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의 약, 중요한 산업의 중심이 되기 까지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약’을 ‘병이나 상처 따위를 고치거나 예방하기 위하여 먹거나 바르거나 주사하는 물질’이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는 약의 목적에 초점을 맞추어, 치료 또는 예방을 위한 용도임을 보여준다.
반면 캠브리지 영어사전에서는 약을 ‘역사적으로 발견된 물질’이라는 측면에서 설명하며, ‘약으로 사용되는 천연 또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화학 물질’로 정의하고 있다.
질병 치료에서 물질로서의 약이 본격적으로 약물 치료의 방법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인간을 대상으로 한 과학기술 및 제약 산업의 발전과 깊은 관련이 있다.
고대에는 자연에서 얻은 식물, 동물, 광물 등을 이용한 치료가 이루어졌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피루스에 다양한 질환에 대한 처방과 약초 사용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점토판에 약용 식물이나 광물을 사용한 처방이 남아 있다. 이 시기에는 주술과 의학이 혼재된 형태로 치료가 이루어졌으며, 치료자는 주술적인 역할과 함께 의술을 사용하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했다.
질병의 원인을 악령이나 신의 분노로 여겼던 당시, 히포크라테스의 체액론이 등장하면서 의학은 질병의 원인을 자연에서 찾으려는 시도로 전환되었다.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효과가 있는 물질’이 밝혀지고 기록되면서, 의약학 지식이 점차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중세 유럽에서는 수도원에서 약초를 재배하며, 수도사와 수녀들이 환자를 돌보고 간단한 처방이나 연고, 허브차 등을 제공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며 해부학의 발전은 인체 구조에 대한 이해를 높였고, 의사들은 질병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새로운 약물과 치료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실험과 관찰을 통해 더 효과적인 치료제를 찾으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18세기말~19세기에는 실험 생리학과 실험 약리학의 방법론이 발전되었고, 20세기의 화학과 생리학 발전은 약의 작용 기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틀이 되었다.
19세기 이후 약의 발전은 근대 제약 산업화와 함께 진행되었다. 초·중반까지는 지역 약국에서 의약품을 직접 제조하고 조제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으나, 이후 화학 실험실과 공장 생산 체계가 도입되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독일, 스위스, 영국 등 유럽을 중심으로 화학·염료 공장이 발전하였고, 이는 초기 제약 산업의 기반이 되었다.
자연 유래 재료에 의존하던 약이 합성의약품의 등장으로 화학 공정을 통해 대량 생산되면서 약효 및 안전성의 일정 수준 유지가 가능해졌다.
1897년, 독일 바이엘 사는 살리실산을 개량하여 위장 장애를 크게 줄인 아스피린(Aspirin)을 개발했다. 이는 버드나무 유래 생약이 규격화된 의약품으로 전환된 사례로, 규격화된 사용할 수 있는 약의 시작을 의미한다.
19세기 후반에는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가 미생물학의 기반을 닦아 ‘미생물이 질병의 원인’ 임을 입증하였다. 이는 전염병 치료와 예방을 가능하게 하였고, 국가 주도의 공중보건 정책으로 이어졌다. 이후 콜레라, 장티푸스, 결핵 등의 연구와 백신 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전염병 예방이 국가적 차원에서 체계화되었다.
특히 19세기말부터 영국, 독일, 미국 등의 정부는 보건행정을 개혁하고, 의약품과 백신 보급을 국가정책으로 추진하면서 인구 사망률이 급감하고 수명이 연장되었다.
20세기 이후에는 페니실린, 스트렙토마이신 등의 항생제가 발견되고 대량 생산되었다.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이 발견한 페니실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량 생산 체계를 통해 보급되며, 세균성 감염병의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감염병의 예방과 함께 외과 수술 기법이 발전하고, 의료기술 전반이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 이후 제약 산업은 국가 경제의 핵심 산업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미국의 화이자, 머크, 영국의 GSK 등 대형 제약사는 대규모 연구개발(R&D)을 통해 수많은 신약을 출시하였다. 심혈관 질환 치료제, 항정신성 의약품, 호르몬 제제 등 고부가가치 약물이 개발되며 산업 규모도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이에 따라 국가 주도의 공중보건 정책과 함께 의약품의 대량 생산과 연계한 의약품 관리를 위해
약물 규제기관(FDA 등) 및 임상시험 제도의 확립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발전과 함께 약물의 대중화로 인해 약물 부작용과 안전성 문제가 부각되었다.
1960년대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 사태는 대표적인 사례로, 입덧 치료제로 사용되던 이 약물은 심각한 기형을 유발하였다.
이 사건은 임상시험 절차와 약물 승인 제도의 엄격한 정립을 촉진하였으며, ‘근거 중심 의학(evidence-based medicine)’ 이 확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임상시험에서 시행되고 있는 합리적인 약물 요법 개념으로 대조임상시험이 의학에 도입된 것은 불과 60년 전이다.
제약 산업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 주도 시장이며, 현재도 연평균 5% 성장률을 유지하며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개인의 기대수명이 연장되고 주요 질환의 양상이 변하는 가운데, 제약 산업은 고위험·고수익 구조를 기반으로 지속적인 연구개발(R&D)을 수행하고 있다.
신약 개발은 15년 이상의 시간, 막대한 자본, 고숙련 인력이 투입되는 고난이도의 작업으로, 성공 확률은 낮지만 성공 시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가져온다.
특허 제도로 인해 일정 기간 시장 독점권을 갖게 되어, 이익폭이 비교적 높다. 의료비용 중 의약품의 비율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는 합성의약품이 중심이었으나, 이후에는 바이오기술(Biotechnology) 이 도입되어 신약 개발에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허 만료로 인한 매출 하락 문제를 바이오의약품이 보완하고 있으며, 이는 매출 유지에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전 세계 누적 판매액 기준으로 가장 많이 팔릴 것으로 예측되는 의약품에는 Comirnaty(코미나티, 2020년 출시) 백신도 포함되며, 이외 엘리퀴스(Eliquis, 2011), 리피토(Lipitor, 1997)와 같은 경구약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자가면역 질환 및 암 표적 치료제다.
이러한 바이오기술 기반 의약품은 현재 제약 산업의 주류로 자리 잡았고, 향후 우리 생활 속 약물 사용 방식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의약품은 다른 산업 분야의 제품과 비교할 때 매우 독보적인 특성을 지닌다.
과학기술의 산물이자, 사회적 규제 하에 철저히 통제되는 물질이며, 동시에 고부가가치 산업의 핵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인간의 삶과 생명에 직결되는 물질로서, 그 중요성과 영향력은 타 산업과 비교해 더욱 뚜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