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애가 되기로 한 윌리엄 5세

윌리엄 셰익스피어, 윌리엄 프린스 오브 웨일스?

by 그리다

표지 그림 출처 : 아이 플레이 스윙 - Pixabay의 무료 사진


어린이를 사랑한다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가 어린아이를 사랑하지 않으랴

그래도 이유를 말하자면 지구에 착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낯선 외계인 같아서이다

순수하다와 유사한 말일 수도 있겠다

아이를 보면 얼굴에 근심이 싸악 사라지며 진심으로 미소 짓게 된다

사진 찍을 때 카메라 앞에서 어색하게 애써 만드는 미소가 아니라 그냥 화---아----안---하게 웃게 된다




지인이 아이를 동반하고 왔길래 지폐를 한 장 준 적이 있다

아이는 제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 보이며

벌써 있어요

라고 답했다

어른 중 누가 돈을 주면 벌써 있다고 하며 사양할 것인가


어린아이에게

너 요즘 왜 이렇게 말랐니

하고 물었더니

자기 몸을 여기저기 만지며

제자 젖었었나요

하고 물었다


아이들은 문장 속에서 동음 이의 어를 구별할 줄 모르는데 그런 이유로 말을 주고받다 보면 난데없는 웃음보따리를 선물하기도 한다

지구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구나ㅡ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이유다






어린이, 아이, 애

어린이라는 단어는 조금 딱딱하고 격식 있는 느낌이 나서 거리감이 느껴진다

아이, 받침 없이 발음되는 두 글자가 편안하고 친근하다

애, 연약하고 방어력 없는 어떤 여린 생물이 떠올라 마음이 아릿한 느낌이 든다


윌리엄을 사랑한다

"애'라는 단어를 들으면 윌리엄이 떠오른다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 아니고

동화 속 왕자처럼 보송했으나 지금은 탈모가 심각한 윌리엄 왕세자도 아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윌리엄은

윌리엄 해밍턴이다

윌리엄을 직접 본 적은 없다

나는 필부이고 윌리엄은 스타이기 때문이다

어린이 육아 프로그램에서 윌리엄이 나의 최애 캐릭터였다

아이가 가장 귀엽다는 타이틀을 차지하는 데는 육아를 담당하는 부모의 공이 큰 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생각나는 에피소드

윌리엄이 다섯 살이 되는 생일 아침

윌리엄은 동생에게

윌리엄 오(5)세

하며 손가락 다섯 개를 쫙 펴 보이며 자랑한다

어린아이일 때는 나이 드는 게 그렇게 뿌듯하고 자랑스러운가 보다

이제부터 나도 마음대로 하겠다며 후드 티를 앞뒤로 거꾸로 입고 모자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외계인처럼 걸어 다닌다

윌리엄 오세라며 기세등등하던 윌리엄에게 반전이 일어난다

그것은 치과 방문이다

검진한 의사 선생님이 심각한 얼굴을 하자 윌리엄은 윌리엄 오세의 위엄을 내팽개치고 오열하며 외친다

"나는 그냥 애예요"

내내 흐뭇하게 웃으며 시청하던 나도 눈물이 맺힐 것 같았다

그래 그냥 애지





그냥 애가 되고 싶을 때가 있다

치과에 다니지 않아도 되는 나이의 애

아침에 출근하기 싫을 때, 통장 잔고가 바닥인데 가외 비용이 발생할 때, 비 오는 퇴근길 접촉사고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순간들이 줄 서서 대기 중이다


아이를 예뻐하니 어른은 상대적으로 애정이 덜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어른 속에 있는 아이를 보게 된다

아이일 때 예뻤던 그 아이가 어른이 된 것이다

애정 어린 시선이 망막에 필터처럼 끼워져 군인 아저씨가 된 청년도,

출근길부터 피곤함이 역력한 지친 어른이들도 애정의 눈길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 보이는 많은 것들에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행복을 느끼며 살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인간 관계가 어렵고 힘들지라도 부대끼며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값진 일인 듯하다

인간 관계에 많이 갈등하고 어려움을 이겨낸 결과 햇살을 받아들일 수 있는 면이 더 많아지는 것이 아닐까

정교하게 세공된 다이아몬드처럼






육아 프로그램에서 윌리엄을 사랑했던 그 시간들은 무한히 행복한 시간이었다

꽉 만힌 도로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을 때 머리 속으로는 즐거운 영상을 재생한다

별다른 일 없이 여유 있는 시간에는 동영상 쇼츠를 찾아 천사 같은 아이들을 보며 웃기도 한다

검색어는

윌리엄 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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