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대한민국이 풍전등화 되니, 국민은 물론 대학생에 이어 2025년 3월 3일 오후 5시에는 청소년들마저 연합하여 대통령 탄핵 반대 시국선언에 나섰다. 어떤 면에서 기성세대보다 더 강한 울림이 있었다. 전교조 교사의 편향적인 가르침에 대한 깨달음을 이야기했다. 자유를 누리기도 전에 잃어버릴까 봐 참여한다고 했다. 오늘 침묵한다면 내일 자신들이 살아야 할 대한민국이 법과 질서가 무너진 상태일 것이라고도 했다.
그래서인지 공산주의에 저항하고 1962년 자전소설을 출간하여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구소련의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이 생각났다. 만약 자유 민주주의를 잃는다면? 공산주의 치하에 짓밟힌다면? 상상하기조차 싫지만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하는 분기점에 섰으므로, 그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이영의 옮김. 민음사, 1998)를 다시 읽었다.
소설에서, 주인공 농부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독일과 소련 전쟁 참전 당시 포로로 잡혔다가 간첩행위를 했다고 체포되어, 현재 시베리아 강제수용소에 끌려와 8년째 수감 중이다. 강제수용소의 분위기는 추위, 배고픔, 노동, 담배, 식은 죽, 국물, 영양실조, 이질, 싸움, 폭력, 위압 등등 어둠 자체이다. 그럼에도 주인공의 신조는 '한번 견뎌보자'이다.
"따끈한 국물이 목을 타고 뱃속으로 들어가자, 오장육부가 요동을 치며 반긴다.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바로 이 한순간을 위해서 죄수들이 살고 있다. 적어도 이 순간만은 슈호프는 모든 불평불만을 잊어버린다. 그래, 한번 견뎌보자. 하느님이 언젠가는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해 주실 테지!"(p175)
따라서 주인공의 하루 목적은 낮에는 -30도, 밤에는 -40도 혹한 속에 새벽 5시부터 시작되는 강제 노동 중, 아침 식사 시간 10분과 점심·저녁 식사 시간 5분씩을 최대한 잘 사용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조건으로 식사를 받을 수 있을까?' '무슨 수를 쓰면 조금 더 오래 쉴 수 있을까?' 강제노동에 짓밟힌 주인공의 피폐한 육체와 정신에서는 다른 것을 생각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눈물 나는 대목은 '소련에 성냥이 부족하다는 한마디를 했다는 이유로 영창에 들어가게 되고, 형기가 10년이 늘어날 정도'인 공산 치하의 삶에 비해, 역설적으로 수용소 안에서는 '침대에서 마음대로 지껄여도 밀고당할 염려가 없다.'(p182)는 문장이었다. 소설의 마지막도 숨이 막히되 먹먹함을 더했다.
"이렇게 슈호프는 그의 형기가 시작되어 끝나는 날까지 무려 10년을, 그러니까 날수로 계산하면 삼천육백오십삼 일을 보냈다. 사흘을 더 수용소에서 보낸 것은 그사이에 윤년이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p208)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강제노동에 정신과 육체를 빼앗겨 사는 것을 삶이라 할 수 있는가? 그것을 견디는 것을 존엄한 가치를 지닌 사람이라 할 수 있는가? 말도, 글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세상살이를 인생이라 할 수 있는가?
실제로 1945년 20대 청년이던 솔제니친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을 비방한 표현이 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8년간 악명 높은 시베리아 강제수용소에서 생활했다. 출소 후 모든 생각이 바뀐 그는 1962년 공산주의 현실을 생생하게 기록한 위의 자전소설로 탄압받다가 추방되었다. 그 후 서독과 스위스를 거쳐 1976년 미국에서 망명 생활했고, 고국에는 공산주의가 붕괴한 후 1994년에야 돌아갔다. 공산주의를 인정할 수 없지만 나라가 공산화되어 평등이라는 허울을 쓴 공산주의 체제를 견뎌야 했던 솔제니친의 운명과 저항이 공산주의를 더욱 두렵게 하지 않는가!
소련은 1957년, 세계 최초 인공위성을 발사한 나라다. 하지만 스탈린이 집권하면서 공산주의 독재로 국민을 도탄에 빠트린 후 1991년 체제 해체하기까지 많은 국민이 숙청, 집단 처형, 집단 강제 이주 등등 피 흘리며 죽어갔다. 카렐 바르토섹 등 7명이 쓴 《공산주의 흑서(黑書)》(프랑스, 1997)에 따르면 그들 정부와 공산 정권에 죽임을 당한 사람이 9천4백만 명이 넘는다. 참고로 히틀러의 나치 독재에 의한 피살자는 약 2천5백만 명이다.
그럼에도 공산주의 유령 허상을 따르는 좌파 반국가 세력들이 많다는 것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경험하지 않은 결과로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아직도 서구에서는 공산주의에 환상을 품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이는 그들이 정말로 공산당 국가에서 살면서 고초를 겪어본 적이 없어 공산주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공산주의 유령은 어떻게 우리 세계를 지배하는가?》 9평 편집부. 에포크미디어코리아, 2019)
공산주의자들은 냉전 시기에 많은 서양의 지식인, 예술가들을 자주 초청하여 자신들을 홍보했다. 물론 포장하고 연출한 것만 보여 주었다. 덕분에 그들의 저작들이 지금도 추종 세력들에게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책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그들이 숨겨서 볼 수 없었던 것은 감시와 탄압과 숙청과 압제와 탈취로 이루어진 피의 현장이었다.
다음은 1848년 2월,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동으로 집필하고 발표한 '공산당 선언'의 처음 말이다. '유령'이라는 말을 쓴 것에 주목하라.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바로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다."
공산당 선언의 어록이라 할 수 있는 다음의 문장도 들어보자.
"인간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
"지배 계급들이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벌벌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전 세계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공산당과 공산주의자의 목적은 오직 '인류 궤멸'인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가? 자신들이 권력을 가져 세계를 지배하는 신이 되는 것이다!
"<공산당 선언>은 ‘유령’이라는 단어로 말머리를 시작한다. 이는 절대로 마르크스의 일시적인 영감이 아니다. 공산주의는 일종의 사조나 학설 또는 인류가 출로를 찾으려다 실패한 시도가 아니다. 공산주의는 공산 악령으로 불리며, 우주 저층 공간의 각종 부패한 물질과 증오로 이뤄졌다."(위의 책)
그럼에도 같은 세대 안에서 같은 교육을 받고 같은 땅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사람 중에 왜 이리도 공산당과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많은가? 무엇이 그들을 친북·친중 공산주의자로 살게 하는가? 어불성설인 것은 민주주의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서 공산당과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그들의 말을 믿을 수 있는가?
솔제니친처럼 사람의 존엄한 자유를 짓밟힌다면? 세뇌당한 교육과 필요한 돈에 제물 된 반국가 세력, 그들의 꼭두각시 생명은 거기까지일 것이다. 그 후에는 자유 대한민국에서도, 공산주의에서도 헌신짝처럼 버려질 것이다. 힘과 권력을 가지면 이후는 견제하고 제거해야 할 대상일 뿐이니까.
나는 공산당이 싫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았지만 저작들을 통해서 혹은 부모 세대에게서 평생을 들었다. 자유와 자율권과 존엄은 신이 만물의 영장 사람에게만 준 독특한 선물이다. 사람은 동물이 아니다. 사람은 동물로 살 수 없다. 사상과 이념의 제물로만은 더더욱 살 수 없다.
소확행 하는 여러분이여, 사람의 고유한 가치인 자유와 자율권과 존엄을 빼앗는 체제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공산주의는 감언이설이다. 자유를 빼앗기는 날, 자율권과 존엄은 바로 사라진다. 그때 행복은 언감생심이다. 지금 여러분과 나는 공산주의가 울타리 넘는 것을 온몸으로 막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