니다. 이틀 밤샘하고 간신히 오늘 한숨 붙였는데…."


남도윤은 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를 닦으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이미 입장 팔찌가 단단히 채워져 있었다. 이 상황을 가장 잘 즐기고 있는 듯한 한지온은 무심하게 남도윤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왜 나왔어요? 그렇게 바쁘다면서."


한지온의 담담한 질문에 남도윤은 강아름을 향해 억울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이… 강아름 선생님이…. 너무… 너무 사정하니깐… 그리고 친구들이랑 가지, 왜 저를…."


강아름은 남도윤에게 찰싹 달라붙어 그의 팔을 흔들었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맹수를 길들이는 사육사 같았다.


"기억 안 나요? 우리! 동기애! 신규교사 연수 때 김동준 선생님께 배운 가슴으로 얼마나 피 터지게 동기애를 외쳤는데!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 동기애를 실천하는 순간이에요! 으라차차! 그리고… 남선생님 빼고 저희 둘이 오면 이상하잖아요!"


한지온은 남도윤의 짐짓 피곤한 표정을 흘깃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저는 좋아요. 조금이라도 젊은 시절, 서른 살 되기 전에 이런 곳 한 번쯤은 와보고 싶었어요. 그놈의 논문은 삼십 대 가서도 쓸 수 있잖아요."


한지온의 비수 같은 한마디에 남도윤은 할 말을 잃고 입을 꾹 다물었다. 세 사람은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입장 게이트를 통과했다. 시끌벅적한 축제의 열기는 그들의 꽁냥 거림마저 집어삼킬 듯했다.

록 페스티벌은 그야말로 젊음의 도가니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잔디밭을 가득 메우고,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앰프 사운드, 사람들의 함성, 맥주 거품처럼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가 혼재된 카오스 그 자체였다. 세 사람은 겨우 자리를 잡고 페스티벌의 분위기에 몸을 맡겼다.


그때였다. 쿵-! 하는 묵직한 베이스 드럼 소리가 온몸을 울리자, 갑자기 멀리서 거대한 환호성이 터지고 여기저기서 시원한 물줄기가 터져 나왔다. 메인 무대 쪽에서 폭발적인 사운드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우와! 뭐지? 저기서 터졌어! 가자!"


강아름은 번개처럼 눈을 빛내며 무대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남도윤은 "강아름 선생님! 갑자기 그렇게 뛰면…!" 하고 외치며 그녀를 쫓았다. 한지온은 평소의 침착함은 어디 갔는지, 얼굴에 묘한 상기된 표정을 띠며 두 사람의 뒤를 바싹 따랐다. 그들은 몰려있는 사람들 틈을 뚫고, "죄송합니다! 실례합니다!"를 연발하며 최대한 무대 앞으로 나아갔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귓청을 때리는 악기 소리와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세 사람은 상기되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거대한 스크린에 무대 위 모습이 클로즈업되었다. 강렬한 조명 아래, 보컬이 마이크를 든 채 객석을 향해 외쳤다.


"저희들의 첫 싱글인 'Music is my life' 들려드리겠습니다! 아 유 레디?!"


보컬의 외침과 함께 사람들의 함성이 하늘을 찌를 듯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함성이 무대 바로 앞에 선 세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


"헙!!!!!"

"뭐……?! 저 사람…?"

"말도 안 돼…!"


대형 스크린에 클로즈업되어 보인 보컬은… 바로 김도진이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머리카락, 하지만 20년 전의 그 어떤 때보다 열정적인 그의 얼굴. 그리고 그 옆에는 냉철하게 기타를 연주하는 독고철, 그 뒤로는 드럼을 부술 듯이 두드리는 정수학, 그들의 옆에는 말없이 묵묵하게 베이스를 받쳐주는 박영수가 있었다. 'SPLASH'였다. 그들의 담임 선생님들이, 직장 상사들이, 바로 저 무대 위에서 록 스타로 변신해 있었다.

남도윤은 얼이 빠진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봤다. "저… 저 정수학 부장님이…? 드럼을…?" 그의 논리 회로는 완전히 정지된 듯했다.

강아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김도진 선생님이… 보컬이었어?! 대박… 대박사건…!" 그녀는 거의 울 듯한 표정이었다.

한지온은 그들의 반응을 보며 아주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는 무대 위의 김도진을 향해 조용히, 그러나 진심을 담아 중얼거렸다. "음악이… 음악이 당신의 삶이었군요…."


들려오는 김도진의 청량하고도 힘 있는 노랫소리. 그의 목소리는 단순한 멜로디를 넘어, 그의 삶, 그리고 그들 SPLASH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Music is My Life! that’s true Forever."


세 사람은 완전히 상기된 표정으로 무대 위의 선생님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여름방학은 이제, 진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펜타포트 방문은, 분명,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