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와 망고

by 프로스윤

I. 갑자기 추워졌다. 바깥 기온이 2도이다. 체감온도는 영하이고 부레옥잠 미니 분수에는 살얼음이 얼었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간밤에 배가 고팠는지 길고양이 반반이가 제법 이른 시간에 현관 앞 햇볕이 비추는 곳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 얼른 고양이 간식과 고기 몇 점을 녹여서 주니 냉큼 먹고는 다시 햇볕으로 나간다. 춥긴 추운 모양이다.

아침으로 두유를 갈고 수제 요구르트 1잔, 계란프라이 1개와 바나나 1개를 먹는다. 잘 숙성된 바나나가 정말 달콤하다. 나는 과일 중에서 바나나와 망고를 제일 좋아한다.


II. 처음 바나나 맛을 본 것이 아마 고등학교 다닐 때인 1979년 무렵인 것 같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학교로 가는 길목에 있는 진주 중앙시장 과일가게들이 바나나를 팔고 있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가격이 꽤 비싼 것이라 혼자 사 먹을 수는 없었다. 그 해 초여름 무렵 할아버지 기일에 제수로 아버지께서 바나나를 올렸는데 그때 처음 바나나 맛을 보았다. 그림에서나 보던 바나나 맛을 그때 처음 먹어보았지만 약간 무덤덤했고 그 맛이 그렇게 인상적이지 못했다. 집 근처에서 흔하게 맛보는 진양 배, 진주 단감 등이 훨씬 달고 아삭거리며 맛있었다.

그 뒤로 수입자유화가 되어 바나나 가격은 훨씬 싸지고 자주 먹어보기도 했지만 바나나가 맛있다는 생각을 별로 못했는데 최근에 들어와서 간식용이나 식사 때 조금씩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바나나 맛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사실 바나나의 당도가 그렇게 높지는 않다. 그런데 조금 숙성되면 그 당도가 적당하게 높아지면서 육질이 부드러워지고 입안에서의 감촉이 살아난다. 특히 오늘 같이 아침식사용으로 먹는 바나나는 정말 맛있다. 약간 시큼하면서 시원한 요구르트 한 모금을 마신 후 부드럽고 달콤한 바나나를 살며시 깨물면 입안에서 미끄러지듯 맴돌다가 부드럽게 공복의 위장으로 스며든다. 기가 막히다. 감사하다, 오늘도 바나나를 먹을 수 있는 아침이 있기에.


III. 망고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좋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과일 중의 최고는 역시 망고라고 생각한다.

25년 전 제주에 근무할 때인데 집사람과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먹음직스럽게 잘 익은 애플망고를 발견하고 장바구니에 담아서 계산하려다가 깜짝 놀랐다. 애플망고 가격이 1개에 15,000원이었다. 나는 사실 가격표를 잘못 보고 1,500원인 것으로 알고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다시 제자리에 갔다 놓고 나왔다. 제주산이고 최상품이어서 비싼 것이라고 했지만 당시 월급으로는 쉽게 고가의 애플 망고를 사 먹기는 어려웠다. 집사람은 내가 가격을 잘못 보고 장바구니에 담는 것을 보고는 아이들 미술학원비 반 달치 가격인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열심히 일하는데 그까짓 것 애플망고 하나 못 먹겠냐 싶어 전혀 내색을 안 했다고 한다.

그 뒤 부회식 때 내가 애플망고를 제자리에 갖다 둔 이야기를 하였더니 부장이 바로 애플망고를 4개를 주문해서 부원들과 나눠먹었다.

망고에 대한 이런 기억을 안고 중국 파견을 갔는데 망고가 너무 싼 것이다. 물론 북경의 다른 과일 값 수준에 비하면 망고는 비싼 가격이지만 한국 사람인 나에게는 망고가 너무 싸고 맛있어서 시장에만 가면 망고를 사 먹었다. 그 뒤 해남도, 태국 등 여행을 다니면서도 호텔에서 망고를 잔뜩 사다가 먹었다. 망고의 향기와 그 단맛은 바나나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바나나는 향기가 없고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지만 망고는 엄청 달콤한 향기가 진하고 맛의 단 정도가 바나나에 비할 수 없다.


그러나 바나나와 망고 둘 다 맛있다. 오늘 외출하고 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서 망고나 사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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