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휠체어로 승강기를 타고 내려와, 1층 현관에서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내 옷을 어디 버렸어! 입을 옷이 없어!"
아버지는 4층에 거주했다. 근래에 휠체어에서 내리던 중 엉덩방아를 찧은 이후, 보행이 어려웠다. 대신 본래 많은 불평이 종종 분노가 되어 폭우처럼 쏟아졌는데, 오늘이 그날이었다.
"원장이 지시했어? 원장이면 다야! 나도 감독질 했어!”
문제는, 분노가 일어나면, 층 전체가 비상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의 그것은 한 번으로 끝나는 법이 없었다. 한번 일어나면 한나절, 혹은 하루 종일 이어졌다. 오늘도 이미 몇 날 동안 4층에서 종사자들이 애를 먹은 후였다. 원장이 아버지를 발견하고, 최대한 부드러운 말로 맞이했다.
아버지, 옷이 없어졌어요? 입을 옷이 하나도 없으셔요?”
아버지가 분노 수위를 더 높였다.
“내가 여기 온 지가 얼만데, 옷장에 남의 옷만 가득 차 있나! 내 옷은 내가 아는데. 아들이 사 준 것도 없어졌어!”
모르긴 해도, 아버지는 4층에서 몇 날 독하게 불평했지만, 해결이 안 되자 원장 들으라고 작심하고 내려온 것이다. 4층에서 불평하고 분노한 것을 원장이 모를 리 없었다. 몇 번 올라가기도 했다. 문제는 해결점이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혼돈 까닭에 말이다. 녹내장으로 시력이 더 상했고, 체중이 줄었다. 오래된 자기 옷을 절대 혼돈하지 않는다고 확신하지만, 이미 구분이 어려운 것을 어떡하란 말인가.
“난 자기들에게 손해를 입힌 적이 없어! 왜 나를 건드리냐고!"
아버지의 불호령에 사무실 종사자들이 우르르 나왔다가 원장의 눈짓을 보고, 하나둘 자취를 감추었다.
“아버지, 종사자들에게 찾아보라고 할게요. 무슨 착오가 있었을 거예요. 여기에 옷 도둑이 있을 리는 만무하잖아요.”
아버지가 따발총을 쏘았다.
“내가 만만해! 내가 옷을 사달랬어! 밥을 사달랬어! 내가 가져온 옷이 하나도 없어! 못 입을 것들만 가득해!”
분노 내용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의 강력한 언사와 위협적인 공격이 더해져서 누구든지 2~30분 받아내면 녹초가 되었다. 아버지의 분노 수위가 더 올라갔다.
“살림을, 이 따위로 해서 되냐고! 돈 받고 일하면 일한 값들을 해야 할 것 아냐!”
몇 번씩 받아내는 아버지가 분노와 불평을 아는 고로, 원장이 조곤조곤 말했다.
“아버지, 고정하세요. 샅샅이 찾아볼게요.”
“내가 내 옷 찾자고 이러냐고! 일들을 제대로 안 하니까 이런 사달이 나는 거 아냐!”
끝까지 경청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잘 단속할게요. 아버지 옷이 다른 옷들과 섞인 듯해요.”
그때부터 아버지 앞에 정좌하여, 귀를 쫑긋 세우고, 아버지의 독한 분노와 불평들을 경청했다. 만만치 않은 시간이었다. 오전 10시 전에 시작되었는데, 점심에 이를 때까지 계속되었다.
분노는, 충페이충(중국 심리상담사. 《심리학이 분노에 답하다》 권소현 옮김. 미디어숲, 2022)에 의하면, 자신을 상대방보다 더 높은 위치에 두고, 자신의 낮은 주목도를 방어하고 싶은 것이다. 분노는 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나는 너에게 주목받고 싶어.'라는 외침이다. 분노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일 뿐 그 배후에는 억울함, 기대, 심판, 무력감, 두려움이 존재한다. 따라서 충페이충은 분노 뒤에는 6가지 감정이 숨어 있다고 말한다. 1) 분노는 심판이다. 2) 분노는 기대다. 3) 분노는 자기 요구다. 4) 분노는 감정의 연결이다. 5) 분노는 두려움이다. 6) 분노는 사랑이다.
아버지는 4살 때 양친을 여의였다. 나이 차이가 많은 형들은 오래전에 별세했다. 아버지는 혼자 자랐지만 자수성가했다. 아내는 살만 하니까,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의 긴 사연을 듣는 것도 원장의 일과였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구순이 되었지만, 아버지는 아주 어린 시절, 돌봄 없이 자랐다. 그것이 잦은 분노와 불평의 근원지인 셈이다. 하여 아버지가 독한 분노와 불평을 시작하면 하루에 한나절씩 반 달 이상 지속되었다. 아버지의 분노는 간헐적 폭발 장애 같았다.
2시간 후, 아버지의 분노가 일단락되었다. 마지막은 싱거웠다. 아버지가 말했다.
“미안합니다. 원장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언제든지 하실 말씀 있으시면 내려오셔서 해 주세요. 제가 모르고 지나는 일들이 많으니까요.”
아버지가 휠체어를 돌려, 천천히 원장실에서 나갔다. 뒷모습이 휑뎅그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