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mmy Park Jun 27. 2024

060 끝을 준비하라

Jailbreak

“Life should not be a journey to the grave with the intention of arriving safely in a pretty and well preserved body, but rather to skid in broadside in a cloud of smoke, thoroughly used up, totally worn out, and loudly proclaiming "Wow! What a Ride!” (Hunter S. Thompson)


무조건, 무조건 최고급으로 해야 한다.


오래전에 '나는 가수다'라는 예능이 있었다.

저마다의 스타일로 인기를 끌던 최고의 가수들을 모아 대결을 시킨다...

생각할수록 기발한 기획이었다.

무명가수나 지망생이 아니라 이미 최고인 그들은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미묘한 경쟁의식과 부담감에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서로 다른 스타일의 가수들이 가슴으로 열창하는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도 감동받았다.

이미 실력으로는 검증받은 프로페셔널들이어서

가창력이 아니라 진정성이 중요했다.


한번은 인순이라는 가수가 나와 '아버지'라는 노래를 불렀다.

인순이는 아버지가 아프리카계 주한미군이었고
흑인 혼혈 가수로서 어렸을 때부터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녀가 혼신을 힘을 다해 아버지라는 노래를 열창했을 때

지난 시절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 같아 전율이 느껴졌다.

나도 몰래 눈물이 흘렀다.

그런데 함께 보시던 아버지도 어깨를 들썩이시는 게 아닌가.

아버지가 우시는 모습을 난생처음 보았다.

난 당연히 아버지도 노래를 들으며 아버지로서 공감을 하셨나 보다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니었다.

그 노래를 들으며 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를 떠올리신 거였다.

아버지가 6살 때 할아버지는 가벼운 병으로 병원에서 주사를 맞으셨다가

그게 잘 못 되어 돌아가셨다고 했다.

너무 어릴 때라서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당신의 아버지를 떠올리신 거였다.

아버지도 그 꼬맹이 시절이 있었구나 그때 새삼 깨달았다.

내가 평생을 바라보며 든든하게 기대 왔던 아버지지만
그 아버지도 기대고 싶은 등이 있었다.

당연하지만 잊고 있었다.


그렇게 세상은 순환하는 거였다.

엄밀히 말하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 모두는 죽음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중이다.

삶의 여정에 저마다 다양한 역경이 있고, 그걸 이겨내며 많은 희열이 있고

그러다 보니 그 과정에서의 넘어짐과 일어남, 성취함 등에 도취되어

많은 순간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잊고 지내기도 하지만

우리가 잊는다고

죽음도 우리를 잊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내 나이가 50이 되었다. 말로만 듣던 반 백 살.

30이 되었을 때도 자신만만했고, 40이 되었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런데 50이 되자 기분이 달랐다.

어느새 나도 소위 말하는 은퇴의 시기에 들어선 것이었다.

대기업에서 60이 넘어서까지 일하는 사람은 거의 극소수다.

최소한 사장 이상이 되어야 60을 넘겨서도 일을 했고

그렇지 않은 대부분은 50대에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이제 난 언제 회사를 그만두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된 것이다.

아직 뭔가 인생을 제대로 엎질러 보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은퇴라니 심란했다.

주말에 아버지를 뵙고 그런 말씀을 나눠보려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멀저 말씀을 꺼내셨다.


"아빠 나이가 올해 벌써 80이 되었다.
너랑 딱 30살 차이니까 너도 이제 50이 되었네. 인생이 참 빠르다.

그런데 80살이 돼 보니까 기분이 좀 이상하다.

60살이 될 때도 괜찮았고, 70살에 되었을 때도 별 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80살이 되니까 뭔가 느낌이 좀 다르네.

노화 때문에 여기저기 조금씩 불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큰 병 없이 이만하면 건강하게 살고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평균 수명이 80~90세 사이니까

이제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대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야.

돌아보니 참 인생이 빠르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우리 가족이 다 건강하고 큰 탈없이 지내는 게 참 감사하다."


결국 내 이야기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50대가 되어 은퇴를 고민하는 내가 30년 후에는

지금의 아버지처럼 80대가 되어 죽음을 고민하는 나이가 되겠구나...
아버지는 그날 아무 말씀도 해주시지 않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큰 교훈을 주셨다.

끝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

인생은 그 끝이 언제일지 모르니 더더욱 그렇다.


'택견' 전자오락을 하다 보면 위에 파워 Guage가 나온다.

적의 필살기를 맞으면 내 Guage가 뚝뚝 떨어지고

결국 그걸 견디지 못하면 Guage 가 바닥이 나며 메시지가 뜬다.


"You Lose"


그날 이후 난 인생 Guage를 그려 보았다.

택견의 파워 Guage 같이 막대 바를 그렸다.
막대 바의 끝에 내 인생의 끝이 있었다. 끝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현재 내가 어디쯤 와있고 얼마큼의 시간이 남아있을지 그렸다.

그리고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 언제까지 돈을 벌 것인가?

-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건 언제까지일까?

- 그 돈 주는 회사가 지금 다니는 회사인 건 언제까지일까?


돈을 번다는 건 중요했다.

돈이란 건 인간이 만들어 낸 가치 교환의 수단에 불과하지만

내가 돈을 번다는 건 그 돈을 주는 사람이나 회사에 내가 그만큼의 가치를 주었다는 뜻이므로

언제까지 돈을 벌 것인가는

내가 언제까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와 비슷한 질문이었다.

물론 세상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도 분명 있다.

그 무형의 가치는 늘 마음속에 간직해야 할 명제다.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결국 내가 만들어낸 가치는 돈으로 환산된다. 그게 가장 확실했다.


그렇게 스스로 질문들을 던지고

인생 Guage 위에 각각의 시기를 눈에 보이도록 시각화 하고 나니 인생이 다르게 보였다.

당장 일정에 허덕이고 오늘까지, 이번주까지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있었지만

그걸 넘어서는 더 큰 나침반 같은 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더 과감할 수 있었다.

당장 뭐가 풀리지 않아도 더 느긋할 수 있었다.

인생을 멀리서 바라보아야 가능했다.


태인이 태성이가 어렸을 때

부모가 자녀들과 평생 함께 보내는 시간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려서 너무 귀엽고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했던 때라서

그 기사의 통계가 공감이 되면서도 너무 슬펐다.

태인이 태성이를 불러서 그 이야기를 해주었다.


"태인아, 태성아 아빠가 오늘 기사를 하나 봤는데 너무 슬프더라."
"왜 슬퍼요? 무슨 기사인데요?"
"엄마 아빠는 요즘 너희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너무 행복한데 말이야.
기사에 보니 보통 부모와 자녀들이 인생에서 함께 지내는 시간이 평생이 아니래.

가령 부모와 자녀가 인생에서 함께하는 절대 시간이 100이라고 하면

그중의 80은 자녀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쓰고

그 이후 죽을 때까지는 나머지 20을 쪼개서 나눠 쓰는 거래.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고..."

"아... 그냥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계속 함께 지내면 되지 않아요?"

"그러면 좋은데 그게 지금 생각처럼 잘 되지 않을 거야.

그때쯤 되면 너희들이 친구들도 많이 생겨서 더 바빠질 테고
어른이 되면 할 일들도 많아질 테니까.

그러니 우리 시간이 남아 있을 때 더 친하게 지내자. 알겠지? ㅎㅎㅎ"

"네 아빠..."


그 말을 하고 난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특히 아이들과의 관계가 그렇다.

아이들과의 한정된 시간을 계속 쓰고 있다고 생각하니

함께 마주치는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쓸데없는 잔소리를 하며 소중한 시간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한 번이라도 더 즐겁게 웃으며 행복한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가끔 부모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조바심 때문에 잔소리가 올라와도

화를 내지 않고 참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좋은 관계가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80의 시간을 잘 보내야

나머지 20도 애틋하게 보낼 수 있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

부모로서 뭘 해주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사랑하는지, 믿고있는지 한 번이라도 더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


매일 이른 새벽에 출근을 할 때마다 꼭 아이들 방에 들러서

자고 있는 녀석들의 볼을 쓰다듬으며 이야기하곤 했다.


"아빠 다녀올게. 하루 즐겁게 보내라. 사랑한다..."


깊은 잠에 빠져 아이들은 알지도 못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오늘 생을 마감한 수 많은 사람들이 있을텐데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집을 나설 때 오늘이 그 날인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들이 마지막 순간 무엇을 떠올리며 후회할 것인가?

거창한 꿈을 이루지 못해서 후회되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는 못 보게 된다는 것이 안타깝지 않을까?

마지막 기회가 오늘인 줄도 모르고 그동안 충분히 사랑한다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지 않을까?

혹시 그게 내 오늘이라면 난 적어도 그런 생각이 들 것 같았다.


'아... 그래도 아침에 녀석들 얼굴을 만지고 사랑한다 말해서 참 다행이다.'


마지막에 무엇을 후회할 것인가?

'... 할 걸' 보다는 '... 해서 다행이다'가 좋다.

그것을 미리 떠올리고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끝을 잘 준비할 수 있다.


"나는 이제 연장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두렵거나 지쳤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해가 저물었기 때문이다."
(Nikos Kazantzakis, 임종 직전 쓴 메모)


누구에게나 해는 저문다.

해가 찬란하게 뜨던 순간부터 그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언제인지 모른다고 오지 않는 건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연장에 묻은 흙을 털고 정리하는 일이다.
모든 걸 멈추고 그동안 흘렸던 땀방울의 의미를 돌아보는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는 일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지 않게...

뺨에 스치는 바람마저 상쾌할 수 있게...


PS.

2013년 가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께서 이른 아침부터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혹시 잊었을까 조바심에 계속 당부하시며 중얼거리셨다.


"무조건, 무조건 최고급으로 해야 된다."
 
70년 동고동락했던 할머니를 보내드리며 93세의 할아버지께서 해주신 것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잠자리에 누우신 상태에서
기가 빠져 지리신 똥을 자기 몸 하나 가누시기 힘드신데도 손수 치워주신 것
한 시간만 있으면 한 줌의 재가 되어 나오실 할머니를 위해
가장 비싼 유골함을 준비해 주신 것뿐이었다.
살아생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다 잊고 천국에서 편안히 지내시길...

할머니가 소풍 마치시던 날
하늘은 청명하고 바람 한점 없었다.


(Funeral, Powered by DALL.E3)




작가의 이전글 059 Been there, Done that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