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병

by 프로스윤

I.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그제에 이어서 어제까지 연 이틀 불볕 더위속에서 오후 2시 무렵에 티업 하는 골프를 강행했더니 아무래도 더위를 먹은 것 같다. 후배들과의 약속이어서 그냥 편하게 쳤지만 더위를 이유로 취소할 수는 없는 모임이었다. 가급적 그늘진 곳을 찾고, 조금이라도 먼 곳은 골프카트를 타고 최대한 햇볕 노출을 덜 하는 방법으로 설렁설렁 친 것이다. 그래도 무리가 되었는지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오니 9시 반부터 피곤하고 졸려서 선풍기를 틀어 두고 잠들었는데 밤 1시 무렵에 두통으로 잠이 깼다. 지금까지 자다가 머리 아픈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좀 꺼림칙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서 증상을 찾아보니 일사병 초기 증상으로 판단된다고 하였다. 머리가 심하게 아픈 것은 아니지만 무겁고 둔통이 있으며 아침에는 속도 약간 메스꺼운 느낌도 났다.

두통의 원인은 대부분 뇌혈당 부족에서 오는 것이므로 부엌에서 조청을 찾아서 물에 타 한 컵을 마시고 다시 자리에 누웠지만 계속 비몽사몽 간이고 별로 호전되지 않았다. 이렇게 침대에 9시까지 누워있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좀 이른 시간에 에어컨을 켜고 땀에 절은 옷들을 세탁기에 넣어서 돌렸다. 길고양이 밥도 챙겨주고 틀 밭에 나가서 오이를 2개 따서 아침 먹거리를 준비하는 등 몸을 좀 움직이니 그나마 견딜 만 해졌다.

여전히 머리가 무겁고 온몸이 개운하지는 않지만 내일 아침 7시에 또 골프 약속이 잡혀있는데 정말 큰 일이다. 가급적 이런 약속들을 한 곳에 몰아서 잡다가 보니 이런 변고가 생기고 만 것이다.

내가 내 몸을 이런 식으로 혹사시켰지만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다. 38도까지 올라가는 땡볕에 골프를 친 사람이 미친 사람이지, 집사람 말대로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내일은 이른 아침이긴 하지만 덥기는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렇지만 일단 오늘 상태를 보고 참석은 하되 정말 카트만 타고 다닌다는 생각으로 움직임을 최소화해야 할 것 같다. 이런 상태이면 나머지 세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불참을 하는 것이 맞겠지만 지난번에도 집사람 병원 동행을 이유로 내가 하루 전에 불참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만약 또 불참한다면 매달 정기적으로 한 번 하는 이 모임은 없어지거나 나는 탈퇴될 것이다. 그렇게까지 갈 수는 없으니 일단 참석은 해서 그늘에서 물만 마시다가 온다는 심정으로 나가기만 하자.


II. 이런 약속, 모임, 관계가 뭘까?

사회 속에서 그 구성원으로서 조직 생활을 하는 인간은 항상 타인과 약속을 하고, 모임을 한다. 타인과의 관계를 지속하게 하는 것이 약속이고 모임이다. 관계가 단절되지 않는 한 약속이나 모임은 없을 수 없다. 절해고도 무인도에서 살거나 산속에 자연인으로 살아간다면 이런 관계가 더 이상 필요 없어 약속이나 모임을 할 이유가 없다. 수렵이나 채취, 직접 경작하여 자급자족하는 원시인 같은 삶을 살면 된다. 나는 그런 삶을 목적으로 하지도 않는다. 내가 사는 이 사회에서 나의 존재에 대한 나름의 의미를 찾고 타인과 내가 관계하는 여러 사람, 조직에 일정한 기여를 하면서 살고 싶다.

존재와 의미, 기여에 대한 목적이 있으므로 어제 같은 무리한 일정이 생긴 것이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자. 좀 더 유연하게 여유 있는 시간과 간격을 두고 미리 예측하면서 약속을 잡고 모임을 하면서 이런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집사람에게도 아프다고 말할 수도 없으니 혼자 점심은 좀 실하게 챙겨 먹어야 한다. 영양제와 단백질보충제도 꼭 챙겨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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