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 잠을 설쳐 잠시 깨었다가 다시 자는 바람에 늦잠을 잤다. 7시 30분이 넘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2층 청소까지 다하였다. 2층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데 오늘은 일산에 사는 조카네 식구가 온다고 하여 부랴부랴 청소기를 돌리고 전동걸레로 바닥까지 닦았다. 식사와 청소, 자질구레한 정리를 마치고 나니 어느덧 10시가 다 되었다. 집안일이라는 것이 참 귀찮은 것이고 시간도 많이 든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집사람은 이 귀찮은 것을 거의 30년가량 혼자 해왔는데 이제야 대단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집이나 정원, 틀밭에 당분간은 딱히 해야 할 것이 없다. 잔디밭의 잡초도 한동안은 신경 안 써도 될 듯하고, 옮겨 심을 꽃모종이나 채소도 다 심었다. 심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그냥 트레이에 자라고 있는 약 20-30 포기 정도의 채송화와 5-6 포기 알릿섬만 남아있는데 이것들은 좀 더 기다려 봐야 할 것 같다. 감나무, 대추나무, 배롱나무도 잎이 잘 나와서 투명한 연둣빛으로 봄 볕을 잔뜩 맞이하고 있고, 집 뒤편에 가식해 둔 리빙스턴데이지는 살이 올라 통통해져서 1-2달 후면 꽃을 피울 것 같다. 리빙스턴데이지, 알릿섬, 채송화, 고산 물망초는 내가 직접 씨앗을 뿌린 것인데 싹이 트고 자라고 하는 것이 참 신기하고 대견하다. 이것들이 꽃 필 무렵에 나는 튤립이 필 때만큼 또 감동을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편안하고 걱정이 없으니 에피쿠로소가 말한 ‘쾌락’ 상태를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요리도 할 줄 아니 먹는 것에는 문제없고, 옷은 좀 헐렁해진 것이지만 옷장에 가득하다. 정원이 있는 작지만 소박한 집에서 보일러 기름도 가득 있으니 춥지도 않고, 아직은 식재료나 기름을 살 돈도 여유가 있다.
몸 상태도 나쁘지 않다. 가끔 관절이 욱신거리기도 하고 치아나 치질은 항상 시한폭탄 같이 조마조마한데 그래도 딱히 크게 아픈 데는 없다.
몸에 괴로움이 없고 생존에 필요한 욕구가 충족된 ‘아포니아’ 상태는 이미 이루어진 셈이다. 정신적 고통, 근심 같은 것도 거의 없다. 아이들이나 형제들이 각자 힘들게 살고 있지만 그것은 그들의 고통이고 나의 고통은 아니며 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돈을 벌지 않으니 돈벌이로 관계하는 사람들이 없어 사회 생활상의 고통도 없어졌다. 죽음에 대한 공포도 거의 없다. 예전에는 이 공포는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되었는데 이제는 달라졌다. 죽음은 한 번은 찾아오는 것인데 그 시기만 문제 될 뿐이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걱정하는 것은 정말 불필요한 것이므로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한다. 에피쿠로소 말대로 죽음은 살아 있을 때는 오지 않고 죽은 후에는 내가 존재하지 않으니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이쯤 되면 좀 건방지지만 영혼이 동요하지 않고 심신이 안정된 ‘아타락시아’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감사할 따름이다.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에 대하여 감사함을 느낀다. 나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이렇게 평온함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부처님, 옥황상제, 우리 가족, 이웃 그 밖의 모든 분들께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