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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철 Jan 15. 2023

온양 온천에서 받은 선물

코로나 이후 처음 다녀온 사우나

 아직 감기 기운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기침과 콧물은 거의 나오지 않고 몸만 나른한 것이 기운이 없다. 핑계로 오늘 탁구 개인 레슨 받는 날이지만 포기하고 동네 사우나를 다녀오려고 이것저것 챙겼다.

예전에는 사우나를 좋아해서 어디 여행이라도 가면 근처 온천이나 이름난 찜질방은 꼭 코스에 넣어 순례하곤 했다. 찜질방이 유행일 때는 숙소를 유명찜질방에 예약해서 해결하고 여행 다닌 적도 있다.     

동네 사우나를 가려고 나섰다가 전철역을 지나치려는데 다음 열차가 신천행 급행이란 안내를 듣는 순간 맘이 바뀌어 전철을 타고 온양온천 가기로 목표를 변경했다. 안내 방송의 유혹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천안을 지나자 조금 지루해지기 시작했는데 카톡이 ‘딩동’하고 부른다.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서 온 카톡 안부 문자다. 며칠 전에 카카오 브런치 소개하고 내가 게시한 글이 있다고 하자 잘 읽었다는 문자다. 코로나에 관해서 몇 마디 나누고 시니어 일자리에 관해 설명하고 우리나라 복지제도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하다 보니 내가 아는 것도 별로 없다 공부해서 알려주겠다고 문자를 종료했다.      

온양온천역에 도착하니 조금 황당하기는 하다. 동네 사우나 간다고 한 것이 멀리도 왔다.

온양온천은 예전에 온양관광호텔 내 대중탕은 몇 번 온 적은 있으므로 그곳을 목적지로 정하고 역사를 나오니 바로 앞에 방향 표시가 잘 되어 있다. 몇 걸음 걷기 전에 눈에 띄는 것이 온양온천시장이다. 마침 점심시간도 되어 시장에서 국밥이라도 한 그릇 하고 사우나를 하려고 시장으로 들어갔는데 입구의 거리 판매대의 호떡집부터 바로 옆에는 호빵과 만둣가게 그리고 전통적인 길거리 빵집까지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순차적으로 배치하여 유혹하고 있었다. 하지만 꾹 참고 못 본 척 지나쳤는데 눈에 뜨이는 간판이 4000원 짜장 집이다. 파격적인 가격에 깔끔한 식당 내부에 우선 들어가서 짜장을 주문했다. 둘이 왔으면 탕수육 하나 같이 시켜서 먹으면 딱 좋을듯한데…. 오늘은 탕수육은 패스한다. 짜장면도 생각 외로 깔끔하고 양도 내 기준에 맞게 적당하다.      

기분 좋게 나와서 목적지를 향하는 데 신천탕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전형적인 동네 목욕탕이다. 잠시 망설이다. 네이버 도움을 청한다. 1960년에 개발된 우리나라 최초의 온천으로 깔끔한 내부 사진에 맘을 바꿔서 오늘의 목적지로 정하고 들어선다. 카드를 내밀자 계산대의 아가씨가 알아서 경로로 결재한다. 이제는 내 외모만으로도 경로 우대를 받는 경지에 올라왔다.     

 탕 내로 들어오니 의외다.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붐빈다. 대강 비누칠을 하고 샤워기로 씻은 후에 건식 사우나로 들어갔다. 여기는 아무도 없다. 조용하게 앉아서 눈을 감고 잠시 열기를 감상하는데 문이 열리며 머리에 수건을 얹은 분이 들어오더니 말을 건다. 어디서 왔느냐부터 사우나에 오래 있으면 피부가 상한다는 등 젊어서 피부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등 내가 귀찮게 생각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말을 걸어온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천천히 즐기세요 하고는 나와서 온수를 뒤집어쓴 후에 온수탕으로 들어가려니 탕 주변에 앉을 자리가 없다. 탕 가운데로 들어가기는 멋쩍어 잠시 온수탕 턱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데 누군가 어깨를 잡는다. 꿰 나이 들어 보이는 분이 제대로 걷지 못하면서도 보호자 없이 왔는지 혼자 들어와 탕에 들어가다가 턱을 넘기 힘들어서인지 내 어깨를 잡고 한 박자 쉬시는 듯하다. 내 어깨 잡은 손을 떼어내어 팔을 부축해서 탕 내로 인도해 드리고 나도 같이 탕 중심부에서 잠시 몸을 담근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부자 관계라 하겠지. 혼자 생각하며 앉아 있는데 세신하시는 분이 이분을 부르면서 와서 탕까지 들어와 부축하며 조심하라는 등 여러 가지 조언을 하는 것을 옆에서 들으니 꽤 자주 오시는 분인듯하다. 몇 년 전에 뉴질랜드에서 온천탕에 갔던 적이 있는데 외국인들은 될 수 있으면 서로 몸이 부딪히지 않으려 미리 피해 주고 어쩔 수 없이 닿는 경우는 "I'm sorry"를 연발하면서 지나갔는데 우리는 부딪히면 모른척하거나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짜증스러운 표정을 하고 지난다. 같이 갔던 딸아이가 서양사람은 한국인과 일본인을 구별하지 못하니 ‘스미마센’하면서 지나치라고 한다. 그래서 한참 웃은 기억이 있지만, 우리도 이제는 개선할 문화다.     

이번에는 습식 사우나에 들어갔다. 앉을 자리가 없어 다시 나오려는데 두세 분이 일어나서 나오신다.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좌우를 둘러 본다. 옆 사람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오늘 토요일이라 사람이 많다는 등 여기 시설이 어떻다는 등 물이 얼마나 좋다는 등 많은 정보를 알려준다. 점차 뜨거운 공기 때문에 대화하기가 어려운데 계속해서 이것저것 설명하면서 말을 걸어온다. 오랜만에 사우나에 오니 뭔가 티가 나는듯하다.      

습식 사우나에 나와서 건식 사우나로 들어갔다가 다시 습식 사우나로 두 번 반복하고 나오니 구석에 빈자리가 생겼다. 바가지를 챙겨서 찬물을 틀어 세수하니 정신이 번쩍 든다.     

누가 우리나라 최고의 발명품은 이태리타월이라 했던가? 땀내고 때수건으로 때를 밀면 너무 개운하다. 옆에 있는 아저씨가 또 말을 건다. 어디서 왔느냐? 혼자 왔느냐? 얼마나 자주 오냐는 등, 때수건은 마른 수건을 한 장 말아 넣고 밀어야 잘 밀린다는 팁도 알려주며 계속 말을 걸어온다. 그냥 웃으면서 '네, 네' 하며 대답하니 등 돌리라고 한다 등 밀어준다는 이야기다 감사한 마음으로 네 그러세요 하고 등을 맡긴다 등을 밀어주면서 본인이 젊었을 때 목욕탕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인지 세게 미는 듯한데 아프지도 않고 때는 잘 밀리는 기분이다. 끝나고 고마운 마음에 내가 밀어준다고 하니 본인은 다른 사람이 해줘서 대신해준 거다. 하며 사양한다. 이것이 서로 부딪히며 살아가는 한국인의 정인듯하고 일종의 시골 인심인듯하여 맘이 유쾌해진다.      

 안양에서 출발하여 온양까지 사우나 한번을 위해 오기는 먼 길이지만 내 몸의 더러운 때는 놓고 가고 유쾌하고 즐거운 맘을 얻어가니 기분 좋은 하루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다른 분의 등을 밀어주어 내가 받은 유쾌한 선물을 보답하고 와야 했는데 못 한 것이 아쉽지만 이 보답은 다음에 할 기회가 있으리라 믿는다. 아직도 대한민국은 살만한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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