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은 실패를 하면서 배운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OO 뉴스레터인데요..
블로그 사진을 혹시 사용해도 될까요?
댓글을 작성할 때까지 고민만 30분이 걸렸다. 소멸 지역 여행 동아리에서 뉴스레터를 만들기 위해 다른 블로거에게 사진 사용을 요청하는 일이었는데, 혹시나 거절당할까 봐 문구 하나하나를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결국 정중한 거절 답변을 받았을 때, 하루 종일 기분이 가라앉았다. '내가 뭔가 잘못했나?', '너무 뻔뻔했나?' 온갖 자책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다. 나는 여타 다른 사람들과 마찮가지로 거절이 두려웠다.
이런 나에게 SETA(기업가 정신 기반 창업 프로그램) 코치진이 던진 과제는 충격적이었다.
"장난감 하나를 줄테니, 그것을 가지고 물물교환으로 가치를 증대해 보세요."
SETA라는 성균관대학교에서 매학기 진행되는 기업가 정신 기반의 창업 프로그램은, 늘 우리에게 새롭고도 난해한 과제를 주었다. 그리고 이번 과제는 듣기만 해도 아찔했다. 갑자기 성수동 길거리에 나가서, 이 플라스틱 글라이더를 사람들에게 팔라니.. 이런 당혹스러움은 오랜만이었다.
물물교환은 실제로 '스탠퍼드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교육과정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스탠퍼드 대학교 d.school에서 개발한 이 교육 방법론은 극히 제한된 자원(보통 5달러나 간단한 물건)으로 시작해 창의적 사고와 실험 정신을 통해 가치를 키워나가는 과정이다. 핵심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TED 강연 <100일간의 거절을 통해 배운 것들>을 기반으로 체크인을 시작한, 코치진의 말씀이 떠올랐다. "실패를 경험해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요청하는 댓글하나 쓰는 것도 버거워하는 내게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물물교환을 하라니.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연습이었다.
물물교환의 과정을 하나 하나씩 담아내어 브런치 글로 새로 쓴다. 과정은 늘 날 것이지만, 그 날 것은 때론 인사이트를 주기에 솔직한 그 자체를 담아내고자 한다.
5500원짜리 글라이더를 손에 쥐고 서울숲에 도착했을 때부터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아이들로 북적거렸던 서울숲이 평일 점심시간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뛰어노는 아이들 대신 운동 나온 중장년층과 산책하는 회사원들만 보였다. "글라이더로 아이들과 놀아주는 서비스를 30분간 부모님께 판매한다"는 우리의 완벽한 계획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불안감은 사람을 조급하게 만든다. 피크닉을 나온 여성 두 분께 우리는 성급하게 물물교환을 제안했다. 뻥튀기를 주신다고 하셨다. 덥석 받았다. 5500원에서 2000원으로, 숫자로만 봐도 가치가 떨어졌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물물교환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개념을 갑자기 제시하는 대학생들에게 뻥튀기라도 건네주신 그분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 뻥튀기가 문제의 시작이었을까? 아니면 그다음 물티슈였을까?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약하게 꼬인 실타래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엉켜갔다. 우리 손에는 잡다한 물건들이 쌓여갔다. 물 두 병, 강아지 배변봉투, 레몬사탕, 마이쮸 포도맛 한 개, 일회용 포크 8개, 펜 1개, 메가커피 쿠폰.
문득 처음 받았던 5500원짜리 글라이더가 그리워졌다.
우리는 왜 초반에 실패했을까?
난 이 이유를 “줏대 없음”으로 설명하고 싶다. 개인의 독자적인 “기준”을 가지고 그 기준에 따라 가치 판단을 해내는 사람을 보고 우리는 “줏대 있다”라고 이름을 붙인다. 우리의 프로젝트에는 ‘기준’이 빠져 있었다. 가치 증대 프로젝트에서의 핵심은 가치를 ‘증대’하는 거래를 여러 회 하는 것이다.
팀 전략 회의 때 우리는 글라이더의 가치를 '즐거움'과 '추억'으로 정의했다. 그렇다면 모든 거래에서 이 질문을 던졌어야 했다. "과연 뻥튀기가 글라이더보다 더 많은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을까?" "물티슈는?" "펜은?"
하지만 우리는 묻지 않았다. 상의 없이, 기준 없이, 사람만 보이면 무작정 달려들었다. 조급함 때문에 팀 내에서 정한 기준을 잊었고, 기준을 잊었기에 가치가 절감되었다. 기준 없는 실행은 방향성을 잃는다.
나침반 하나 없이 그냥 사람들을 붙잡고 교환을 요청했던 나는, 2주 전 리플렉션 페이퍼에 "방향성이 중요하다"고 몇 번이나 적어두고도 실전에서는 조급함에 휘말려 길을 잃어버렸다. 나침반 하나 없이 그냥 사람들을 붙잡고 교환을 요청했다.
최종 회고 때 나는 팀에 대한 미안함을 크게 느꼈다. 다들 작고 큰 실수들을 했었겠지만, 방향성을 생각하지 못한 나의 조급함 때문에 초반에 우리 팀이 힘들어했던 것 같아서 미안했다. 더 잘할 수 있었을 것만 같은데, 그 조급함이 뭐라고, 또 그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뭐라고, 오히려 팀에게 장애물이 되었던 것 같다.
일이 잘 풀릴 때는 갈등이 잘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손에 잡다한 물건들이 늘어가면서 팀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포크 2개와 펜을 교환할 때였다. 책을 읽고 있던 여성분께 다가가 물물교환 프로젝트를 한다고 말씀드리니, 가방을 뒤적거리시다 펜 하나를 꺼내주셨다. 그때 난감해하셨던 여성분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표정을 잊지 못한 건 나뿐만 아니었다. 한두 명씩 말수를 잃어갔다. 내가 앞장서서 주위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 동안, 세 명의 팀원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우리 방식이 과연 맞는 방식일까?"
사람들은 늘 우리에게 마지못해 물건을 건네주었다. 삥 뜯는 기분도 들었다. '내가 물물교환을 하는 걸까?' 아니면 '과제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걸까?' 이 찝찝한 마음을 모두가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다.
팀원 한 명이 먼저 말을 꺼냈다. 더 부드러운 어조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자고, 먼저 친밀감을 형성하고 나서 물물교환을 제안하자고 했다. 반면 나에게는 횟수가 중요했다. 많은 사람에게 시도해보면 누군가는 운 좋게 응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팀을 둘로 나누기로 했다. 의견을 하나로 합치기보다 각자의 방식대로 30분간 따로 활동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활동이 끝나고 연무장길로 넘어가던 중 어쩌면 우리의 문제점은 ‘소통 방식’이 아니었을 수 있겠다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연무장길로 넘어갔을 때가 오후 2시쯤이었다. 손에 든 물건의 가치는 여전히 5000원 정도. 즐거움도 돈도 벌지 못한 상태였다.
횡단보도에서 갑자기 옆에 있는 외국인에게 삼다수를 내밀었다. "저희가 성균관대 대학생인데요." 대학생의 과제를 들먹이며 불쌍한 척도 해봤지만, 그 누구도 우리에게 물건을 제안하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크림빵을 먹는 여행객들, 계단에 앉아 가방을 정리하는 외국인 무리, 모든 사람에게 시도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줄 만한 게 없어요."
40분 넘게 지속적으로 거절당했다. 스타벅스에서 쉬어가기로 했을 때 우리 팀의 마음이 가장 지쳤을 것이다. 안 그래도 포근한 봄 날씨,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오랫동안 정적이 흘렀다. 커피를 들이마시는 소리만 들렸다.
팀원 한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수많은 실패 속에서 우리가 얻은 것들에 대해 말해줬다. 우리의 작은 시도들, 큰 수확이 없었던 그 수많은 시도들에 '용기'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 우리는 어쩌면 실패하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일 수도 있었다. TED 강연 <100일간의 거절을 통해 배운 것들>의 연설자처럼, 우리도 실패의 아픔을 느끼고 그대로 끝내서는 안 됐다. 우리는 우리의 실패를 직면해야 했다.
탁자에 물건들을 다시 올려놓고 분석해봤다. 삼다수는 예상보다 가치가 낮았다. 관광객들은 이미 물을 가지고 있었고, 500ml 물병은 걸어 다니는 사람들에게 걸리적거리는 존재였다. 물티슈도 마찬가지였다. 피크닉 나온 사람들은 이미 준비를 철저히 하고 왔다.
그런데 펜은 달랐다. 언제나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존재였다. 이 펜 한 자루가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쓸만한 물건이었다. 터닝포인트가 될 이번 미션을 한 팀원이 맡아주었다.
몇 분 뒤, 우리에게는 옥스포드 노트가 생겼다.
옥스포드 노트로 끝내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노력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니까. 금세 시간은 3시 30분을 향해갔다. 홈그라운드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아쉬웠다. 더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아쉬움을 속으로 삼키지 않은 한 팀원이 횡단보도를 향해 뛰듯 발걸음을 옮겼다. 중학교 앞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숲도, 연무장길도, 사람들의 가방은 늘 가벼웠다. 가벼운 산책용 가방에는 물물교환할 물건이 들어있지 않다. 하지만 학생의 가방은 다르다. 온갖 잡동사니가 뒤섞여 있는 것이 중학생의 가방이다.
중학생 무리가 교문을 나왔고, 그 팀원은 앞장서서 이들에게 제안했다. 한 아이가 가방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중학생 친구의 손에 든 물건은 의외 중의 의외였다. 큼직한 드럼스틱을 가방에서 꺼냈다. 플라스틱 글라이더에서 시작하여 큼직한 드럼스틱까지. 우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가치를 증대할 수 있었다.
이 챌린지가 끝나고 나서 나는 변했다. 물론이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나는 거절이 두렵고, 실패를 힘들어한다. 사람은 드라마틱하게 변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그럼에도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6개월전부터 나는 동네 카페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인터뷰로 담아내고 싶다는 작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6개월 전부터라고 말을 붙이는 이유는, 6개월동안 거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인터뷰를 시도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실 3주전에 나는 처음으로 시도를 해봤다. 내 인스타그램 계정을 단골 카페 사장님께 보여드리고,짧은 인터뷰를 제안을 했었다. 그리고 결과는 어땠냐고?
거절당했다.
그렇지만 예전과 다르게 그 거절은 그렇게까지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 그냥 이 카페 사장님께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졌구나." 실패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이성적으로 원인을 분석하게 됐다.
사람들이 거절하는 이유는 "내가 싫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그 물건이나 제안이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아서였다. 혹은 인터뷰의 경우, 카페 사장님의 성향 때문일 수도 있었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다른 카페를 포지셔닝 해본다거나 인터뷰 방식을 다르게 제안하는 등의, 내가 움직일 next step이 나왔다.
40분간 연속으로 거절당했던 그 경험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단순했다. 거절은 별것 아니라는 것. 그리고 실패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것.
글라이더 하나로 시작된 하루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드럼스틱이 아니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마음이었다. 여전히 두렵겠지만, 나는 이제 그 두려움 내에서 시도를 해볼 수 있게되었다. 어찌되었든 우리에게는 실패는 없으니까. 단지 시도만 있을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