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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뜰에바다 Aug 02. 2024

책 읽는 노후

나이가 몸의 구석구석에 쌓여가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 독서다. 강렬한 빛 형광에 적응한 눈이 조금의 침침함도 견디지 못할뿐더러, 시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어디에서나 큰 글씨가 좋다. 글자 10포인트는 우선 미간부터 찌푸려진다. 동공을 크게 넓혀야 글자가 보인다. 그나마 컴퓨터 화면에서는 글을 확대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종이책이 문제다. 눈이 더 나빠지면 아이들 책이나 그림책을 봐야 할 형편이다. 

전자책 독서를 하면 되잖아? 나의 경우는 전자책은 훑는 느낌이다. 정독하기보다는 쓸데없이 속도를 낸다. 좋은 기능들을 몸과 정신에 업데이트하는 것도 낯설다. 또 가까운 도서관에서 얼마든지 빌려 볼 수 있는 종이책이 수두룩한 데, 전자책은 최근 자기 계발서 중심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이다음에 나는 어떤 독서를 할까? 독서하기는 할까?      


아버지의 독서는 일주일 전 본원에 합류하는 날부터 시작되었다. 침상에서도 눕지 않았다. 침대 식판을 독서대로 삼아 독서에 독서를 즐겼다. 깨알 같은 글씨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정하고 청청한 기력도 소유했다. 95세라는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다만 지병 파킨슨이 자리를 잡아 걸음걸이가 휘청거렸다. 때로 빠른 몸동작들도 위태로웠다. 발음도 어눌했다. 

오늘도 아버지는 독서 중이었다. 오전에 이어 오후 라운딩 때에도 독서 중이므로, 말을 걸었다.

“재미있으세요?”

아버지가 천천히 당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이건 아들이 사준 책인데....”

그다음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말소리가 목 안에 갇혔다. 그래도 아버지는 당신의 말을 2~3분간이나 어렵게 이었다. 

“... 책이 좋아요.”

그런데 아버지가 탐독하는 책은 질문에 답을 써야 하는 책이었다. 형태상 아버지가 내용을 알고 읽는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랑곳없이 아버지는 책에 이마를 대다시피 하고 열심히 읽었다. 때로는 낭송 소리도 들렸다. 아버지 곁을 떠나면서 응원했다. 언제까지나 그리하소서. 독서 삼매경으로 행복하소서. 말은 반대로 했다.

“오늘은 그만 읽으시면 좋겠어요. 하루 종일 읽으시는 것 같아요.”     


어머니는 성경을 읽었다. 침상에 두 다리를 뻗고 앉은 채, 무릎에 당신보다 더 크게 보이는 성경을 펴놓았다. 조명이 그리 밝지 않은 구석 자리였다. 라운딩 길, 어머니를 응원하기 위해 말을 걸었다.

“오늘도 성경을 보시는군요.” 

말소리를 듣고 어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아프거나 힘들지 않으세요?” 

어머니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어머니 반응의 전부였다. 고갯짓 하거나 얼굴에 미소를 담는 것 말이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침상에서 수면 중일 때 외에는 하루에 서너 차례씩 같은 자세로 성경을 펴서 읽었다. 그러나 오늘 자세히 보니, 성경이 거꾸로 펼쳐졌다. 성경을 손으로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읽는 중이지만, 그 뜻을 알고 묵상하기보다는 성경 자체로 소통하는 중이었다.

다시 말을 걸었다.

“예수님을 사랑하시나요?” 

어머니가 고개를 까딱했다.

“저도 예수님을 사랑해요. 예수님도 어머니를 무척 사랑하시는 것 같아요. 어머니가 매일 성경을 보면서 예수님의 손을 잡으시도록 도와주시니 말이에요.” 

어머니가 미소했다. 

“이다음에, 하늘나라에서 예수님 만나면 뭐라고 인사할 거예요?” 

어머니가 가만히 있었다. 

어머니의 대답을 대신해서 말했다.

“저는, 예수님, 제 이름 아시지요? 저를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려고요.” 

어머니가 방긋 웃었다. 환한 미소 속에 당신도 그 정도 인사는 하겠다,는 뜻이 들어 있었다.    

 

중2 때, 아버지가 이사장인 친구 집에 놀러 갔다. 그때 한 방을 다 차지하고 있는 책을 보았다. 순간 감탄하기에 앞서 부러움이 솟았다. 친구는 이 책들을 다 읽겠구나, 지식의 창고가 되겠구나. 그날 사무치던 감정이 지금도 선명하다. 깡촌 시골에 살던 나는 책이 없었다. 늘 책이 그리웠다. 그 후 나는 책 욕심이 많았다. 읽는 욕심뿐만 아니라 소유욕도 있었다. 싱글일 때, 몇 번의 이사를 했는데, 책부터 쌌다. 대부분 여성이 주방기기부터 싸지 않냐, 고 지인들이 웃었다. 이삿짐을 대신 싸주는 지원군이자 방해꾼이 생기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바빠서 손수 책을 싸지 않는 한 애지중지할 수도 없었다. 급기야, '이 책 안 버려?'라는 말을 몇 번 듣고 나니, 책을 지고 와서 함께 살지 않는 한, 버리는 것이 맞았다. 한 번, 두 번, 몇 번을 버렸다. 결국 다 버렸다. 물론 손수 버린 책은 없었다. 

지금은 책을 잘 사지 않는다. 독서 모임 등 꼭 필요할 때 외에는 도서관에서 대출한다. 우리나라 어느 지역, 어느 곳이든지 도서관이 지천에 있으니까. 참 고마운 일이다. 책은 없어야 소중해지는가? 지천에 있으면 오히려 덜 소중한가? 알 수 없다.


그럴지라도 한 가지 소원, 어머니 아버지처럼 나도 이다음에 행여 턱없이 건강이 모자랄 때라도, 언제나 독서 삼매경에 빠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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