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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my Park Apr 15. 2024

외모지상주의

Jailbreak

"Each day of our lives we make deposits in the memory banks of our children." (Chalres R. Swindoll)


아이들과의 '관계'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두 아들이 꼬마일 때부터 매일 밤 재워주면서 감사기도를 해주었다.  

그리고 기도가 끝나면 하루동안 감사한 일, 새롭게 느낀 일을 서로 나누었다. 


처음엔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인지

"오늘은 엄마가 치킨 시켜주셔서 감사해요."

"친구가 지우개 빌려줘서 고마웠어요."

이런 단순한 이야기만 나왔었다.

그런데 계속하다 보니 어느 날 밤엔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태인아, 오늘은 누구에게 감사하고 싶어? 아니면 뭐 새롭게 느낀 거 있어?"

"네 아빠, 저 느낀 게 있어요.

오늘 줄넘기하러 가서 다른 날보다 훨씬 더 많이 했거든요. 한 천 번 정도 했나...

다리가 아프고 힘들었는데 선생님이 오늘은 맘대로 쉬어도 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바닥에 큰 대자로 쭉 펴고 누웠는데 너무 편하고 행복한 거예요.

문득 든 생각이, 내가 매일 밤 따뜻한 이불속에서 몇 시간씩 자면서도 못 느꼈는데

겨우 1분 누워서 이런 느낌이 드는 걸 보니

그동안 편하게 누워서 잘 수 있다는 걸 내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구나.

앞으로는 이렇게 편하게 잘 수 있는 일상에 감사해야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와... 대단하다 우리 태인이. 그런 생각을 했어?

엄청 컸네. 생각이 많이 자랐어. 덕분에 아빠도 오늘 하나 배웠다. 고마워... ㅎㅎㅎ"


"아빠, 저도 오늘 하나 깨달은 게 있어요."

"응, 그래 태성아. 너도 이야기해 봐."

"오늘 저 축구 연습할 때 Short Game을 했거든요. 아깝게 2대 2로 비겼어요.

친구들이 이길 수 있었는데 아깝다고 슬퍼하고 서로 너 때문이라고 짜증을 냈어요.

그걸 보면서 승패에 연연해서 화내는 게 좋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다고 친구들을 위로해 줘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이 들었어? 우리 태성이 정말 대단하다.

태성이가 처음 축구선수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아빠가 해준 말 기억나니?"

"알아요. You win, you lose. 스포츠는 원래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거라고..."

"그래 맞다. 기억했구나. 너희들 정말 많이 컸다.

아빠가 태성이한테도 한수 배웠네. 오늘은 완전 너희들이 아빠 선생님이다. ㅎㅎㅎ"


처음엔 일상 속 작은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며 다양한 생각을 해보라고 시작했는데

오히려 깨달음을 얻는 건 나였다.  


그런데 언제가부터는 매주 금요일, 감사한 일이나 깨달은 일을 나눈 후에
삼부자가 태블릿으로 웹툰 하나를 함께 보는 루틴이 생겼다.

 
『외모지상주의』
 
태인이가 좋아한다고 해서 한번 들어가서 봤는데 초등학생들이 볼 내용이 아니었다.
주인공들이 룸살롱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얘기도 있고, 스포츠 또또 사기도박 에피소드도 있었다.
헉, 애들이 이런 걸 본다고? 순간 너무 당황했다.
그런데 이게 네이버에서 매주 목요일 웹툰 중 계속 1위를 차지할 만큼 인기라고 했다.
친구들끼리도 외지주 캐릭터들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한다고 하니
아빠가 보지 말라고 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혼자 몰래 예전 에피소드들 몇 개를 탐독하고 나서 태인이에게 말을 걸었다.
 
"태인아, 너는 형석이가 좋냐 누가 좋냐?"
"네? 그게 무슨 말이세요?"
"아니, 외모지상주의에서... 누구 좋아하냐고?
어떤 사람은 재열이가 제일 좋다고 하던데. 말없이 과묵한데 완전 재벌이라고..."
"잉? 아빠도 외모지상주의 보세요? ㅎㅎㅎ"
"응. 지난번에 네가 좋아한다 해서 그게 뭔가 하고 찾아보니까 재밌더라. ㅎㅎ"
"그죠? 재밌죠? ㅎㅎㅎ 나오는 애들이 진짜 너무 멋있어요. 다들 개성 있고...
저는 박형석이 제일 좋아요. 생긴 것도 엄청 잘 생겼는데 못하는 게 없거든요."
"아빠는 바스코가 좋던데. 남자답고, 싸움도 잘하고...
근데 또 가끔 순진한 구석도 있어요. 완전 반전매력... ㅎㅎ"
"아, 바스코. 맞아요. 바스코 싸움 짱 잘해요...ㅎㅎㅎ"
 
그 웹툰을 그린 박태준이 얼짱 출신이라는 것부터
각 캐릭터의 배경은 뭐고 실제 모델은 누구인지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이야기를 나눴다기보다 두 녀석에게 강의를 들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날 이후 우리는 매주 금요일 밤 자기 전에 함께 외모지상주의를 보기로 했다.
내가 금요일 밤에 약속이 있거나 해서 못 보는 날에는
녀석들도 혼자 보지 않고 기다렸다가 토요일에 함께 보는 의리도 생겼다.
 
웹툰을 실감 나게 읽어주며, 캐릭터 이야기도 많이 하고
내용 중에 야하거나 불손한 내용이 나오면 뭐가 옳고 그른 건지 직접 설명도 해주고
그러다 보니 어떤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아빠와 아들들 간의 스스럼없는 '관계'가 생기게 되었다.
 


몇 달을 그렇게 했을까...

한 번은 납량특집 에피소드가 있어서 자기 전 불을 끄고 누워서 실감 나게 읽어 주었다.

아이들이 놀라서 눈도 가리고, 소리도 지르고 했다.

그게 뭐가 무섭다고 아이들은 아이들이구나 싶었다.

그날 이야기를 다 끝내고는 뽀뽀해 주고, 잘 자라 아들~ 해주고 나왔는데

그 이야기와 그림이 무서웠던지 문 밖으로 계속 조곤조곤 소리가 들린다.


"형아, 자?

형아... 태인이형아, 자?

형아. 자냐고? 태인인 형아... 형아?"


그 소리가 너무 귀여워서 한참을 웃다가 방에 들어갔다.


"태성아. 왜? 너무 무서워서 잠이 안 와?"

"네. 자꾸 생각나가지고..."

"그래. 아까 그 얘기가 너무 무서웠지? 맞아...

아빠가 옆에서 재워줄게. 걱정 말고 자... 이제 괜찮다. 알았지?"

"네."


돌아누운 녀석의 등을 토닥거리며 재우는데

녀석들 간난 아가 때 토닥토닥 재우던 생각이 났다.

혼자 피식~하다가 보니까 태성이가 어느새 쌔근쌔근 잠이 들어 있었다.

등 두드려준 지 5분도 안 됐는데...


아이들은 뭘 해줘서가 아니라 존재만으로 효도를 다 한다.

그저 거기 있어주는 것만으로 즐거움을 주고 나를 어른이 되게 한다.

결국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애들이 잘 되게 하려면 내가 뭘 더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부모로서의 조바심과 불안감만 이겨낸다면 그 '관계'는 지켜낼 수 있다.


내가 부모님의 품을 떠났듯
녀석들도 곧 우리 품을 떠나 세상에 홀로 서겠지만

그 '관계'가 살아있는 한 난 늘 아빠다.  

행복하고 감사하다.


PS.

수년이 흘러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었을 때

문득 옛 생각이 나서 스마트TV로 외모지상주의를 켜봤다.

그런데 그 사이 시력이 나빠진 나는 TV 화면의 글씨들이 잘 보이지 않았고  

눈이 좋은 태성이가 내게 외모지상주의를 읽어 주었다.

예전에 내가 해줬던 것처럼.

실감 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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