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유

소요유=짜장면 먹고 산책하기

by 프로스윤

어제의 집수리 작업과 늦게 시작한 제법 긴 산책의 피로로 일찍 잠을 잤더니 역시 일찍 깨어났다.

오전 6시 20분, 여명을 지나 꽤 밝은 시간이다.

문수산은 실루엣으로 보이지만 염하강은 일렁임까지 보일 정도로 밝아졌고 물빛이 김포 방면부터 서서히 흰빛을 띠기 시작하며 그 흰 빛이 띠를 이루어 강화대교에서 김포시사이드 골프장 부근까지 약 2-3킬로미터 걸쳐 있다. 염하강을 따라 아직 소등되지 않은 신작로의 가로등은 그 빛이 뻗어가지 못하고 몰려오는 밝음에 약간 애처롭기까지 하다.

해뜨기 직전의 이 어스름한 풍경을 담아보고자 거실에 설치해 둔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누르고 카메라 뒷면의 LCD창으로 결과를 확인해 보지만 여전히 시원찮다. 차마 카메라의 저장장치를 꺼내어 컴퓨터의 큰 화면으로 그 찍힌 모습을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아 계속 찍기만 한 것이 한 달이 지났다. 물론 찍힌 날짜와 시간만 다를 뿐인 문수산, 염하강, 용진진만 찍은 사진들이 뭐가 특별하겠냐마는 내 마음의 특별함은 그 시간 그 셔터 누름 자체에 기록의 흔적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어제는 집사람과 몇 년 묵은 현관 데크의 방부목 때를 수돗물로 씻고 청소 솔과 빗자루로 쓸어내는 작업을 두어 시간 하였더니 데크의 때깔이 달라졌다. 물기가 마르기를 기다리는 사이에 길고양이 쫄보가 다녀가서 앙증맞은 고양이 발자국이 찍혔다. 작업을 마치고 오랜만에 둘이서 외식으로 짜장면을 먹으러 갔다. 강화에서는 거의 집에서 밥을 해 먹고 밖에서 사 먹지 않았는데 ‘노가다’를 시켰으면 맛있는 것을 사줘야 한다는 집사람의 요구에 짜장면을 먹기로 하고 예전에 몇 번 갔던 마니산 부근 손짜장집으로 가서 탕수육과 짜장면을 먹었다.

그 집은 짜장면 값이 정말 싼데 맛이 괜찮아 집사람과 가끔 가는 곳이다. 전에는 짜장면 한 그릇에 2,500원이었는데 요즘 올라서 3,000원이고 어제 먹은 곱빼기는 4,000원이었다. 탕수육도 10,000원에서 12,000원으로 올랐지만 어디에도 이런 가격은 없다.

매번 그 집에서 짜장면을 먹을 때마다 그 사장님 장사 수완이 꽤 좋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집에는 짜장면 한 그릇에 7-8천 원 하므로 2명이 가면 보통 짜장면만 두 그릇을 시켜 먹고 오는 경우가 많지만 그 집에 가면 3,000원짜리 짜장면만 두 그릇 먹고 나올 수가 없어서 꼭 탕수육 1개를 추가로 시켜서 먹게 된다. 그래도 그 값이 18,000원으로 다른 식당의 짜장면 2개 값이니 모든 사람이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키게 되고 이 집은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물론 탕수육의 양이 그렇게 많지 않아 두 사람이 짜장면과 함께 먹기에 적당한 양이다. 박리다매 수익창출 방식을 정확하게 활용하는 주인의 영업에 우리가 호응하는 것인데 맛도 있으니 다시 안 갈 수가 없다. 보통 때는 탕수육 소(少) 자 하나와 짜장면 보통 한 그릇 먹을 것인데 노동을 하였으니 좀 더 먹어야 한다고 짜장면 곱빼기를 시켰더니 그 양이 너무 많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잡일을 좀 더 하다가 해거름 무렵에 산책을 나섰다. 현관 데크의 방부목 수리한 부분의 색깔이 기존 방부목과 너무 차이가 나서 그 부분에 커피 물을 좀 입히면 좋겠다는 집사람의 주장에 따라 원두커피를 갈아서 입힐 수 없으니 편의점에서 파는 가루 커피를 사다가 그곳에 칠하기로 하고 산책길에 있는 편의점에서 가루 커피를 구입했다.

편의점까지는 약 2.7킬로미터, 왕복 5킬로미터가 넘는 길이지만 염하강변을 따라 야산의 오솔길을 지나 염하강 제방 둑을 걷는 길은 정말 좋다. 오솔길에서는 작년에 떨어진 낙엽 밟는 소리가 여전히 정겹고 2킬로미터의 긴 제방 둑에 들어서면 쑥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제방 옆으로 길게 심어 둔 매화나무의 꽃망울이 한 끗 부풀어 있고 성급한 몇몇 봉우리들은 이미 꽃을 피운 것도 간혹 보인다. 다음에 이 길을 산책할 때면 모든 매화들이 꽃을 활짝 피우고 있을 것 같아 너무 오래지 않은 시점에 다시 산책을 나와야 한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보라색 작은 야생화도 저녁 무렵이라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산책길 종점에 있는 편의점 부근의 화도 돈대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은 너무 환상적이다. 해가 넘어가고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할 무렵의 잎이 나지 않은 늙은 느티나무 가지사이로 어렴풋이 비치는 붉은 노을 빛깔은 내 언어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면 이미 뜬 지 제법 된 저녁달은 꽤 밝아져서 해가 뜬 것인지 착각할 정도다.

20240323_190415.jpg


내일은 고양이 발자국의 흙먼지를 쓸어내고 그 위에 오일스테인을 칠하는 그야말로 때 빼고 광내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이전 11화8월의 마지막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