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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뜰에바다 Jul 26. 2024

외딴섬, 동병상련 풍경화

두 어머니의 대화는 시도 때도 없이 이뤄졌다. 맨 처음, 생활실 소파에 앉아서 1시간 20분이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두 어머니를 보고 종사자 모두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에게는 몹시 낯선 풍경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외딴섬이었다. 9개월 이상 지켜봐도 다른 어머니들과 도통 어울리지 않았다. 얼굴에 표정도 없었다. 식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뜨락 산책에도 혼자였다. 대신 침대에 눕는 일이 잦았다. 종사자들이 애살스럽게 다가가도 혼자만의 세상에 갇힌 것처럼 곁을 주지 않았다. 알츠하이머가 대부분 그렇다는 것을 알아도 걱정할 정도였다. 비록 몸은 혼자 생활하기 어려워 공동체에 합류했을지라도, 마음만큼은 편안하고, 안정적이며, 미소가 있는 터이기를 내심 바라서였다. 


반전되었다. 새어머니가 합류한 후부터였다.

“몇 남매나 두었수?”

“딸 셋, 아들 하나예요.”

“난 딸 둘, 아들 둘이오.” 

3인실이니, 다른 어머니가 한 분 더 있었다. 웬일인지 그 어머니와는 소통하지 않았다. 그런데 새어머니가 등장한 후 말문을 열었다. 아니 말문이 열렸다. 무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새어머니를 친동생처럼 챙겼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추정할 뿐이었다. 망각에 좌절했는데, 새어머니의 더 큰 망각에 공감하면서, 바로 친구가 되지 않았을까? 동병상련 같은 것 말이다.  


두 어머니의 대화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들어보면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반복할 때가 태반이었다. 오늘도 처음 만난 듯이 대화 중이었다.

“아들딸, 시집장가보냈지요?”

“그럼. 하나는 서울에 살고, 하나는 수원에 살지.”

“우리 딸이 나 보러 사위랑 온다고 했어요. 우리 딸은 시흥에 살아요. 딸이 어디 살아요?”

“우리 큰딸은 일산에 살아. 작은 거는 어디라고 했는데, 이사를 해서 생각이 안 나.”

“우리 사위는 나한테 아주 잘해요.”

“사우(위)가 잘하는 것을 보니 딸이 귀염성이 있나 보네.”

“둘째 딸이 귀염성이 많아요. 그건 날 닮지 않아서 좋아요.”

어머니가 또 물었다.

“아줌마 고향이 어디여?”

“동막골이요. 어릴 때 피난 와서 살았어요.” 

어머니가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물었다.

“나도 동막골에서 자랐는데. 우리가 그전에 봤수?”

새어머니가 말했다.

“몰라요. 우리가 그전에 봤나요?” 

“몰라. 우리가 그전에 봤을까?” 

...

1, 2, 3, 4층을 오가며 종일토록 이어지는 두 어머니의 대화 꽃을 엿들어보는 원장의 뜨락에도 한여름의 시원한 바람이 상쾌하게 불었다.  


저녁 식사가 끝난 어스름 시간, 갑자기 어머니가 원장실로 바삐 걸어왔다. 

“우리 방 아줌마, 없어요. 나가서 안 들어왔는데, 찾아봐도 없어요.” 

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크게 반응했다.

“그래요? 어디 가셨을까요? 아마 멀리 가지는 않으셨을 거예요. 좀 전에도 계셨으니까요.”

"얼른 찾아야 해요."

“어머니, 저와 함께 새어머니를 찾아보시겠어요?”

어머니가 먼저 돌아섰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생활실과 목욕실, 현관 등 여기저기를 살폈다. 없었다. 다음으로 복도와 어머니의 방, 102호로 갔다. 새어머니가 당신의 침대에 누워, 곤히 잠들어 있었다. 어머니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원장이 말했다.

“새어머니가 방에서 주무시는군요. 어머니가 찾아 나섰을 때 방에 와서 누우셨는가 봐요.”

어머니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아까는 없었는데. 언제 들어와서 자고 있네.”

“그러게요. 괜히 걱정하셨어요.”

“난 혹시 어디서 길을 못 찾을까봐....”

이상했다. 원장이 들은 바로는 방금 얼마 전에도 새어머니로 인해, 어머니는 언성을 높였다.

“화장실이 어디인지 모르면 어떡해! 매일 가는 화장실인데. 화장실이 요기 있잖아. 정신 줄을 놓으면 큰일 나.”

그러나 그것은 질책이 아니었다. 

“내가 안 잊으려고 해도 자꾸 생각이 안 나요."

그래서 새어머니는 명민함으로 그것이 애정인 줄을 알고, 단 한 번도 노여워하지 않았다. 그것이 낮 거의 12시간 이상을 어머니의 곁에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문제는 어머니가 새어머니의 망각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머니도 망각증이므로. 

      

102호를 돌아 나오면서 문을 닫기 전에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새어머니가 늘 걱정이 되는군요. 자꾸 뭘 잊어버렸다고 하시고, 찾으시고, 울기도 하시니까요.”

어머니가 말했다.

“자꾸 잊어버리니까.”

“새어머니가 병이 나서 그러셔요. 어머니가 챙겨주시니까 제가 안심돼요.” 

“….”

어머니가 반신반의하며, 당신의 침상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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