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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my Park Jul 01. 2024

061 강남역은 잘 있었다

Jailbreak

"The pain of parting is nothing to the joy of meeting again." (Charles Dickens)


삶의 대열에서 빠져나와 오랜만에 마주한 얼굴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아주 오래전 유학 후 한국에 돌아와 삼성전기에 다닐 때였다.

집이 서초동 교대 앞이었고 회사는 수원 매탄동이었다.

늘 새벽마다 강남역으로 걸어가서 출근버스로 출근을 하고

매일 퇴근 후 강남역에 다시 내리면 교대 앞까지 걸어오는 게 일상이었다.

주일에도 강남역에 있는 사랑의 교회를 다녔다.

그러니 거의 매일 내 생활권은 '교대-강남-수원'이었다.

강남의 골목골목이 눈에 보이듯 빠삭했고 상점들도 익숙했다.

한 참을 그렇게 지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회사도 LG전자로 옮기고 나니 생활권이 바뀌었다.

신혼집은 당산에 얻었고 회사는 여의도였으니

'영등포-여의도'를 왕복하는 것이 내 생활권이 되었다.

그리고 몇 번의 이사 끝에 현재의 광명으로 집을 이사하고

회사는 마곡의  LG사이언스파크로 옮기게 되었다.

갑자기 강서권이 내 생활권이 되었다.

가끔 판교의 부모님 댁에 가는 걸 빼면 그 근처에서 모든 게 해결이 가능했다.

나중에 회사를 글로비스로 옮겨 성수동으로 출퇴근을 하게 되자

3년간은 마곡 근처에 갈 일이 없었다.

오히려 '광명-성수-압구정' 라인에서 모든 걸 해결하게 되었다.


지난 20여년을 돌아보니 지역적으로 난 그렇게 옮겨 다녔다.

삶의 배경을 그 순서로 옮긴 것이 내 의도는 아니었지만

집과 회사를 따라가다 보니 내 인생의 물리적인 궤적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좋다 나쁘다의 개념은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내 삶이 그 언저리에서 벌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사람도 그랬다.


미국 유학 당시 거의 매일 보던 친구들도 한국에 돌아오자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물론 오랫동안 가족같이 지냈던 친구들이라
오랜만에 연락이 돼도 어색하지 않고 반갑게 마주할 수 있었지만

자주 연락하고 얼굴 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연락이 되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지 짐작만 할 뿐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이 딱 그런 경우였다.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은 더더욱 그랬다.

삼성에서 만났던 분들도 그랬고 LG에서 만났던 분들도 그랬다.

현대에서 뭔가 새로운 걸 함께 만들어 보려고 애썼던 동료나 후배들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훌륭하여 오래오래 친하게 지내고 싶은 분들이 많았다.

후배들 중에서도 내가 오히려 본받고 싶고
뭐 하나라도 도움이 되어주고 싶은 친구들도 많았다.
반면에 나랑은 뭔가 맞지 않아서

매일매일 마주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고역인 분들도 가끔 있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KTX 차창 밖으로 보이는 근사한 풍경들이 순식간에 지나가듯이

그 모든 인연들이 그 순간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내가 노력한다고 거스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보낼 것은 보내고 놔줄 것은 놔줘야 했다.


오래전에 이사할 때마다 어머니, 아버지가 티격태격하신 게 떠올랐다.

어머니는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다 보면 분명히 쓸모가 있을 거라 하셨다.

아버지는 구석에 넣어두는 건 버리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고 하셨다.

어차피 뭐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지금 버리고 어딘가에 잘 넣어 두었다고 생각하면 똑같다고 하셨다.

신박한 생각이었다.

인생의 인연이라는 것도 그런 것 같다.

어떻게든 잘 간직하고 유지하다 보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지만

눈에 띄지 않는 인연은 잊어버리고 어딘가에 잘 있겠지 하면 되는 거였다.

손목시계의 초침이 쉬지 않고 흘러가듯
우리 인생도 그렇게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거였다.


그런데 가끔
내려놓지 못하는 나를 만난다.

나와 함께 했던 그분들께 더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나를 발견한다.

더 멋지고 유능하며 본받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게 된다.

하지만 그건 매우 이기적인 바람이다.

내 인생에서는 소중한 인연들이 자연스럽게 흘러감을 인정하면서

왜 나는 그들의 인생에 좋은 사람으로 계속 남길 바라는가?

누군가의 기억에 좋은 사람으로 남는다는 건 근사한 일이지만

함부로 내가 욕심 내서 바랄 수는 없다.  

난 그저 내 철학대로 인생을 묵묵히 살아내면 되는 거고

그런 나를 가슴으로 보듬어 주시는 분들이 있다면 나는 축복받은 것일 뿐이다.

그게 최선이다. 더 이상은 없다.


얼마 전에 독서클럽 트레바리에 가입하여 처음으로 클럽을 신청했다.

VC 투자에 관한 주제의 책들과 문서를 읽고 토론을 하는 거였다.

클럽에는 대학생부터 현재 투자를 하고 계신 분들까지 당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모였고

각양각색의 생각들과 경험들을 듣는 것 자체가 신선했다.

그 모임을 위해 강남역에 있는 트레바리 아지트에 갔다.

강남역이 정말 얼마만인가 싶었다.

20년 전 매일 아침저녁으로 들락거리던 곳인데 처음엔 그렇게 낯설 수가 없었다.

그 세월 동안 강남역은 정말 많이 변해 있었다.

거리도 낯설고 주변의 상점들은 몰라볼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골목으로 들어서니 옛 기억이 새록새록 나기 시작했다.

오래전 내가 골목골목을 누비던 그때 그 강남역이 맞았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강남역은 잘 있었다.

반가웠다.


문득 강남역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잊고 지내도 오랜만에 얼굴 마주치면 괜히 반가운 사람.
그새 머리도 빠지고 배도 나왔으며 얼굴 곳곳엔 주름이 잡혀
너도 어쩔 수 없이 중년의 아저씨가 다 되었구나 싶다가도

조금만 다시 이야기를 해보면
"아... 그때 네가 맞구나. 너 잘 있었구나..." 싶은 그런 사람.


이 번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많은 분들을 만났다.

그동안 회사를 다니며 챗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에서
언제 얼굴 한번 보자고 본의 아니게 공수표를 날렸던 수많은 분들이 있었는데

그중 많은 분들을 실제로 만나서 얼굴도 보고 밥도 먹었다.

보석 같은 인연들이었다.

죄송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너무 다행스럽기도 했다.

인생의 흐름에서 빠져나오니 가능했다.

가끔은 멈추어야 만나진다.


살다 보면 끝까지 잡고 싶은 인연이 있다.

그땐 돈과 시간, 관심을 들여 애써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는 그 자체가 내 욕심일 수 있다.
혹시 그렇게 느껴진다면 집착을 버려야 한다.
겸허히 내려 놓아야 한다.   
내 인생에서도 그분들을 놓아 드려야 하고
그분들의 인생에서도 나 스스로를 자유롭게 풀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라도 우연히
우리 인생의 궤적이 다시 한번 겹치게 된다면

그때 그 기막힌 우연에 환하게 웃으며 마음껏 반가워 할 수 있다.


세상 수많은 사람들 중 서로 만났다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다.

영영 잊혀짐에 슬퍼하지 말고
언젠가 만났음에 감사하면 될 일이다.


(Kangnam, Powered by DALL.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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