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습설이었다. 아직 어두운 가운데 창문밖에 눈이 부딪혀 사락거리는 작은 소리가 났다. 웅웅거리는 바람소리도 함께였다. 우아하고 고요한 새벽이었다. 나는 차가운 공기를 맡고 눈냄새를 맡고 들리는지 마는지 모를 작은 소리를 듣고 다시 침대안으로 들어가 눈을 감았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날리는 눈의 양이 많아졌고, 송이도 굵어졌다. 바닷속을 누비는 수천의 물고기떼처럼 눈송이들은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뭉쳐 날아다녔다. 동네의 구석진 모든 집까지 연결되어 굵어진 통신선 다발에 비둘기가 앉아 낮게 몸을 웅크리고 눈을 맞고 있었다. 왜 맡은 편 산의 나무 아래로 들어가 피신하지 않고 눈을 계속 맞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아침이 된다고 해서 특별히 어떤 소음이 추가되지 않는데도 새벽의 조용함과는 달랐다. 눈이 내려서인지 어떤 새도 울지 않았지만 말이다. 테라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동네전체가 하얗게 변했다. 부지런히 눈이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멀리까지 보이지는 않았다. 평소에 멀리 보이던 산이 보이지 않는다. 흐릿하고 나른한 아침이다.
눈이 오는 날은 정원사에게는 쉬는 날이다. 그리고 봄눈이 내리기 며칠 전에 비료를 잘 뿌려둔 정원이라면 자연이 정원사가 할 일을 대신해주는 날이기도 하다. 눈은 비보다 더 오랜시간에 걸쳐 땅에 스며든다. 땅에 내려앉아 충분히 따뜻해질 때까지 떨어진 자리에서 기다리다가, 기온이나 지열에 천천히 녹아 중력을 따라 땅에 스며든다. 이 눈녹은 물들은 어디까지 내려가는 걸까 궁금해졌다.
정원을 만들기 위해 삽을 가지고 땅을 깊게 팠던 적이 있었다. 5번의 삽질을 연속해서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돌덩이와 자갈들이 나왔다. 땀도 줄줄 흐르고 몇번 용쓰듯이 힘을 쏟아내어 일을 했다. 한참동안 건축용 쓰레기, 스티로폼, 콘크리트 조각들, 못, 비닐 들을 빼냈다. 수시간 뒤에 알게 됐다. 이 흙을 내가 다 솎아내고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그 때 내가 미처 빼내지 못한 모든 것들이 땅에 조용히 묻혀있을 것이다. 눈 녹은 물이 내가 꺼내지 못한 돌과 콘크리트와 쓰레기와 비닐들을 지나고, 더 아래까지 비료성분과 함께 천천히 스며들 것이다. 내가 며칠에 걸쳐서 열심히 하는 삽질은 비, 눈 그리고 시간이 이루는 일에 비하면 정말 연약하고 볼품없다. 근육경련이 나고 다음날 몸살이 든다고 해도 말이다. 모든 틈새를 찾아 땅 저 안으로 내려가는 눈(녹은)물이 스며드는 장면을 상상하니 눈이 내린 오늘새벽처럼 고요하고 아득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