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만나는 인생

화왕산

by 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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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고 내려올 때 즈음이면 언제나 미련이 남는다.

하루 혹은 무박으로 시간을 내어 바쁘게 오르는 산에서

그 산 구석구석을 알고 느꼈다고 할 수 없기에

'다음'이라는 말로 채워지지 않는 여운을 위로하곤 한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선 진정 다시 올 수 있을 것인가?

그런 물음도 함께 잠자고 있다.

사노라니 이제서야 찾은 그 산들을

살아가다 보면 오늘보다 내일을 기약하기 힘들텐데

다시 오겠다는 자기 약속의 부질없음을

어찌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늘 화왕산은 더욱 그러했다.

내가 다시 이 산을 찾을 날이 또 오겠는가?

그래서 더욱 그 간절함이 컸던 하루였다.

가던 길을 멈추어서서 먼 길 바라보는 시선으로

한참을 서 있곤 있다.

그렇게라도 내 눈과 마음 속에

오늘을 꾹꾹 눌러담고픔이 컸을 것이다.

아기 엉덩이같은 작고 낮은 능선들이 어우러져서

겹겹이 아직 초록의 잔상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산!

그리고 함께 펼쳐지는 그리움!

다시는, 다시는..

오지 않을 오늘을

그렇게 두 눈에 기억하고픈

오늘이었나 보다.


나는 요즘 안내산악회를 자주 이용한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하는 산행이 재미야 있겠지만

여러번 반복되다 보니 아는 얼굴들이 많아지고

그 안에 다시 작은 관계들이 만들어진다.

끈끈해지고 화목도 생기지만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것들이 자꾸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 사소한 감정선들에서 가끔은 자유롭고 싶어진다.

또한, 여러 사람들의 등력이 모두 다르다보니

한 팀으로 속도를 맞추어야 하는 산행은

즐거운 웃음도 있지만

지루한 기다림도 감내해야 한다.

그런 저런 이유로 하여

가끔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혼자서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두려웠으나 점차 적응이 되었고

그런대로 조용한 가벼움이 싫지 않다.

부지런히 산행을 하고, 하산 후 혼자 즐기는 시간의 여유도

낯선 산행길에 따뜻하게 손 내밀어 주는 산우들도

살아가는 한 방편이 된다.


오늘은 4월 수락산 산행에서 처음 만나 알게 된

산우 한명과 동행을 했다.

참 오랜만에 함께 하는 산행이어서 조금은 낯이 설까 걱정도 했으나

산은 그러한 어색함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6시 30분 지하철 입구에서 만나 화왕산 행 버스를 찾는 데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요즘 주말 새벽 사당역은(아니 전날 밤부터) 산행을 떠나는 버스 때문에 몸살을 앓는다.

300m는 족히 될 것 같은 그 길 위의 버스들의 행선지를 하나씩 확인하면서

내가 오늘 떠날 산행지를 찾는 일부터 시작하게 된다.

까리따스 수녀원을 지나서 맞은편 대항병원은 이미 저만치 뒤에 있는데도

화왕산행 버스는 없다.

이제 2대의 버스만 남았다.

저 2대 중 하나가 내가 탈 버스일 것이다.

맞았다. 버스 행렬의 거의 마지막에 정차된 회색 버스에 오르니 안심이 되었다.

안내산악회는 출발 시간이 되면 기다리지 않고 떠나버리는 특성 상

항상 정해진 시간의 노예가 되곤 한다.

조바심내면서 조금은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맨 뒤 좌석에 몸을 싣는다.

10시 50분경 옥천주차장에 도착을 했다.

대장의 산행 경로 설명에 의하면

오늘 산행은 시작하면서 관룡사까지 2km가 도로길이고,

하산길 또한 2km 도로길을 걸을 거라 했다.

그리 어렵지 않은 산행에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였다.

'오늘 산행도 별 기대할 것이 없다는 말인가?'

살짝 실망스러웠으나

막상 산행을 시작하고 걷는 길은 나쁘지 않았다.

관룡사 뒷쪽 길을 돌아 용선대에서 바라보는 반대편 바위산도 절경이었고

화왕산 정상까지 이르는 4.5km길도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길이어서 숨이 찼다.

아직도 남아 있으려나 싶었던 단풍도 아직 지지않은 나뭇잎들이 고왔다.

어쩌면 11월 말에 찾는 산에는

아무 것도 볼 것이 없을까 걱정했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정상 가까이에 이르러서는 넓은 억새밭 물결이 출렁이고

가슴을 치고 올라오는 신음 소리들 속의 벅차오름

나는 순간 순간 멈추어서 사면을 둘러보았다.


산행 대장은 4시 50분까지 하산을 하라고 했고

내려가는 길목 어디쯤에서

하산주 한잔 마실 여유를 가지려면

부지런히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생각만큼 속도가 붙지 않았다.

하산길은 오를 때와는 다르게 온통 돌산이었다.

누군가는 '엉금엉금'이라 표현을 했고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딛으면서 내려와야 했다.


너무 여유를 부린 탓인지 자하곡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4시 25분쯤이었다.

정확한 주차장 위치를 모르니

내려오는 길에 '토*"이라는 맛집 간판은 보았으나

시간을 어림할 수 없었으므로 일단 지나치기로 하였다.

화장실에 다녀와서는 다시 왔던 길을 급하게 거슬러 올라갔다.

15분 정도의 여유가 있으니 파전에 막걸리 한잔을 할 수 있기를 기대 때문이었다.

운 좋게도 주인 할머니는 영업 종료를 알리는 젊은 딸을 막아섰다.

여기까지 왔으니 맛있는 술 한잔은 해야 한다시며 주방으로 들어가 전을 부치셨다.

그렇게 마신 창녕 동동주와 파전!

오래 오래 오늘을 기억하게 하는 화룡점정 아닐까?


언제까지일지 모르나

어디까지일지 모르나

지금

나는 니가 참 좋다.

그래서 늘 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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