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결혼, 아이 셋. 내 인생은 끝난 걸까?

난 스무 살에 다시 태어났다.

by 낭만철학


누군가에겐 나는 실패한 인생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단지 삶의 순서가 조금 달랐을 뿐이고 말하고 싶다.

실패한 인생은 없다. 실패는 단지 하나의 과정일 뿐, 노력하는 만큼 원하는 방향으로 얼마든지 바꿔갈 수 있다고 믿는다.

내 삶이 증명한다.


나는 내 방식대로 길을 선택했고,
그 선택 위에 나만의 여정을 쌓아왔다.
정해진 길은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 길은, 나만의 삶을 개척해 온 진짜 나의 길이다.

나는 스무 살에 결혼했고,

스물여섯 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철없던 스무 살에 선택한 결혼이었지만,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내 몫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주어진 삶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아내기로 마음먹었다.

결혼 후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친구들과의 만남을 끊는 것이었다.
유혹에 흔들릴까 봐서가 아니라, ‘지금은 가정에 집중할 때’라는 내 나름의 판단 때문이었다.
그들과 나는 이제 가는 길이 다르다고, 자연스럽게 느껴졌. 그들의 자유를 부러워만 하고 있기엔,

내가 해내야 하는 엄마, 아내로서의 몫은 꽤나 묵직했다.


아이 셋을 낳고 키우는 동안,

내 안의 가치관은 완전히 달라졌다.
삶의 철학이 생겼고, 부모로서의 철칙도 세워졌다.
"부끄러운 부모가 되지 말자.
말로 가르치기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부모가 되자."

나는 아이 셋을 모두 자연분만했고, 무통주사 없이 오로지 산통을 격었으며, 산후조리원에도 가지 않았다. 내 나름의 엄마로서 해줄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해주고 싶었다.


세상에 태어난 작고 약한 나의 소중한 존재에게 세상은 따뜻하고 안전만 곳이라는 믿음을 주고 싶었다.

가장 원초적인 온기, 가장 깊은 교감을 온전히 내 품에서 전해주고 싶었다. 갓 세상에 나온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익숙한 엄마의 길과 따뜻한 품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처음 집에 오던 날, 난 한숨도 자지 않고 아이를 돌봤다. 아이가 울 때마다 “손 탄다”라는 걱정보다,
그 울음 뒤에 숨은 이유를 찾으려 했다.. 아이의 울음은 아이가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했기에 무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안아주고 어루만져 주었다.
덕분에 돌이 지나기 전까지 세 시간 이상 내리 잠을 자본 적이 없다.

어린 엄마였지만, 나만의 육아철학은 확실했다.

아이를 키우며 나만의 규칙을 세웠다.
‘ 절대 나쁜 감정을 안채로 재우지 않는다.’
혼났다 해도 꼭 풀어주고, 안아준 뒤에 재운다.
한 번은, 울며 잠든 아이가 잠결에도 발버둥 치며 악몽을 꾸는 걸 보고 그 철칙을 더욱 단단히 마음에 새겼다.

‘미워, 바보, 너 싫어’ 같은 말은 농담이라도 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장난으로라도 상처 줄 수 있는 말은 절대 입에 올리지 않았다. 작고 여린 존재일지라도, 나는 아이들을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대했다.

아이들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켰다.
거짓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현재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은 아이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울고불고하더라도 거짓보다는 진실을 말해주고 엄마에 대한 믿음을 주는 게 더 좋을 거라 판단했다.

가령 엄마 어디 안 가~ 하며 아이가 한눈파는 사이 사라져 버린다거나 , 금방 올게 하고 한참 뒤에나 나타 나거나, 다음에 사줄게 하고 얼렁둥땅 상황을 모면하는 일 들을 하지 않았다.


“싼 거니까 사줄게”가 아니라,
“싸더라도 필요 없으면 사지 않아.
비싸더라도 꼭 필요한 거면 사줄게.”
가치에 대한 기준을 함께 배워갔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재미로 하는 100원짜리 뽑기도 못하게 했다. 뭐가 나올지 모르는 랜덤 뽑기는 필요한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이 나오든 ㅂ쓰레기가 된다. 온전히 재미로 물건을 사는 건 100원이라도 가치가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경찰아저씨가 잡아간다! 곰지(귀신) 나온다!

아빠한테 이른다! 등 아이의 행동을 교정하고 싶을 땐 겁을 주거나 누군가의 힘을 이용해 제지하기보다. 행동자체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해 바로 잡아주었다.

초등학생 이후에는 입을 옷을 스스로 선택하게 했다.
한정된 금액 안에서 스타일, 품질, 사이즈 등을 스스로 고려하게 했고, 그 선택에 따른 결과도 스스로 감당하게 했다. 자기 주도적 삶을 어릴 때부터 체화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항상 말해주었다.

엄마아빠는 언제나 너희 편이고 너희가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도와줄꺼야.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은 하면 안돼.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하는 1개의 거짓말이 99개의 진실까지 거짓으로 변질시킬수 있어.

잘못은 당당히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면돼. 그러니 너희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땐 엄마아빠가 너희를 도와줄수 있도록 어떤일이든 솔직히 말해주렴.


아이들이 "엄마 나 이거 하면 안되지?허락안해줄꺼지?" 부정의 질문을 할때면 단호히 말한다.

" 이미 너 스스로 안된다는 걸 전제로 말하는데 어떻게 될거라고 생각하지? 앞으로 하고 싶은게 있거든, 나는 이래이래 해서 이걸 하고 싶어. " 라고 당당히 니 생각을 말해. 그래야 성공확율이 높아져. 스스로 의심하며 하는 일은 이루어질 수 없어. 된다고 생각해야 이룰수 있다고..

가끔 이런 날 보고 아이들은 사이비 같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분명 성장하며 생각의 힘을 느낄거라 생각한다. 스스로의 대한 믿음과 긍정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리고 아이들이 크면서 나 스스로에게 질문이 생겼다.
나는 스스로 꿈을 향해 노력해 본 적이 없, 이뤄본적이 없는데 어떻게 아이들에게 ‘노력하면 이룰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28살.
막내가 세 살,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나는 만학도 대학생이 되었다.
뷰티과에 입학해 우수상, 4.3학점, 장학금,
그리고 한 번도 결석 없이 졸업했다.

아이 셋을 돌보고 재운 뒤
새벽까지 리포트를 쓰고,
실기 연습을 하고, 대회 준비를 했다.
힘들었지만, 그 시간들이 내 인생에서 가장 뜨겁고 빛났다.

공부하는 나를 말없이 지켜봐 주고,
“돈이 얼마가 들었다”는 말 한마디 없이
늘 응원해 준 사람.
결혼할 때
"아이 하나 낳으면 대학 보내줄게"라던 약속을
몇 년이 지나서라도 지켜준 사람.
남편은 내 삶의 가장 든든한 배경이자, 단짝이다.

내가 꿈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그리고 지금 나는,
아이 셋을 키우며
나 자신을 키워가는
엄마이자,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20살에 결혼, 아이 셋을 낳고 끝날 줄만 알았던 내 인생은 아이들로 인해 새로운 삶의 기준과 철칙이 생겼다.

그 힘이 나를 유혹에서, 삶의 나태에서, 무력에서 늘 이끌어내는 동력이 되었다.

세상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안아주고 나만 바라봐주던,

아이들의 순수한 사랑이 나를 키웠다.

나는 스무 살에 그렇게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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