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와 미용실

by 한솔


나른한 오후에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는 것은 소소한 일상의 기쁨이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생각을 고르고 호흡을 조절하면서 반복되는 일상의 단조로움을 다스린다. 계절 따라 핀 꽃들을 맞이하고, 불어오는 바람을 손끝으로 음미하며, 골목길에서 풍겨오는 냄새를 맡으면서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나눈다.
오늘 내 시야에 우연히 포착된 것은 '옛날식 이발소'다. ‘아직도 이런 이발소가 정말 있었구나!’ 놀라움 반, 반가움 반이다. 간판도 '형제이발'이다. 아주 오래 전 지어진 것 같은 단층의 기와를 얹은 허름한 건물 안에 옛날식 그대로 하얀 가운을 입은 이발사가 의자에 누워 있는 남자 손님에게 면도를 해 주고 있다. 신기한 마음에 이발소 주변을 이리 저리 기웃대다가 사진 몇 장을 찍는다.


어린 시절 나의 어머니는 내가 짱구라서 머리통이 예쁘지 않다고 언제나 머리를 짧게 깎아 주셨다. 나는 늘 긴 머리의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어머니는 나에게 긴 머리를 허락하지 않으셨다. 유치원을 다니고 초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도 나는 언제나 '상고머리' 스타일을 고수해야 했다. 일찍부터 스스로 많은 것을 해결해야 했었던 그 시절에 나는 엄마 없이 혼자 머리를 깎기 위해 이발소를 드나들곤 했다.
동네 이발소에 가면 하얀 가운을 입은 잘생긴 아저씨가 나를 의자에 올려놓고 정성스레 머리를 잘라 주곤 했다. 나는 꼭 그 이발소만 갔었는데 그 이유는 잘생긴 이발사 아저씨가 마음을 설레게 해서도 아니었고, 머리를 예쁘게 잘 잘라 주어서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1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 손에 쥐어 주셨는데, 머리를 다 자른 후 내가 이발사 아저씨에게 100원을 내밀면 아저씬 '씩' 웃으며 10원짜리 동전을 하나를 거슬러 주셨다. 그 10원짜리 동전은 어린 나의 눈을 반짝이게 했고 어머니 몰래 사먹는 군것질 거리가 되어 주기도 했다. 그 '10원의 행복' 때문에 다른 이발소는 절대로 가지 않았다.


남달리 교육열이 높았던 어머니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도시로 이사를 하고 그 어려웠던 시절에도 동생과 나를 유치원에 보냈다. 배움에 대한 갈증이 누구보다 컸던 부모님들 덕에 그 자식들은 원하는 만큼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가시던 어머니, 어머니!


『시골 밤하늘에 별이 총총한데 어스름한 언덕배기에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쪼그리고 앉아 있다. 아이는 가끔 고개를 빼고 언덕 너머를 주억거린다. 누굴 기다리는 것일까? 어둠이 한참 기운 후에서야 머리에 꾸러미를 인 여인의 그림자 하나 나타난다. 계집아이는 여인을 향해 달려간다. 여인은 계집아이의 머리를 보듬어 안는다. 여인은 꾸러미에서 먹을거리며 색색가지 옷가지들을 꺼낸다. 그리고 빨간색 작은 코고무신을 아이의 품에 안겨준다. 아이는 고무신을 작은 발에 꿰고 핑그르르 돌고 또 돈다. 얼굴엔 온통 웃음 가득이다. 계집아이의 웃음 너머로 아직 서른도 안 된 젊은 아낙은 목 뒤로 쪽진 머리 위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다. 』


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언제나 머리를 곱게 빗어 넘겨 쪽을 지었다. 사람들은 동그란 얼굴에 쪽진 머리가 참 단아하고 곱다며 추켜세우기도 했고, 한복을 차려 입고 포목점에 앉아 안주인 행세를 할 때는 그 모습이 더없이 잘 어울린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남모르는 아픔이 있었다. 어머니가 서너 살 때 6.25전쟁이 발발하였고 어머니의 아버지는 어린 어머니와 뱃속의 외삼촌을 남겨 두고 전쟁에 징용을 가야 했다고 한다. 그 이후 어머니의 아버지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였고, 전쟁이 끝난 후 어머니의 어머니는 재가를 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동생들을 돌보아야 했던 어머니는 아기를 업고 학교에 다녔노라 하셨다. 배고프고 서럽던 시절에 어머니는 머리에 고름이 맺히고 딱지가 생기는 이유 모를 병을 얻었다고 한다. 변변하게 쓸 약이 없었던 시절에 민간요법으로 독한 휘발유를 머리에 부었고, 그 후유증으로 모근이 상해서 다시는 정수리 한가운데 머리카락이 나지 않았다. 그 후 오십 여년의 세월을 한 결 같이, 어머니는 앞머리를 모두 뒤로 빗어 넘겨서 가운데 빈 정수리를 감추고 쪽을 지셨다. 때문에 미용실에 들러 머리모양을 내는 일은 어머니에게 부러운 사치였을 것이다. 배고픔을 견뎌야 했고 새아버지의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설움보다도 견디기 힘들었던 건 배움에 대한 갈증을 채우지 못한 한이었던 어머니는 자식들을 걱정 없이 가르치려는 일념으로 우리 삼남매의 뒷바라지를 하셨다. 그 때는 그런 것들이 당연한 것들인 줄 알았다. 세월이 흘러 다섯 살 계집아이가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어서야 알아챘다. 그 때, 어머니도 여자였다는 것을. 언제나 어머니인 줄만 알고 살았던 지난 세월이 말할 수 없이 미안하고 측은하다.
세월이 흘러 예순을 넘기면서 얼마 되지 않는 앞머리마저 빠지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가발을 쓰기 시작했고 이제는 조석으로 가발을 손질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언제나 자식들에게 좋은 것 먹이고 입히기 위해 당신 챙기기는 뒷전이었던 어머니! 이제는 허리가 굽고 머리카락은 빛이 바랬건만 오늘도 여전히 자식들 먹을거리를 주섬주섬 챙겨 넣기 바쁘다. 주름진 얼굴에 더욱 깊은 주름을 만들고 수줍게 웃는 얼굴로 "행복하다" 하신다.


오늘 동네 이발소 앞에는 그 때 이발소를 드나들던 작은 계집아이가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졌고 평생 멋 한번 내보지 못한 어머니의 쪽진 머리와 화사했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아주 오래 전 희미해진 흑백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걷던 길을 따라 100미터쯤 거슬러 올라갔을 때 발견한 것은 아주 대조적인 현대식 미용실이다. 주로 남자들의 머리를 잘라 주는 곳인 것 같다. 요즘 젊은 남자들은 이런 데서 머리를 자르나 보다. 아기자기한 색색의 벽장식들이 보기 좋게 꾸며져 있고, 한 귀퉁이에는 소파와 탁자가 놓여 있는 풍경이다. 안에서는 두어 명의 청년들이 잡지책을 보며 한가롭게 앉아 있다. 마치 카페 같은 분위기에 미용사도 세련된 젊은 청년이고 간판까지 '행복한 이야기'다. 젊은 주인은 왜 사진을 찍느냐며 의심 섞인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사진 찍는 나를 느끼면서도 말없이 등을 내어주던 '형제이발소' 아저씨와는 그 모양도 많이 다르다. ‘사람도 세월 따라 익어간다’는 말이 떠오른다.


얼마 전 아들 녀석은 왼쪽 머리 삼분의 일쯤을 스포츠머리로 밀고 오른쪽 머리는 어깨를 넘긴 긴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나타났다. 실용음악을 전공하는 녀석은 유난히 머리에 멋을 낸다. 스트레이트파마를 해서 머리를 기르거나 구불거리는 파마를 하는 것까지는 ‘그래, 개성이겠지.. 젊으니 해 보고 싶은 것도 많겠지..’ 이해를 했었는데 평범치 않은 모양새를 보아주는 데도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다. “머리 모양이 그게 뭐냐?” 하는 야단에 싫은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대꾸를 한다. “뭐가 어때서..” 퉁명스런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사람들이 변했다. 우리의 문화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때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세대의 모습과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중년이나 노년의 시선에 젊은이들이 언제나 곱게 보이지는 않는다. 젊은이들 또한 점점 많아지는 거리의 노인들을 보고 감당해야 미래의 고단함을 가늠할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도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젊은 세대의 무례함을 꾸짖고 세태를 원망하는 문구는 언제나 등장하였다. 그러고 보면, 나 또한 내 부모 세대의 눈에는 걱정거리였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일지도 모르겠다. 이 또한 역사적 흐름의 과정일 것이고 변하지 않고 머물러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테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느 쪽이 좋거나 나쁘다고 혹은 옳거나 그르다고 판단하고 가치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서로 다른 입장에 서있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정서가 조금은 그리울 때가 있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이 지금의 나와 다르지 않았음을’, ‘부모 세대에게도 꿈을 꾸던 젊은 날이 있었음을’, ‘사소한 타인의 친절과 관심에는 한없이 감사하면서도 가족의 변함없는 걱정은 당연하고 귀찮게 여기고 있음을’ 그런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하는 공익 광고들이 유난히 시선을 끄는 요즘! ‘옛날처럼 노력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많은 정보의 홍수와 문명의 이기 속에 얻어지는 편리함과 여유로움 바깥에서 우리가 잃거나 잊어버리는 것들은 무엇일까?’ 때로는 ‘사소한 것들에 집착하느라 너무 큰 것들을 놓치고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된다.
아주 가끔은 컴퓨터도, 텔레비전도, 핸드폰도 없이, 일에 대한 강박도 잠시 내려놓고, 그리고 생각조차 비워버린 채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따사로운 햇볕에 몸을 맡기고 발길이 머무는 대로 숲이 있는 길을 걸어 보고 싶다. 이름 모를 꽃들이 핀 들판을 거닐어 보고, 이제 막 싹이 움트기 시작한 흙냄새를 맡아 보고 싶다.
그러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지나간 것들을! 잃어버린 또 다른 우리의 모습들을!


오늘 같이 아주 오래 전 지나간 사람들을 떠오르게 하는 정겨운 풍경을 우연히 마주하면 그저 참 반가운 마음에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그리고 나는 소망해 본다. ‘나도 누군가의 생각 속에 머무는 반가운 사람이고 싶다.’, ‘나도 누군가의 추억 속에 머무는 정겨운 얼굴이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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