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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뜰에바다 Aug 09. 2024

노래하는 여생

한국인들에게 노래는 어떤 것일까? 우리 민족은 남녀노소를 불문하여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부른다. 전국 노래자랑을 보면 아마추어로 무대에 섰지만, 가수가 따로 없다. 모두가 가수다. 1991년 이후 노래방 문화가 확산하면서 가히 노래는 전 국민의 것이 되었다. 2018년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까닭에, '그룹으로 이용하는 노래방'은 주춤하고 있다. 대신 지금은 혼자 노래하는, '코인 노래방'이 대세다.  

여러분은 노래를 부르는가? 언제 부르는가? 편안할 때인가? 힘들 때인가? 전문가들에 의하면, 노래는 정신건강에 유익하다. 스트레스와 불안을 해소하는 데 탁월하고, 기억력 회복에도 좋다. 우리 민족이 여러 모로 뛰어난 것은 노래 한두 곡쯤은 부를 줄 아는, '풍류 가객'이어서가 아닐까?

 

아침 10시, 2층 라운딩 길에 들으니, 어디선가 맑은 노랫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가 보았다. 침상에 누운 채로 어머니가 다리를 곧추세우고 발을 구르면서, 혼자 노래하고 있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임과 

한 백 년 살고 싶어     


가만히 다가가, 침대 발밑에 앉았다. 어머니가 원장을 보고 슬그머니 소리를 놓았다. 아는 노래인지라, 작은 소리로 노래를 이었다. 어머니가 이내 다시 노랫소리를 냈다. 


봄이면 씨앗 뿌려 

여름이면 꽃이 피네

가을이면 풍년 되어 

겨울이면 행복하네 

    

원장은 자꾸 틀리며, 아는 가사만 덧붙였다. 어머니는 막힘없이 맑은 소리 그대로 노래를 불렀다.  

   

멋쟁이 높은 빌딩 으스대지만

유행 따라 사는 것도 제 멋이지만

반딧불 초가집도 임과 함께면

나는 좋아 나는 좋아 임과 함께면

임과 함께 같이 산다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임과 

한 백 년 살고 싶어     


구순이 넘었지만, 어머니 안에서 흘러나오는 노랫가락이 상쾌했다. 인지 저하로 점점 아이가 되어가는 어머니 안에, 푸른 강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아마도 어머니가 부르는 노래는 자녀들을 양육할 때 나왔던 유행가일 것이다. 그 시절에 어머니가 유난히 좋아했던 노래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창도 아니고, 민요도 아닌, 한때의 유행가를 한 소절도 틀리지 않고 부르는 것이리라. 그 소리가 얼마나 청아한지, 오늘 오전, 본원 2층 종사자들 하루의 일과까지도 맑고, 밝고, 경쾌하게 했다.

 

3층을 지나, 4층에 이르렀다. 다른 노랫소리가 흘렀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색시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노랫소리를 따라갔다. 맨 마지막 방이었다. 눈을 꼭 감고 노래하는 어머니의 가슴을 살짝 쓸어주었다. 어머니가 눈을 떴다. 

“오늘도 목포의 눈물을 부르시는군요. 그 노래가 좋으세요?”

어머니가 아이처럼 말했다. 

“난 목포의 눈물이 좋아요.”

이어서 말했다.

“난 단장의 미아리 고개도 좋아요.”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어머니가 또 노래를 시작했다.


미아리 눈물고개 임이 넘던 이별 고개

화약 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맬 때

당신은 철삿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 고개     


어머니의 노래는 어려웠다. 들어보기는 했지만, 따라 할 수 없었다. 가사를 모르거니와 가락도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였다. 어머니에게 질문했다. 

“어쩜, 그렇게 잘 부르세요? 노랫말을 하나도 잊지 않으셨어요.”

어머니가 잘 보이지 않아,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어릴 때 엄마랑 같이 불렀어요.”

“아하, 그러셨군요. 어릴 때 엄마랑 같이 부른 노래가 목포의 눈물과 단장의 미아리 고개군요."

회상하듯이 어머니가 천천히 덧붙였다.

"우리 엄마가 노래를 잘 불렀어요."

"와, 그럼, 엄마 노래 솜씨를, 빼닮으셨나 봐요. 지금도 그 노래를 잊지 않으신 걸 보니."

 어머니가 앵무새처럼 말했다. 

“나는 노래가 좋아요.”

   

본래 건강이 있을 때, 어머니는 찬송가만 불렀다. 원장이 라운딩 할 때는 으레 껏 찬송 몇 곡을 함께 불러야 했다. 어느 날, 자주 탈골되던 어깨가 이유 없이 부러졌다. 수술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후 휠체어 이동이 어려웠다. 몇 개월간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터널을 지나는 동안, 어머니의 입술에서 찬송이 사라졌다. 덕분에 원장은 한 달에 한 번씩 층을 바꾸던 것을, 층층이 예배드리는 것으로, 변경했다. 이유는 어머니같이 침상을 떠날 수 없을 때, 침상에서나마 찬송을 듣거나 부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시간이 흘렀다. 어머니의 건강이 더 나빠졌다. 시력도 거의 없어졌다. 달라진 것이 있었다. 어머니의 입술에서 다른 노래 즉, 흘러간 옛 노래가 흐르기 시작했다. 낮에도, 새벽에도 흘렀다. 추정해 보건대, 신체의 통증이 인지 저하를 촉진하여, 어머니의 기억 안에 찬송은 잊었으나 흘러간 옛 노래는 아는, 아주 어린 시절로 회귀한 까닭이었다. 원장도 4층을 오가며 어머니의 노랫소리를 들었다. 오늘은 어머니에게서 흐르는 옛 노랫말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원장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저도 이 노래가 좋아요. 저와 같이, 한번 더 불러 볼까요?”   

어머니가 먼저 노래를 시작했다. 원장도 노랫말을 마음에 담으며, 따라 불렀다.


미아리 눈물고개 임이 넘던 이별 고개

화약 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맬 때

당신은 철삿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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