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재킷 없이 바다로 간 아이들

라이프 재킷 창비문학 이현 지음

by 그리다

이현 작가의 라이프 재킷은 아침독서 중고등 추천 도서(2025년) 미디어 추천 도서(한국경제 2024년) 원북원부산 추천 도서 (2025년)로 선정되었다 작가는 단편소설 <기차, 언제나 빛을 향해 경적을 울리다>로 제13회 전태일문학상 소설 부문에 당선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청소년 문학이라는 장르는, 경험상으로 볼 때 해피엔딩 혹은 희망적인 암시로 끝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두려움 없이 작품을 집어든다

그러나 이 작품은 나에게 다른 인상을 남겼다

청소년 시기는 경험은 얕고 판단은 투명하며 자의식은 강하고 영혼은 순수하다

이 정도가 그 시기의 특징이라고 할까

그들 스스로는 어른이라고 생각하나 외부에서 볼 때는 이제 막 어린이 시기를 벗어난 나이로 보일 뿐이다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의 화자 '나'는 예닐곱 살 아이지만 자신은 예사 아이가 아니라고 선언한다

청소년도 스스로는 어른이라 생각한다

주인공 천우와 여동생, 그들의 친구들은 요트를 타고 항해를 시작한다

이 책을 펼쳐든 순간, 나 자신도 천우신조호에 승선하여 간단한 연수조타 하지 않은 선장과 함께 바다로 떠내려 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천우는 아버지의 파산 때문에 현재까지의 학교, 친구, 집을 뒤로하고 큰아버지 댁으로 가야 할 참이었다. 그러나 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는 대신 요트를 타게 된다.




우리 요트 탈래?


인스타에 천우가 올린 글을 본 몇몇 아이들은 각각의 이유로 마리나 요트 계류장에 모인다.

인스타 사진 올리기가 취미인 천우는 게시글과 사진을 금방 내리지만 그 짧은 글은 아이들을 한 배에 탄 공동 운명체로 만든다.

'한 배를 타다'라는 말은 다가올 고락을 함께 견디고 즐기게 됨을 예견하게 한다.



"계류장에 방치된 지 여러 달이 지난 요트에게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으레 대가가 따르는 법이었다"

p43


이야기 초반에 나오는 이 - 대가-라는 단어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성장소설이 대개 그렇듯 시련과 고난 뒤에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지나간 시련을 달콤하게 회상하는... 뿌듯한 모험담으로 끝나는 게 9할을 차지한다는 생각에서였을까.


'천우신조호'를 띄우고 바다로 나간 아이들은 조난에 일조했다는 마음의 짐을 지고 힘들어한다.

요트에 붙은 계고장을 숨기고 요트를 출항하게 되는 실마리를 제공한 천우.

아빠가 요트 딜리버리 일을 하여 요트와 항해에 대해서는 좀 안다는 자신감을 보인 류

서울에서 전학 와 부산이 낯설고도 신기하여 바다를 체험해보고 싶은 태호

요트에 관심이 많아 요트 운전 자격증에 도전하여 자신의 실력을 과신했던 천우의 동생 신조


아이들은 갑작스러운 정전, 끊임없이 몰려오는 거친 파도, GPS가 끊기는 상황을 차례로 겪으며, 각자가 조난 상황을 겪게 된 데에 책임이 있음을 느끼고 죄책감으로 힘들어한다.




"당연히 구조 요청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천우가 압류 통고장을 내보였다"

P49

이때에 구조 요청을 했어야 하는데 압류 통고장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이들은 그 기회를 놓치고 만다


살아가는 여정에서 판단 실수를 하여 일을 그르치는 일은 단연 천우신조호의 아이들 일만은 아님을 안다


"더는 안 되겠다며 태호가 119를 눌렀을 때는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그런데 통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P51


잘못된 선택을 바로 잡으려 할 때 숨어 있던 복병이 공격해오기도 한다.


요트의 붐이 쓰러지며 장진을 덮친다. 장진은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지나가는 배가 가까이 다가와 구조요청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범생으로 생활기록부에 어떤 오점도 남겨서는 안 되는 노아가 구조 요청을 만류한다.


무엇이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잊을 때가 있다.

인물의 이런 행동을 보며 우선순위를 바꿔가며 살아왔던 지난 일들이 떠올라 닻처럼 마음이 가라앉았다.


장진이 가쁜 숨을 토하며 호흡하는 것에 안도하며 지척에 다가왔던 배에 구조요청을 하러 선미로 몰려갔으나 이미 배는 멀리 떠난 뒤였다.

우선순위가 바뀌었던 일을 바로잡으려 할 때 시간이 너무 지나버린 경험들은 바다에서 뿐만 아니라 육지에서도 얼마든지 있다.

아이들이 장진에게 돌아왔을 때 장진은 파도에 실려가고 없었다.


압류 통고서를 두려워하지 않고 구조 요청을 했었다면 수줍어하며 잘 웃던, 배려심 많은 장진을 떠나보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장진은 집에다 흔한 거짓말도 해 본 적 없는 애였다.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날 같은 건 절대로 없었을 인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다로 휩쓸려 가고 말았다." P 172


장진은 수영선수이니까 수영을 해서 돌아오지 않을까 하며 글을 읽었다. 그러나




"요트를 타고 나갔던 실종 고교생, 해운대 해수욕장에 시신으로 떠내려와..."

P146




라는 속보를 읽고 이 현 작가님을 원망했다. 청소년기의 무모한 도전을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할 거라 예상했는데 정말 갈 때까지 가버린 것이다.


"믿을 수가 없었다. 스토리라면 이쯤에서 끝나야 했다. 스토리피자의 핸콘62라면 그랬을 터였다" P194


작가님 때문이 아니라 바다 때문인지도 모른다. 바다는 그런 것일지도. 천우신조호를 타고 떠난 여섯 명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바다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파도가 밀어주는 힘에 떠밀려 소나무가 울창한 섬에 도착하게 된다. 뒤편에 육지와 연결된 다리가 있기를 기대하나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누구의 발길도 닿은 적 없는 순백의 눈밭, 광고나 영화에 나올 법한 백사장이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텅 비어 있었다.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실망이 갑판을 덮쳤다." P138





희망이 절망으로 변하는 순간은 평지에서 넘어지는 사고가 아니라 출렁다리에서 발을 헛디디는 아찔함일 것이다.



"천우는 살롱 출입문을 조금 열었다. 책에 불을 붙여 살롱으로 밀어 넣고 바다로 몸을 던졌다. 쾅!"



천우는 지나가는 배에 구조 요청을 위해 '천우신조호'를 폭발시켜 조명탄으로 사용하고 자신은 희생된다.

소설 시작 부분에서 말한 "대가"는 두 사람의 생명과 남은 가족과 친구들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이었다.

'대가'라는 말은 봄옷 입은 날의 꽃샘추위 같은 거라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세게 맞은 기분이다.


요트가 아니라 배가 아니라 비행기에 실려온 아이들은 사람들의 관심 앞에 세워진다.

그리고 그들 앞에 질문이 놓여있다. 어떤 답을 하게 될까?

오점을 남기지 않는, 위로를 주는 , 진실을 알리는 답. 그들의 선택은 무엇일까 생각하며 마지막 장을 덮었다



작가의 말

"바람에 흔들리는 만큼 아름다운 바다를 온몸으로 건너는 그 오늘이

당신의 라이프 재킷이 되어 주기를 바라며, 믿으며.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 책을 읽기 전 바다는 평면이며 수평선이며 윤슬이 일렁이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 육지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바다에서 육지를 바라보게 되었다.

아름다운 백사장이 절망일 수 있다.

바다는 평면이 아니며 히말라야의 험준한 산맥이며 산맥처럼 정적인 것이 아니라 일렁이는 산맥인 것이다.

신선한 식품보다 통조림이 더 값나가는 식량이 되어 주는 곳이며 백사장은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구조 깃대를 꽂을 수 없는 절망의 땅인 것이다.

늘 고정된 시선, 변함없는 습관에 사로잡힌 시각을 좀 더 넓혀야겠다.

무모함에 대한 대가로 무엇을 지니게 되었는지는 더 시간을 두고 고민해 보아야겠다.


작품을 쓰기 위해 요트 면허를 따고 요트에 붙은 압류 통고서에서 창작의 실마리를 얻은 작가님께 존경을 드린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