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고도에서 마주한 희망에 대해
아득함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순간들이 더러 있다. 몇 달 전의 내가 그랬다. 이미 다 죽어가던 의지가 더 빠르게 소멸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리 좋아하던 영화도, 독서도 모두 마다한 채 절벽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어 대다 『천 개의 파랑』을 집어 들었다. 책 속에 담긴 이야기는 삶의 비참함 따위는 잠시, 어쩌면 오랫동안 잊을 수 있을 만큼의 맑은 격려로 가득했다. “천천히 달려도 괜찮아.” 이 말이 『천 개의 파랑』을 요약하는 가장 선연한 문구가 아닐까 생각한다.
『천 개의 파랑』 속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자신에게 찾아온 방황을 헤집으며 저마다 홀로 들끓고 있다. 경주마 투데이의 파트너로 로봇답지 않게 푸른 하늘의 의미를 찾아대는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 자신이 지닌 무거운 재능에 차마 걸음의 방향을 정하지 못하는 연재. 휠체어에 몸을 맡긴 채 일상이 되어버린 모험을 견디는 은혜. 과거의 상실과 떨리는 손가락을 등 뒤로 숨긴 채 딸들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보경. 눈을 꾹 감은 채 전력을 다해 뛰는 일은 차라리 쉽다. 오히려, 바닥에 닿는 뒤꿈치의 감각을 느끼며 푸른 하늘을 바라본 채, 천천히 지나가는 구름에 맞춰 나의 속도를 조정하는 일. 그렇게 천천히 달리는 일에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경주마 투데이가 느릿한 속도로 다시금 달릴 수 있도록 아이들과 콜리, 보경 모두 저마다의 용기를 낸다. 그들의 용기에서, 나는 위로와 기쁨. 자유와 속도. 변덕과 열정을 읽었다.
날카로운 시선과 글들에 너무 오랫동안 스며들어 가벼운 다정함에도 낯선 감각을 느낄 때가 있다. 『천 개의 파랑』은 그런 난삽함 속 구겨졌던 마음에 찬란한 위로를 불어넣어주는 책이다. 예상치 못했던 위로에 이끌린 몸은 보통보다 더 넓은 걸음을 옮기기 마련이니. 아무런 배제도, 배척도 없는 아름다움이 스며들어 있는 이야기 속에 묻혀 형체조차 없는 미래에 종이 뭉치처럼 가볍지만 소멸되지 않는 희망을 품게 됐다.
천선란 『천 개의 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