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한가로운 한 여름, 오후 시간이었다. 창밖에는 비가 내렸다. 두 어머니가 로비 소파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며 대화하고 있었다. 원장은 원장실에서 두 어머니를 바라보며 업무 중이었다. 그때 두 어머니의 대화 내용이 귀에 솔깃하게 들렸다. a어머니가 말했다.
“머리가 예뻐요. 흰머리 하고 검은 머리 하고, 반반이에요.”
b어머니가 말했다.
“집이도 그래요. 검은 머리가 많아요.”
a어머니가 반문했다.
“그래요? 내가 검은 머리가 많아요?”
이어서 a어머니가 질문했다.
“몇 남매를 두었어요?”
귀가 어두운 b어머니가 잘 못 들었는지, 답변이 없었다.
a어머니가 또 질문했다.
“아저씨는 살아 계시나요?”
이번에도 b어머니의 답변이 들리지 않았다.
a어머니가 연거푸 질문했다.
“몇 살이에요?”
잠시 후 b어머니의 답변이 명료하게 들렸다.
“난 열아홉 살이에요.”
매우 진지한 대답이었다. 답변에 농담이 들어 있지 않았다.
원장이 혼자 박장대소하고, 두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오늘 비가 오니까, 서로 하실 말씀들이 많으시지요?”
그때 a어머니가 원장에게 질문했다. 오늘, a어머니는 궁금한 것이 많은 날이었다.
“비가 많이 오는 게 좋은가요? 안 오는 게 좋은가요?”
얼른 대답했다.
“올해는 가물어서 비가 더 와야 한다고 해요. 좋은 비니까 마음껏 구경하세요.”
a어머니가 비 구경을 하기 위해 소파에서 일어나, 창가로 자리를 이동했다. 그때 b어머니가 원장에게 은근하지만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저이가 내 나이를 물었어. 내가 서른이 넘었는데, 열아홉 살이라고 했어.”
“그러셨어요? 서른이 갓 넘으셨으면 열아홉 살이라고 해도 괜찮지요, 뭐. 잘하셨어요.”
b어머니가 호호 웃었다. 원장도 크게 하하 웃었다.
b어머니는 본원의 가족이 된 지 2개월째였다. 건강이 한결 좋아졌다. 집에서 식사가 잘 안 되던 것과 앉아서만 생활하던 것에 비해, 공동체의 시스템이 여러 면에서 어머니를 강건하게 했다. 처음에 앉아서 엉덩이로만 이동하던 것이 보행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보행도 자연스러웠다. 섬망도 호전되었다. 정신이 맑음일 때가 많았다. 좀 전에 두 번의 대답을 회피했던 것은 아마 잘 못 들었거나 금방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저녁 식사 시간, 어머니의 식사가 다른 사람들보다 늦었다. 집에서처럼 모든 준비를 마쳐야 식사하는 그대로 허용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식사를 다 마친 후, 어머니가 말했다.
“마음이 슬퍼.”
원에서는 잘 듣지 못하는, 놀라운 말이었다. 정색하고 물었다.
“무엇이 어머니의 마음을 슬프시게 하는 걸까요?”
어머니가 말했다.
“인생이 슬픈 것 같아.”
원장이 속으로, 아 맑음이구나, 놀랐지만, 어머니의 말을 그대로 되돌렸다.
“오늘, 어머니가 인생이 슬프게 느껴지시는군요. 마음이 힘드시겠어요.”
어머니가 식사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손잡이를 의지하고 걷기 시작했다. 복도를 지나 어머니의 방으로 이동했다. 그때 어머니의 입술에서 찬송이 흐르기 시작했다. 낮고 굵은 목소리였다. 점차 찬송 소리에 울음이 묻어갔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원장이 뛰어서 어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어머니가 말했다.
“나, 아픈 데 없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어머니가 우시는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정말로 괜찮으신가요?”
“나, 괜찮아.”
오늘 어머니는 완전히 맑음이었다. 당신이 말한 대로 아픈 데가 없었다. 상관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만 어머니의 맑음이 슬픔을 불러왔다. 상실감 때문이리라. 아니 남의 수발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 교사로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빛나는 업적과 비교가 되었으리라. 그 상실감을 어디에 비교할 수 있으랴. 그 슬픔 중에 어머니가 찬송하며 조물주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한걸음 뒤에서, 원장도 천천히 어머니의 뒤를 따르며 함께 찬송했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