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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my Park Apr 09. 2024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Jailbreak

"You don't have to get it perfect, you just have to get it going." (Jack Canfield)


내가 나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2020년 어느 날 처음 보는 주소에서 이메일이 와있었다.
"박만수님, 커리어케어 XXX입니다."
커리어케어라... 헤드헌터에게서 온 메일인가?
이직에 대해 생각이 없다 보니 관심은 없었지만

짧게라도 답장은 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아 메일을 열었다.


그룹사. 종합물류기업. 신사업. 오픈이노베이션. 물류자동화. 로보틱스. 플랫폼. DX.  AI/빅데이터

온갖 Hot한 키워드가 다 들어있었다.
내 과거 커리어와도 매칭되는 부분이 꽤 있어 보였다. 흠...
다만 가장 걸리는 것은 '종합물류기업'이라는 키워드.


헬스케어, 웰니스, 로봇, 태양광, 수처리, ESS, 파워반도체, 시니어케어, 키즈케어 등
운 좋겠도 LG에서 신사업을 하며 다양한 섹터들을 경험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물류'는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떠오르는 기억은, 몇 달 전 구글 Cloud 부문 부사장님이 방문했을 때
LG그룹에서 물류자동화 사업을 하고 있는 LGCNS에 연결시켜 드리고
LGCNS 사업담당님께 최근 물류트렌드와 사업경과를 들었던 게 다였다.

며칠 후 헤드헌터 전무님이 직접 회사 앞 커피숍까지 찾아와 주셨다.
포지션에 관한 소개도 해주시고 나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한참을 묻고 가셨다.
저녁때 다시 전화를 주셔서는,

"혹시 관심이 있으시면 아예 회사명도 알려드리겠습니다."
"아 네. 회사가 어딘가요?"
"현대차 그룹의 물류 전문기업인 현대글로비스입니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조금만 더 고민을 해보겠습니다."

난생처음 들었다. 현대글로비스.
잘 모르는 회사라서 내게 맞는 옷은 아니라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바로 거절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며칠 기다렸다가 답을 드리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 전무님을 뵌 것이 내게는 신선한 자극이 되었고  
커리어 패스에 대해 난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게 되었다.

LG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CDP(Career Development Plan)를 작성하고
개인의 커리어패스를 관리하는데, 나는 '사업가' 트랙을 선택했었다.

기업의 본질은 '사업'이라고 생각했고 직접 '사업'을 해보고 싶었다.
사업가로 성장하기 위해 사업부로 이동의 기회가 있는지 지속 알아보았고
1년 반에 걸친 '사업부장과정' 교육도 초고속으로 이수하며 준비를 해왔다.
하지만,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예비 사업부장이니, 최정예인재니 한껏 치켜주며 이런저런 준비를 시켰지만   
회사는 직접 사업경험이 없던 Staff 팀장에게 사업을 맞기는 모험을 하지 않았다.

내가 지금껏 해왔고 나름 익숙하게 잘할 수 있는 분야를 떠나
서툴지만 내가 믿는 꿈을 향해 미지의 도전을 해보려고 해도
나를 모르는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내 지금까지의 경력을 보고 인정을 해줄 뿐
어느 누구도 내가 소망하는 꿈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경력사원만을 찾는 그들에게 난 영원한 신입사원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수시발령이 났다.
그토록 원하던 사업부 중 하나였다.
조직개편이 끝난 1월에 신임 사업담당으로 발령받았던 사람이 퇴사를 하는 바람에
갑자기 대체로 사업담당이 된 신임 임원을 지원하는 역할이었다.  
원하던 모습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사업부로 가게 됐으니 잘된 거라 스스로를 위로했다.  
돌아보면 결과적으로 너무나 값진 경험이었다.
대기업의 큰 사업부들이 보통 '사업관리'를 주 업으로 하는 것과는 달리
작은 사업부라서 사업개발, 마케팅, 영업 등도 직접 추진을 해볼 수 있었고
개발이나 품질, 생산 및 운영 등에 대해서도 간접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마저도 1년 반 만에 조직이 해체되면서 아쉽게 막을 내렸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벌어질까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다잡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이후 혁신적인 신사업을 하는 이노베이션조직을 거쳐
LG사이언스파크에서 그룹 오픈이노베이션을 거버닝 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룹 Top께 보고를 하며 파트너십, 투자 등을 총괄했으니 나름 중요한 역할이었다.
난 또 최선을 다해 주어진 역할을 다하고자 노력했지만  

그럴수록 사업가 커리어와는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가 터졌다.
공항이 폐쇄되자 기업체, 대사관 등 외부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고
우리 회장단의 외부 미팅도 올스톱되었다.
코로나는 점점 더 기승을 부렸고 온 사회가 멈춘 것 같았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현대글로비스는 좋은 선택일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커리어케어에 회신을 주기로 한 바로 전 날 밤
어느 순간 갑자기 머리가 맑아졌다.

'내가 왜 고민하고 있지? 그래, 모르니까 한번 해보자.'


그랬다. 내가 물류를 너무 몰랐다.
그래서 너무 기대가 되었다.
그게 내가 잘하는 것이었다. 모르는 것에 도전해서 빨리 적응하고 해쳐가는 것.
LG에서 처음 신사업을 해보라고 했을 때 내가 잘 아는 분야는 없었다.
온통 모르는 분야들이었지만 이를 악물고 맨 땅에 헤딩하며 배웠다.
전문가들을 쫓아다녔고 수없이 밤을 새우며 공부하고 논의했다.
그러면서 내가 점점 성장한다고 느껴졌을 때, 그때의 그 희열은 잊을 수가 없다.  
다시 한번 나를 그런 성장의 재미에 빠뜨릴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새로운 물류 분야에서 사업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17년 동안 쌓아 온 그룹 네트워크와 평판을 모두 버리고
생판 모르는 회사로 나를 던지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남아있는 내 인생의 Life guage를 생각해 보았다.

지금 나는 내 인생의 어디쯤 와있을까?

앞으로 몇 년을 더 일할 수 있을까?
그 안에 몇 번의 커리어 이동 기회가 내게 찾아올까?

한 번도 LG를 떠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지만

그 막연한 기대가 오히려 스스로에게 너무 무책임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생각만 할게 아니라 이젠 행동해야 했다.


어떤 분야에서 최고가 된 사람들.

그들도 처음은 있지 않았을까?
아니, 거창하게 최고까지가 아니더라도

지금의 나는 어떻게 이곳까지 왔던가?
모른다고 주저앉아 있지 않고

몸으로 부딪치며 안갯속을 헤쳐나가던 그때가
나에게도 있지 않았던가?
 
결국 나에게 달렸다. 내 용기에 달렸다.

아무도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내가 나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그렇게 난
현대글로비스로 이동하게 되었다.  
후회 없는 3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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