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대학생들과 종교계, 각종 단체 등등의 시국선언이 계속되고 있다. 그보다 훨씬 앞서 광장 시위를 벌인 국민의 시위는 삭발 등으로 조금 더 진화하여 계속된다. 이번 광장 시위가 최정점을 이룬 것은 3월 1일, 몇십만 명을 넘어 육백만 명에 이르기까지 각 처소, 처소에 운집한 것이었다.
그런데 광장 시위는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가 주를 이루었지만, 만만찮게 탄핵 찬성 시위도 있었다. 그들은 탄핵 반대 시위를 방해하면서 조금 더 거칠게 몸짓해 왔다. 지금 3월 중순에는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두고 어느 때보다도 양 진영이 팽팽하게 맞서 있다. 대통령의 계엄선포로 반국가 세력이 나라 근간을 흔든 실체가 드러났음에도 두 갈래가 팽팽한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된 싸움이라는 증거다. 안타까운 것은 그리하여 대한민국 비폭력 광장 시위가 두 개로 나뉘었다는 사실이다.
12.3 대통령 계엄선포가 있기 전까지 국민의 대다수는 반국가 정치 음모가 어떤 것이며, 무엇이 거짓이고 선동인지 몰랐다. 대통령이 구금되어 탄핵 재판이 계속되는 중에 진실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 거짓 선동인지 알아채기 시작했다. 하여 국민은 대통령 계엄선포로 계몽되었다.
이제 간절히 바라는 것은 잘못 알고 선동되었건, 진실을 위해 팔을 걷었건, 우리 대한민국 광장 시위가 언제까지나 비폭력 평화 시위로만 이어지기를 바란다. 행여나 어떤 국면에 감정이 폭발하여 악이 공중 권세를 휘두르지 않기를 소원한다. 하여 나의 친구, 동생, 자라나는 새싹들이 다치거나 강제 해산되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비폭력 운동은 100여 년 전,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1869~1948)가 획을 그었다. 그의 자서전(《간디, 아름다운 영혼의 일기》 이동진, 서희 역. 씨제이에스북, 2021)을 읽어보니, 그는 파견 변호사로서 인도인들에게 불합리하게 부과된 세금법을 고치려고 남아프리카에서 반영 비폭력 운동을 처음 시작했다. 그 와중에 보어전쟁(1899~1902)이 일어났을 때는 영국을 위하여 비폭력 운동을 중단하고, 환자 수송병 의용대에 지원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는 영국 정부에 저항했지만 자국민만을 위하지 않은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도 충분히 고려하여 해로운 일은 삼가고, 도울 일은 도왔다.
"사탸그라하는 어떤 시위라도 상대방의 입장도 충분히 고려했다. 나는 그렇게 시민들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사소한 배려가 많은 사람에게 큰 감동을 심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련의 일들은 인도인을 명예롭게 하고, 남아프리카에서 인도인들의 권위를 높여줌으로써 투쟁을 해결하는 데 좋은 조건과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정부는 우리들이 아무런 원한을 감추지 않고 항의하고 있다는 것, 누구도 해칠 의사가 없다는 것, 오직 일한 만큼만 적절한 대가를 받기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가 모여 있는 곳의 주위는 늘 깨끗하고 공기도 맑았다. 지금까지의 시위처럼 폭력이 난무하고 시끄럽지도 않았다. 늘 그렇긴 하지만, 그런 가운데 사람들의 마음은 조금씩 서로가 서로에게 감동을 전해주었다."(같은 책)
현재 대한민국 국민이 대통령 탄핵 반대와 찬성으로 양분된 것은 오늘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다. 반세기 동안 꾸준하게 물밑에서 반국가 세력이 활동한 결과이다. 이제 총체적으로 부수고 재정비해야 할 때를 맞이했다. 전에 없는 진통이 예상된다. 국민 모두가 견디고 일궈 다시 세워야 한다. 대통령 탄핵이 기각되어 지금의 자유 체제 안에서 정비되면 더 바랄 것이 없다. 헌법 재판관들이 편향을 접고 공정하게 재판하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럴지라도 국민 한 진영은 상처를 입는다. 그 상처마저도 비폭력 범위이기를 바란다. 만약 탄핵이 인용된다면 역시 대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공정하지 않은 심판에 대하여 국민 대다수가 저항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대혼란마저도 처음부터 끝까지 비폭력 범위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분명한 것은 거짓은 물러가고, 진실은 이길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수십 차례의 체포와 구금의 고통이 따를지라도 끝까지 진리와 정의의 비폭력 운동으로 수많은 추종자를 낳은 간디의 경우처럼 말이다.
"진리가 아닌 것이 존재할 수 없는 한, 어느 쪽이 승리할 것인가는 정해져 있다. 이렇게 존재하는 진리는 어느 누가 없애려고 해도 소멸시킬 수 없다. 이것이 사탸그라하의 기본적인 교리다."(같은 책)
간디의 그런 비폭력 운동은 영국 정부 관리자까지 감동하게 할 정도였다.
"그때 스마츠 장군의 비서관은 농담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인도인 편을 들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파업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당신들은 우리를 크게 도와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당신들을 강력하게 제재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차라리 당신들이 영국인 파업자들처럼 폭동 수준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렇다면 마음 편하게 당신들을 진압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우리에게 아무런 폭력도 쓰지 않았고, 단지 자기희생을 통해서만 당신들의 뜻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게다가 당신들은 시위 중에도 규칙과 예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당신들을 진압할 수가 없었습니다.'"(같은 책)
결과, 간디는 비폭력 운동으로 영국으로부터 인도 독립을 쟁취했다. 그리고 그의 비폭력 정신은 역사에 남았다. 지금도 전 세계에 영향과 영감을 준다. 하지만 독립 후, 힌두이즘과 이슬람이 불화하고 양분되었을 때 화해를 주도하다가 그는 극성 힌두교도에 의해 암살당했다. 그의 비폭력 운동이 돌이킬 수 없는 폭력으로 마감된 것이다.
오늘, 대한민국 서울에서 애국하는 국민이 광장에 비폭력으로 서 있는 것, 무한 감사하다. 그럼에도 현재 대한민국의 양극화 현상은 몹시 두렵다. 양 진영 모두에게 촉구한다. 노래와 퍼포먼스와 춤이 있는 여유를 갖기를. 자유와 평화를 위한 매개로서 끝까지 기품 있는 비폭력 시위대가 되기를. 정치적인 헛된 이념에 사로잡혀 결코 비폭력을 넘는 일이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