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에서의 약속을 마치고 다시 강화로 왔다. 이 번에는 집사람은 서울에 남고 혼자 온 것이다. 가끔 혼자 지낼 때가 있으나 역시 혼자이면 약간 쓸쓸하기는 하다. 그러나 금세 익숙해진다.
강화생활을 시작하면서 생활의 루틴을 나에게 맞추어 놓았으므로 집사람이 와도 거기에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일어나서 아침식사 만들고, 그 사이에 텃밭이나 모종 상태 확인하고, 아침 먹고, 일기 쓰고, 책 보고, 잠시 외출하고, 점심식사 준비해서 먹고, 정원 손보고, 산책하고, 저녁 식사하는 일과는 항상 일정하다. 그냥 침대에 누워서 무얼 할까 생각하고 망설이는 시간이 그렇게 별로 없다. 침실에는 저녁에 잘 때 이외에는 잘 들어가지 않는다.
집사람은 나의 생활을 보고는 거의 스님처럼 산다고 한다. 우선 먹는 식사는 완전히 채식만 하고 최소한으로 먹고, 약간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스님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먹는 것이 부실한 것 아니냐 걱정하기도 하고, 혼자서도 나름대로 질서 있게 사는 것을 보고 안심을 하기도 하는 것 같다.
서울에 있을 때에는 빈 시간이 없었다. 노트북의 일정표에 매일 5-6개 이상의 일정이 가득 차 있었고, 주말에도 2-3개의 일정이 있거나 운동, 모임의 일정이 꼭 있었다. 만일 일정표에 빈 시간이 있으면 친구, 지인들에게 전화해서 점심 또는 저녁식사나 운동일정이라도 잡아야 안심이 되는 그런 삶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빈칸이다. 지금은 치과 정기검진, 내과의 고지혈증 정기검진, 지인의 가족 결혼식, 1년에 서너 번 만나는 고교 동문이나 친구 모임밖에 기재되어 있는 것이 없다. 무료법률상담 한 두 번 이외에는 전부 사적인 것이라 나중에는 모두 정리될 모임들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혼자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밥은 절대로 혼자 먹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밥은 혼자 잘 먹고, 더 나아가서 혼자 밥을 만들어서 먹는다.
지내는 것도 혼자 여도 별로 문제가 없다. 강화도 초기에는 저녁에 혼자 있으면 바람소리, 숲에서 들리는 소리, 한 번씩 뚝뚝 거리며 들리는 알지 못하는 소리들에 약간 무서움도 느꼈으나 지금은 전혀 그런 것은 없어졌다. 두려움이 없어진 것은 삶과 죽음이 별로 다르지 않고 죽음이 공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서다. 언제든지, 항상, 내가 알든 알지 못하든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다른 무엇에 대한 두려움도 다 사라진다. 죽음보다 더한 두려운 것이 없으므로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다.
외로움도 마찬가지다. 혼자 있으면 심심하고, 무료하고 온갖 잡생각이 많아져서 전화번호부를 뒤적이고 옛날에 만났던,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전화나 연락을 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심심함이 없어졌으므로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연락해서 새롭게 생길 번거로움이 더 많아질 것 같아 모두 그만둔다. 오히려 강화로 놀러 오겠다는 사람들이 더 많기는 한데 막상 오라고 하면 먼 길을 선 듯 나서는 사람들도 많지 않으므로 실제로 만나는 사람은 극히 적다. 편안해진 것이다.
오늘 오전에는 지난번에 가식 해둔 꽃잔디를 대형 화분에 옮겨 심고 길고양이 밥그릇과 물통 청소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