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뜰에바다 Jul 12. 2024

월급 타면

알코올성 치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만나는 환우 중 남성들은 여성들보다 치매 나이가 낮다. 대부분 퇴행성 알츠하이머가 아닌, 알코올성으로 시작된 인지 저하이다. 드물게는 루이체나 파킨슨병, 혈관성인 경우도 있다. 평균 연령은 60대다. 나이가 더 낮은 40대의 경우는 뇌졸중이나 뇌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쓰러진 예다. 퇴행성 알츠하이머가 주로 80대 이상 여성들에서 나타나는 것과 상당히 다른 부분이다. 따라서 요양원과 요양병원에서 만나는 남성들에게는 대부분 아내가 있다.  

 

오전 외근 중에, 아버지의 아내가 안부 전화를 했다. 오후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에게 연결했다. 전화를 반갑게 건네받은 아버지의 첫마디가 시작되었다.

“아픈 덴 없어?”

아버지의 둘째 마디가 이어졌다.

“먹고 싶은 건? 어서 말해, 월급 타면 사줄게.”

아버지의 셋째 마디는 함박웃음을 자아냈다.

“○○씨 사랑해요.”

전화기로 아버지의 같은 말이 몇 번에 걸쳐서 반복되었다. 한결같은 요지는 아픈 데 없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라, 월급 타면 사줄게, 였다.          


아버지는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다. 키도 훤칠해서 어떤 자리에서나 돋보였다. 아버지가 젊었을 때 춤을 좋아했다. 혼자 추는 춤이 아니었다. 파트너와 함께 호흡해야 하는 댄스였다. 하여 현재 치매 증상이 농후해도 노래와 가무는 가히 무대 공연 급이었다. 그러나 60대에 이르자 아버지의 인생이 알코올성 치매로 두 동강 났다.

04:20 초 만에 통화가 끝났을 때,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내가 많이 보고 싶으시지요?”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많이 보고 싶지요. 젊었을 때 아내 속, 많이 썩였거든요.”

아버지를 꼬집어보았다. 

“그래서 말이라도 아내에게 잘해주려고 듣기 좋은 말씀을 하셨군요?”

아버지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아녜요. 실제로 잘해주고 싶어요. 병 낫고 나가면 아내 소원대로 직장에도 나가고, 돈도 벌어서 잘해 주려고요.”

“그러셔요? 아내가 아주 좋아하시겠어요.”

“정말 집사람이 좋아할까요?”

“그럼요, 아내들의 소원은 큰 것에 있지 않아요. 그리고 아내들은 남편이 진심으로 말하는지, 겉으로만 말하는지 다 알아요.”


아버지는 이제 그 소망이 늦어버린 것을 잊었다. 남들은 아는데 자신은 모르는 치매라니,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격이 아닌가? 그런들 어떤가?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것보다 고치는 게 낫지 않는가? 

알코올성 치매는 알츠하이머에 비해 망각의 정도가 심하다. 급격하게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중등도 이상이 되면 거의 가족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가족을 기억하더라도 당신의 현재를 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알코올을 좋아해서 지금까지 한두 번이라도 블랙아웃(일시적 기억상실)을 경험해 본 사람은 매우 위험하다. 차제에 <알코올성 치매 자가 진단법>을 적어본다. 여기에서 5개 이상 해당한다면 급하다. 조처에 들어가야 한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은 대부분 당사자이기보다는 가족일 것이다. 위험인자가 있는 이가 간곡한 말을 잘 듣게 하는 묘수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1. 건망증이 심해져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길 때가 있다.

2. 말을 하는 도중 때로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3. 통제할 수 없는 짜증과 화가 복받쳐올 때가 있다.

4. 판단력이 흐려지고 갑작스럽게 불안함과 초조함이 느껴진다.

5. 약속 시간과 장소가 잘 기억나지 않거나 헷갈린다.

6. 사칙연산 등의 단순 계산이 이전에 비해 자주 틀린다.

7. 물건을 자주 잃어버린다.

8. 남들과 이야기하던 도중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9. 최근 뉴스가 기억나지 않는다. 

10. 사람의 얼굴을 잘 떠올릴 수 없다. 


지난 7월, 아버지는 몸의 부종과 고열로 서울의 큰 병원에 한 달 보름간 입원하여 치료받았다. 그 여파로 인지가 더 떨어졌다. 보행도 휘청거렸다. 종사자들이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버지에게 남은 것이 있었다. 아내를 향한 부드러운 말씨와 마음이었다. 젊었을 때 아내를 힘들게 했으므로 치매 증상 안에서나마 석고대죄하는 것 같았다. 아픈 속내를 숨기고 아버지를 응원했다. 

“그러셔야지요. 젊었을 때 아내의 말을 듣지 않으셨으니, 더 잘해 주셔야지요.”

아버지가 정색하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안 늦었지요?” 

호들갑스럽게 응수했다.

“그럼요. 혹시 늦었더라도 아내가 충분히 이해할 거예요.”

이전 05화 내 아들 이름이 뭐지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