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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my Park Apr 06. 2024

021 반박 시 니 말이 맞음

Jailbreak

“Our prism can become our prison” (Lois Farfel Stark)


새로운 친구가 가장 많이 생겼던 한 달이었다.


10년 남짓 된 일이다. FB 동문회 Site에서 큰 논란이 있었다.
여자 동기 중 한 명과 2 기수 늦은 남자후배 간 온라인에서 큰 다툼이 생긴 거였는데,
그 남자후배의 아내가 FB을 보다가 오해를 해서 시작된 일이었다.
사소한 문제였는데
양쪽의 친구들이 힘을 보태준다고 밑에 댓글을 달았다가
양 기수 간의 감정싸움으로 번져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져 버렸다.
처음에 오해했던 상황의 본질은 온 데 간 데 없고
과격한 감정의 말들이 뾰족한 창이 되어 서로를 쿡쿡 찌르는 상황에 이르렀다.
새까맣게 어린 후배들까지 보고 있는 Site에서 이건 아닌데... 생각이 든 나는
어느 날 밤, 생각을 다듬고 다듬어 큰맘 먹고 중재하는 글을 하나 올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글 하나로 분위기에 반전이 일어나며 사태가 훈훈하게 급마무리 되었다.
앗 이게 갑자기 이렇게 풀린다고...?
그 덕분에 한참 동안 친구신청도 늘고 훌륭하신 선후배님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매우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때 배웠던 것 같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논리적으로 맞고 틀리고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구나.
특히 감정이 개입되는 순간, 옳고 그름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많구나.
사람은 논리를 인정받기보다 감정을 이해받는 걸 더 소중히 여기는 존재구나.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감정을 존중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유연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팩트'가 있다.
역사적인 사실이 그렇다.
가령, 1919년  3월 1일 온 국민이 거리에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운동을 했다라든지
2007년 1월 Apple이 iPhone이라는 혁신적인 기기를 처음 공개했다라든지 하는 것들이다.
또 하나는 과학자들이 오랜 연구 끝에 밝혀낸 세상의 원리들이 그렇다.
가령, 세상의 모든 만물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라든지
지구는 둥글고 가운데서 중력이 작용하여 물체를 잡아당긴다라든지 하는 것들이다.
이런 '팩트'들은 항상 맞다.

이런 팩트들을 빼면 나머진 모두 '의견'이다.
'의견'은 그 사람의 과거 경험이나 현재 처한 입장에서만 맞을 가능성이 높다.
비슷한 경험을 가졌거나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격하게 공감한다.
그러면 그 의견은 점점 더 공고해진다.     
팩트는 아니지만, 그 상황에서 그들에게는 그게 '진실'인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경험이 없거나 반대 경험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다른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 편협한 주장일 수 있다.
난 의견을 분명히 표현했을 뿐인데 그들에게는 '아집'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런 때는 그들을 고치려 하지 않는 게 답이다.
굳이 설득하거나 내 의견을 강요하려 하지 않고 그냥 두는 것이다.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을 논리적으로 이기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틀린 것은 아니다.


언젠가부터 김창옥교수님의 소통 강의가 인기다.
최근에는 김창옥쇼라고 본인의 이름을 걸고 하는 TV 프로그램도 생겼다.

다양한 사람들이 커플로 나와 저마다의 사연을 올리고 불만을 토로하면

김창옥교수님이 따뜻한 조언을 해주고 사람들은 힐링을 받고 하는 프로다.
그런데 몇 개의 사연을 보다 보면 김창옥교수님의 패턴 같은 걸 볼 수 있는데
항상 시작이 같다는 것이다.  

사연이 무엇이든 처음엔 불만을 이야기한 사람에게 공감을 하며 말을 시작한다.
이래서 이랬다는 거지요 하면서 특유의 유머를 넣어 격하게 공감을 한다.
한 바탕 웃음을 자아낸다.
그리고는 그다음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똑같이 공감을 시작한다.
그 사람의 입장과 감정을 적절히 넘나들며
왜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때 그런 느낌이 들었을 것 같다며 공감을 한다.
양쪽의 입장에서 다 같이 웃으며 공감을 한 두 사람과 방청객들 입장에서는
더 이상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문제를 풀어주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문제가 아니게 된 것이다.

살면서 많은 경험을 하게 되는데
언젠가부터

의견에 대한 유연성을 갖는 것이

분명한 자기 의견을 갖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얼마 전 인터넷에서 본 베댓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반박 시 니 말이 맞음.




XX야, 너 참 곤란했겠구나. 아내가 하필이면 밤에 그런 게시물을 보고 오해를 해서 그런 일들이 벌어졌을 때, 영문도 모르는 너는 중간에서 얼마나 힘들었겠니? 게다가 이 내용이 동문회 방에서 공론화가 되어 다툼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너는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니? 시간이 흐르다 보니 이젠 나서서 사과하기도 어려운 상황까지 와버린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너도 분명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루 종일 정신없이 일하며 열심히 사는 평범한 가장일 텐데, 갑자기 니 의도와 상관없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원망도 많이 되겠구나. 본의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선배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툴툴 털고 싶어도, 사랑하는 아내와 소원해진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해한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의도치 않게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게 한두 번이겠니? 여기엔 너와 친한 친구, 선후배도 있겠지만, 일면일식도 없이 그저 동문이라는 이유로 아껴주고 위로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훨씬 많단다. 그런 마음을 이해하고 니가 감정적으로 먼저 회복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내도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니가 먼저 다가가 안아주면 좋겠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데 그런 실수까지도 보듬어 줄 수 있어야겠지. 그리고 혹시 나중에 니가 마음의 여유를 좀 찾게 된다면 그때는 선배에게도 사과한다는 표현을 해보면 좋을 것 같다. 그게 이런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는 길일테니까 말이야. XX야 힘내라. 응?


YY야, 너도 참 힘들었겠구나. 잘 모르던 후배한테서 밑도 끝도 없이 그런 메시지를 받았을 때 얼마나 기분이 상했겠니? 감정이 잔뜩 들어간 오해의 말들을 들었을 때 황당함을 넘어 모욕감까지 들었겠지. 그리고 그 일을 해결하려고 얼마나 백방으로 알아보며 맘고생을 했을까? 정황이 파악된 후에도 이미 상할 대로 상해버린 감정은 되돌리기 어려웠을 것이고. 여러 차례 불쾌함을 전달하고 사과를 요구했는데 일언반구 말이 없는 후배를 이해하긴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 그저 선배로서 공적인 공간에서 이유 없이 욕을 먹은 것이 분해서 사실을 바로잡고 사과해 달라고 요구한 것뿐인데,  오히려 말꼬투리를 잡으며 의견이 분분해지고 논지가 흐려지니 너무 힘들 것 같아 안쓰럽구나. 이제 와서 글을 지울 수도 없고. 일일이 댓글을 달 수도 없고. 그래서 아예 FB를 끊고 쳐다보지 않으려고 해도 마음 한구석엔 늘 무거운 돌이 있겠지. 근데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건 너무 움츠려 들지 말라는 거다. 왜 그 글을 올렸을까 후회하지도 말고, 이제라도 지워버릴까 고민도 하지 말고. 너는 잘 못한 게 없어. 그냥 니가 기분이 풀릴 때까지 기다리고, 그다음엔 후배와 후배 아내의 실수에 대해 용서를 하는 게 먼저인 것 같다. 물론 그게 잘 안 돼서 사과를 요구하는 거겠지만, 사람이란 게 참 간사해서 시간이 흐르면 또 잊고 지내게 되기도 하잖아. 시간을 좀 두고 편하게 생각하자. XX후배도 나름대로 고충과 엄청난 스트레스가 있을 거야. 선배로서 그렇게 너그러이 생각하고 좀만 더 기다려 주자. 그게 그 후배를 위한 길이기도 하지만 너 자신을 위한 길이기도 한 것 같아서 말이야. 힘내고...     


선후배님들의 계속되는 댓글들을 보면서 마음이 점점 먹먹해졌습니다.


무심히 지나쳐도 되는 일을 우리가 마음 쓰고 시간 들여서 댓글을 남기고 하는 이유는, 이게 단순한 타인의 일이 아니라 우리 선배, 동기, 후배의 일이기 때문이고, 그 밑에는 우리 동문 간 서로 오해가 없이 잘 풀리면 좋겠다는 애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계속 올라오는 댓글에 XX와 YY는 빠져있고 우리 이야기만 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생각에는 이렇고, 내 생각에는 저렇고. 물론 관점에 따라서 다들 일리가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어떻게 이성적으로만 풀려 나가겠습니까? 의견을 주고받을 때 XX와 YY의 감정을 배재하고 논리적으로만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힘이 되어주고 싶어서 답글을 달았지만 정작 XX와 YY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젠 우리가 좀 참고, 그냥 두 사람을 보듬어 주었으면 합니다. 둘 다 너무 힘들 거예요. 그냥 좀 더 기다려주고, 두 사람 모두에게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이렇게 말해주면 어떨까요?


저 개인적으로는 XX 후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YY 동기는 20여 년 전 스쿨버스에서 어렴풋이 본 기억이 다입니다. 하지만 제가 XX야, YY야 할 수 있는 건 우리가 동문이기 때문입니다. 그 가파른 언덕길로 매일 힘들게 등교하던 우리의 추억이 큰 뿌리가 되어 하나의 나무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빨리 XX와 YY, 그리고 다른 선후배님들이 한 자리에 둘러앉아서 소주 한잔 하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선배님들도 많으신데 너무 길게 주저리 주저리 해서 죄송합니다.


(Talk Show, Powered by DALL.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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