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일기

감나무

by 프로스윤

바람이 불어 체감온도는 영도다.

정원의 감나무는 잎이 모두 떨어져 감만 30여 개 달려있다. 키가 150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작고 어린 나무에 주황색 감만 조랑조랑 달린 모습이 마치 장난감 소품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감이 익어 가면 따기 어려운 데 있는 꼭대기의 까치밥만 남겨두고 모두 따서 조금씩 홍시를 만들어 먹지만 나는 나무에 남겨두고 홍시가 거의 다 된 감만 딴다. 그러다가 보니 나무의 크기에 비해 달린 감이 많아 국화와 함께 이 늦가을의 정원을 폼나게 해주는 주요 볼거리가 되었다. 강화에서만 자란다는 저 품종(장준감)은 특이하게도 씨가 없다. 홍시가 다 되어도 너무 달지도 않고 껍질도 비교적 단단하여 홍시로 먹기에 좋다. 보통 연시로 먹는 일반 감은 홍시가 되면 달기도 엄청 달고 색깔도 약간 투명하면서 껍질도 얇아 홍시가 손에 묻기도 해서 먹는 것이 불편할 정도이지만 장준감은 다르다. 옛날에 꿀이나 단 것이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매우 당도가 높은 연시가 최고의 간식거리였고 떡에 찍어먹어도 될 정도로 달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단 것이 넘쳐나니 오히려 살짝 덜 단 장준감이 먹기에 부담이 없다. 표면이 단단해 힘을 줘도 잘 물러 터지지 않으니 손에 홍시가 묻을 일도 없어 꽤 잘 개량된 품종인 것 같다. 개량시킨 품종인지 원래 강화에만 있는 감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나서 자란 경남 고성의 작은 마을의 우리 집에는 감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 사립문 바로 옆에 반시 감나무가 있었고 사랑채 옆에 아주 오래된 고목의 침시 감나무가 있었다. 침시 나무는 나무가 너무 오래되어서 나무 표면도 시꺼멓고 약간 습기도 있어 미끌 그렸으며 감이 많이 달리지도 않았다. 어릴 때는 나무에 올라가서 노는 것이 주요 놀이였고 친구들과도 누가 높이 올라가냐가 용기를 표현하는 징표였던 때이다. 그런데 나무에 습기가 있다 보니 어린 우리도 그 나무에는 잘 올라가지 않았다. 이끼가 낄 정도는 아니지만 습기가 있으니 자칫하면 미끄러질 수도 있고 옷에 나무의 진액이나 껍질 부스러기가 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반시 감나무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젊은 나무여서 표면도 매끈하고 깨끗했으며 올라가서 놀기에도 딱 적당한 높이의 나무여서 집에서 혼자 집을 보거나 하면 마을의 다른 집들을 살펴볼 수도 있어서 종종 나무에 올라가서 놀기도 하였다. 감나무는 줄기가 그렇게 튼튼한 나무가 아니어서 높이 올라가지는 않지만 사립문보다 훨씬 높이 올라갈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단감은 아주 귀했다. 우리 마을에는 아랫동네에 단감나무가 한 그루밖에 없었고 다른 나무들은 전부 떫은 감나무였다. 그래서 우리 집을 비롯하여 모든 감나무들은 가을까지 빨간 상태를 유지하면서 달려있었다. 만일 단감나무였다면 익기도 전에 모두 따 먹어서 실제로 수확할 것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우리 집 뒤에 큰 집에 있는 오래된 자두나무에도 자두가 열리면 여름이 채 되기 전에 털이 몽실몽실 달린 어린 풋과일을 그대로 거의 다 따먹었고 빨갛게 익은 자두를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우리 집의 무화과나무에도 그 열매의 끝부분이 노랗게 되기 전에 푸른 상태로 아무 맛이 없음에도 다 따먹었다. 과일이 익을 때까지 아이들이 내버려 두지 않았다. 국민학교에 있는 큰 살구나무가 두 그루 있었는데 그 살구가 익기 전에 아이들이 돌을 던져서 따서 먹었다.

나는 국민학교 다닐 때 반장, 회장을 매년 하였는데 매주 토요일에 어린이 회의를 하여서 다음 주에 지켜야 할 주훈(週訓)을 정해서 선생님에게 보고하고, 그렇게 정해진 주훈은 칠판 오른쪽 위에 항상 한 주(週) 동안 적어놓았다. 그 주훈은 살구가 달리기 시작하면 항상 ‘풋과일을 먹지 맙시다 ‘였다. 풋과일이 없을 때에는 ’ 규칙적인 생활을 합시다 ‘였는데 풋과일이 나오면 이렇게 바뀌었다. 사실, 규칙적인 생활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면서 그냥 좋은 것 같으니 그렇게 주훈으로 정했고, 아이들이 살구나 자두의 풋과일을 먹고 배탈이 나는 사례가 많으니 이렇게 주훈이 되었다. 그러다가 어떤 담임선생은 풋과일을 먹지 맙시다와 같은 것은 주훈으로 정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우리에게 말해주는 분도 계셨는데 그럴 때 우리는 정말 난감했다. 전혀 토론문화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에게 늘 해 오던 상투적 문구를 못쓰게 하니 다른 괜찮은 문구가 생각날 수가 없었다. 이런 어린이 회의는 보통 토요일 마지막 시간인데 이 회의가 마치면 바로 집에 갈 수 있는데 문구를 생각하라고 하니 모두들 어쩔 줄 몰라했다. 그때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는지는 지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감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가을의 대표 과일임에 틀림없다. 오늘도 두 개 정도의 홍시를 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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