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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철 Nov 0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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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어렸을 적에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삼천리 금수강산 이란 단어이다. 마치 비단에 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산천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고등학교 때 과제의 하나로 읽었던 정비석의 소설 <김삿갓>이 있었다. 

 김삿갓 그는, 천하의 바람둥이였지만 재치와 기행의 천재였다. 또한, 그는 점잔 떠는 얼굴에 침을 뱉는 독설가이기도 했다. 작가 정비석은 그런 김삿갓의 거침없는 인생을, 서민들과 함께 숨 쉬었던 김삿갓의 행적과 결부시켜 소설 <김삿갓>이라는 대작을 내어놓을 수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듬해에 친구와 가야산으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여행의 목적은 목판인쇄를 위해 목판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목판을 만져보고 느껴보자는 커다란 포부와 핑계로 해인사 여행을 계획하여 실물로 보고자 했으나 국보 제32호인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법보전은 대장경의 보존을 위해 입구에 가로 막대를 세워 출입을 통제하였고 출입금지 막대 너머에는 스님이 앉아서 관람객이 너무 가까이 가지 못하게 감시하므로 직접 접촉이 불가하여 먼발치에서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근처에서 텐트를 치고 숙박한 우리는  다음 날 아침 가야산 정상을 등반하기로 하였으나 등반은 포기하고 친구의 고향인 상주를 방문하기로 했다. 그날은 상주 장날이라 버스는 복잡했고 사람이 많았다. 우리는 뒷자리에 앉았고 정류장마다 손님이 타면 아재 오랜만이라는 소리부터 여기저기서 안부 주고받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더군다나 이해할 수 없는 경상도 사투리에 목청껏 지르는 소리가 더욱 더 알아듣기 힘들었다. 버스에 누군가 타면 사람마다 붙잡고 인사하기에 분주했고, 간간이 들리는 소리가 남의 집 숟가락 몇 개까지 외우는 등 서로의 살림살이를 미주알고주알 다 아는 듯 싶었다. 나는 그 상황이 이해가 안되었고 친구는 이런 게 시골 풍경이며, 사람 사는 맛이라 했다. 하지만 나는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상주에 도착하니 이미 마지막 버스 시간은 지나가 친구의 큰집까지 시골길을 걸어갔다. 친구는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하며 고개 넘어 김XX네 집 아들이라고 인사하며 걸었다. 친구의 고향 집에 도착할 즈음에는 날은 캄캄하고 저녁 시간은 이미 지나간 때였다.

  친구는 늦어도 인사드리면 저녁과 잠자리를 마련해줄 거라 했지만 나는 그런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거라 하고 내일 밝은 낮에 방문하자고 고집하여 강가에서 텐트를 친 후, 라면으로 저녁을 대신하고 바로 잠이 들었다.

 날이 밝았을 즈음 외쳐 부르는 소리에 나와 보니 친구의 사촌 여동생이 빨리 집으로 들어와 아침 먹으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우리는 알았다며 강물에 대강 세수만 하고 텐트를 걷고 친구의 큰댁으로 올라갔다. 들어가는 입구에서 보니 어르신 몇 분이 방에 앉아 계셨다. 우리는 마당에 들어서면서 그래도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렸으나, 어르신들은 인사를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며 친구를 불러 방안에서 큰절로 인사를 하라고 하셨다. 나는 당황하여 마당에서 뻘쭘하게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후에 큰아버지가 오셔서 친구에게 왜 저녁 늦어도 들어와서 인사하고 밥을 먹고 여기서 자야지 그러는 법도는 없다면 친구를 혼내셨다. 나는 옆에서 또 한 번 뻘쭘하게 서서 속으로는 ‘이건 민폐인데 이걸 강요하는 것은 아닌데’ 하는 생각으로 그냥 묵묵히 서 있었다.

 내가 고집부려 텐트에서 잠을 잔 이유로 친구는 어르신들에게 꾸지람을 듣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잘못했다는 말로 용서를 구한 후에 우리는 따뜻한 밥상을 마주했다. 미안함과 죄송함, 어색한 탓으로 무슨 반찬인지 무슨 맛인지 가르고 나눌 사이도 없이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아주머니들은 서울에서 고기반찬을 먹다가 여기는 시골이라 입에 맞나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서울 집에서도 명절 외에는 고기반찬을 먹은 기억도 별로 없었고, 며칠 동안 제대로 끼니를 챙겨 먹지도 못해서 맛있다는 말만 연발하면서 밥그릇을 비웠다.      

  내가 안양으로 이사 온 것은 86년 봄이었고 당시 살던 아파트를 재건축하여 다시 입주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하지만 그 당시 같이 입주했던 앞집아저씨와 가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마주치면 서로 먼저 인사하고 안부를 묻고 나면 어색한 분위를 어찌하지 못하고 빨리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린다. 이러할 때는 김삿갓은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어떻게 넉살 좋게 지나쳤으며 모르는 사람들과도 어찌 손쉽게 친하게 지냈을까? 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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