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

by 뜰에바다

오늘, 우리 팀의 온도는 몇 도일까? 내가 온도를 높일까? 내릴까? 내가 팀의 온도를 차갑게 하지는 않는가?


분위기가 좋은 팀은 '우연'이 아니다. 특별한 제도도, 넉넉한 인원도 아닌데 이상하게 잘 굴러간다. 일이 터져도 조용히 수습되고, 폭풍 속에서도 평온함을 유지한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곳엔 반드시 '한 사람'이 있다. 비난 대신 책임을 지고, 흔들리는 분위기를 조용히 붙잡는, 그 '한 사람' 말이다.

그 한 사람에 대해서 성경은 아주 도발적인 선언을 한다.

"주께서 요셉을 보시고, 그 이집트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 주께서 내리시는 복이, 주인의 집 안에 있는 것이든지, 밭에 있는 것이든지, 그 주인이 가진 모든 것에 미쳤다." (창세기 39:5)

신이 이집트 주인의 배경이나 실력이 아니라, '요셉 한 사람'을 보고, 그 집 전체에 복을 쏟아부었다는 말이다. 요셉이 어떤 사람이었기에 그런 일이 있었을까?


1. '눈'이 아닌 '삶' 앞에서 성실하게

갑자기 노예 신분이 되었지만, 요셉은 주어진 환경과 시간을 온몸으로 받았다. 당시 요셉은 불평할 완벽한 조건을 갖췄다. 꿈 많은 나이에 형들에 의해 인신매매 당하고, 채색옷 메이커만 입던 부잣집 아들이 '노예' 신분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요셉의 기다란 인생 기록에, '남 탓'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는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환경은 내가 선택할 수 없지만, 환경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내가 결정한다'라는 사실을 아는 것처럼, 자신의 환경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묵묵히 이행했다. 결과, 요셉으로 인해 그가 일하는 주인집이 넘치는 복을 받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성경은 또 다른 기록을 남긴다.

"그 주인은,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며,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되도록, 주께서 돌보신다는 것을 알았다." (창세기 39:3)


'보여주기 위한 성실'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성실'일 때, 세상은 비로소 당신 뒤에 있는 신을 목격한다.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지! 하여 당신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린 땀방울'이 당신은 물론 곧 공동체와 세상의 복이 된다.

2. '내 몫'을 넘어 '우리'를 책임지는 무게로

요셉은 자기 일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남의 실수까지 껴안고, 문제가 생기면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 낯선 외국 땅의 노예가 되었다고 자기 연민이나 분노에 빠져 고통에만 매몰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억울함을 넘어, 주인의 가정 전체를 돌보는 무게를 짊어졌다. 그에 따른 어떤 인사고과나 성과급, CCTV도 없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밑바닥 삶이요, 노예 직무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주인 아내의 유혹을 거절할 때는 단순히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것을 넘어섰다. 자신을 신뢰한 주인에 대한 의리와 신 앞에서의 코람데오(Coram Deo) 정신까지 굳건하게 지켰다.


'나'의 유익을 내려놓고, '공동체'를 우선할 때, 복의 물줄기는 나를 통과하여 팀 전체로 흘러간다. 2026년, 당신이 바로 그 '한 사람'이다. 당신이 속한 공동체가 당신 한 사람 때문에,

•깨진 관계가 봉합되고
•험담이 멈추며
•위기 속에서 신뢰가 싹트는 역사, 가 시작된다.


당신이 머무는 곳마다 당신 때문에 '은혜'가 흐르게 하라. 환경이 달라지길 기다리지 말라. 당신이 있는 자리에서 당신부터 달라지는 것이 '그 한 사람'의 길이다.

"주님, 내가 있는 공동체가 나 한 사람으로 인해 더 따뜻해지게 하소서. 나를 통해 신뢰가 남고, 나를 통해 희망이 이어지는 '복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