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우리집에 오던 턱시도 길고양이가 한두달전 새끼를 나은듯 하다. 얼마전부터 형제로 보이는 새끼고양이 두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집 정원 밥자리에서 밥을 먹기 시작하더니 며칠째 계속 보이는 걸 보니 눌러 앉아살기로 한 것 같다. 둘은 덩치가 비슷하고 얼굴모양도 비슷하고 무엇보다 늘 같이 다니고 뒹굴면서 놀았기 때문에 형제인 것 같았다. 그리고 작년부터 오던 턱시도 고양이의 자식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어느날 이 턱시도 고양이가 자기와 같은 색깔의 까맣고 주둥이가 하얀 아주 작고 마른 새끼고양이를 1미터 간격을 두고 함께 나타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공짜 밥자리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여기 호구집사 한마리 산단다”라고. 어미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엄마도 작다)
다니던 카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좀더 자주 고양이 밥을 챙겨주었다. 어차피 시간되고 생각날 때에만 챙겼다. 비가 와도 들이치지 않는 곳에 자리를 정해 한 국자씩 놓아주는 방식이었다. 나는 동물과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좀 다르다. 사람은 무언가가 공짜로 주어지면 어느 새 익숙해져서 어느날 주는 것을 멈췄을 때 주었던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책임을 져. 주다가 안주면 어떻게 해? 너 때문에 나는 이 방식에 익숙해졌으니 끝까지 줘야지.”하고 허구의 권리주장을 한다. 동물은 상대방을 비난하는 말을 하지 않고, 원조가 끊긴 상황에 낙심할 지언정 정신적으로 빠르게 회복하고 물건을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떠난다. 그래서 사람에게 무언가를 줄 때는 비난받을 각오를 하고 주어야 한다. 동물은 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사랑과 관심을 줄 수 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도 하루 5시간 정도밖에 안했지만 그 적은시간도 다시 공백이 되니 시간이 다시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이다. 조금 심심하던 차에 때마침 새끼 고양이들이 나타나서 재밌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밖에 나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새끼고양이들이 밥자리에서 비에 젖지 않은 보송한 갈색 자갈 같은 사료를 배불리 먹고 놀기 시작한다. 여름동안에 풀을 베지 않아 작은 정원인데도 빽빽해져서 정원 이십센치 안쪽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때 오른쪽에서 길게 줄기를 올려 노란꽃을 피워 절반은 하얀 홀씨를 만든 잡초가 바람과는 다른 리듬으로 흔들린다. 툭툭 줄기를 치는 소리가 들리고 홀시 몇알이 바람에 날려간다. 배부른 새끼 고양이가 땅에 누워 잡초의 밑둥가지를 두드려 흔들리는 잡초를 보며 논다. 아무런 근심도 없다. 바람이 불고 잡초의 꽃과 홀씨가 흔들리고 빽빽한 잡초들 사이로 까만 고양이가 언뜻 보인다. 세상에 나와 고양이밖에 없는 것 같다. 벌써부터 밥값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