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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뜰에바다 Jul 19. 2024

트라우마, 그 끝없는 할큄

트라우마는 국어사전에 의하면, 사람의 정신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격렬한 감정적 충격으로서 여러 가지 정신 장애의 원인이 된다. 대부분 천재지변, 대형사고, 범죄 피해 등 심한 신체적·정신적 외상을 겪은 뒤 발생한다. 그런데 연세대 김호기 교수는 중·고교 시절 외환위기를 맞아 부모의 실직과 부도를 간접으로 경험하고,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로 취업 대란에 맞닥뜨린 20대 중·후반을 일컬어서도 트라우마 세대라고 명명했다.

그렇다면 과거 우리나라 6.25 전쟁 세대들의 트라우마는 어떨까? 현세대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전쟁 중에 고통당하는 이들이 있으니, 대체 전쟁은 누가 만들었는가? 사람인가? 짐승인가?    


어머니가 갑자기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아니 갑작스러운 눈물은 아니었다. 평생을 힘들게 했던 영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 눈물로 귀결된 것이었다. 어머니가 생활실에서 울기 시작했으므로, 다가갔다.

“어머니, 오늘도 6.25 때 잡혀간 오빠가 생각나셨어요?”

어머니가 눈물을 줄줄 흘렸다.

“생각 안 하려고 해도 자꾸 생각이 나. 오빠는 끌려가고 나는 살았거든.”

어머니의 등을 토닥토닥했다.

“이제는 괜찮아요. 도망가지 않아도 되어요.”

어머니가 말했다.

“오빠가 끌려가서 총에 맞았어.”

“그러셨군요.”

“내가 그 총소리를 들었어.”

“얼마나 힘드셨어요.”

어머니의 팔십여 평생 동안 트라우마로 작용하는 영상들을 떼어낼 수만 있다면. 때때로 잠꼬대와 눈물로 이어지는 어머니의 공포와 가슴앓이를 폭격해 버릴 수만 있다면.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전쟁과 피난길, 끌려가는 오빠와 공포스러운 수갑, 총성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그 어둠의 그림자를 어머니에게서 지울 수 있을까? 어머니에게서 그 그림자가 사라지는 때는 언제인가?  


한참을 울고 난 후 어머니가 맑은 얼굴로 말했다. 

“난 괜찮아. 살 만큼 살았으니까. 가서 일 봐.”

“어머니하고 좀 놀다가 일하려고요. 괜찮지요?” 

“그럼, 앉아서 더 쉬어.”

다행히 어머니의 일상이 돌아왔다. 어머니가 편안할 때 부르는 노래도 시작되었다. 쉽게 따라 부를 수 없는 어머니만의 노래였다. 어머니를 따라서 노래를 불렀다. 호호 웃으면서, 틀려가면서. 


청춘아 돌아오라 

젊음아 오라      

내 청춘 어디 가고 

백발이 웬 말인가


며칠 후, 모두가 고요히 잠든 시간, 어머니의 장애 증상이 차량 블레이크 조작이 안 되는 급발진처럼 표면화되었다. 아무도 말릴 수 없는 강한 에너지가 어머니를 휩쌌다. 어머니가 복도와 생활실을 기어 다녔다. 며칠 전부터 조짐이 있었으므로 약제를 처방받아 플러스 투약을 해도 역부족이었다. 새벽 3시, 전화벨이 울렸다.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원장님, 주무시는 데 전화했어요.”

“무슨 일이에요?”

“어머니가 원장님 말소리를 들으면 좀 안정이 될까, 해서요.”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초보 종사자의 괴로움이 전화를 타고 건너왔다. 

“우리가 힘든 것은 괜찮은데,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서요.”

얼결에 스마트폰을 열어 CCTV를 보면서 마음이 무너졌다. 화장실 물품도, 실내 용품도 어느 것 하나 제자리에 놓여있지 않았다. 어머니가 목욕실이든지 화장실이든지 들어가서 무엇이든지 손 닿는 대로 들고 나오고, 쌓았다. 행동도 거칠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악다구니를 썼다.

“나도 죽여줘요! 나도 죽여줘요! 나도 죽여줘요!...”

어머니의 눈물 안에서 한 번씩 들었던 말들이었다. 어머니가 그 울음과 그 악다구니를 새벽 3시에 재현하고 있었다. 3층 모두의 잠을 깨우면서. 생활실 바닥을 몸으로 청소해 가면서.

“선생님,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어요. 어머니가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화분이나 의자들을 치워주시고 지켜보는 수밖에는 요. 저녁에 식사를 거부하셨다고 하더니, 투약도 안 되었군요. 시간이 지나야 어머니의 증상이 잦아들 거예요. 고생이 많아요.” 

“어머니가 위험한 것 같아서 전화했어요. 어머니, 괜찮은 거지요?” 

“신체의 이상이 아니라, 정신 행동 증상이므로 119를 부를 수도 없어요. 조금 더 고생해 주세요. 어머니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밖에 없어요.” 

어머니의 악다구니가 전화 사이로 다시 들렸다.

“나만 살아서 뭐 해요. 오빠, 보고 싶어요. 어머니, 아버지,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다행히 20분 전보다는 어머니의 말소리에 힘이 빠진 듯했다. 그것이 희망이었다. 


그로부터 이틀 후, 어머니는 119로 큰 병원에 후송되었고, 장기간 입원 치료 했다. 그 후에는 혼자 미소 지으며 노래하는 건강을 되찾지 못했다. 마침내 트라우마가 어머니를 완전히 잠식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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