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파랑 세비야
지하철 의자에 넋 없이 앉아서 끅끅 울 땐 언제고, 놀랍게도, 나는 금세 원래의 나로 돌아왔다.
한쪽 팔에는 지하철 자판기에서
뽑아 가지고 온 레이스 감자칩을 끼고,
힘차고 가뿐하게 걸으려 노력했다.
저녁을 먹고
아빠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다 예상치 못하게 나의 지랄을 받아내야 했던 엄마에게도 다시 전화를 걸어 난 괜찮으니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여느 때처럼 갑자기 지랄을 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기력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으나
여전히 캐리어 옆에서 종잇장처럼 휘청 휘청 거렸다.
(이럴 때마다 중학생 때부터 차근차근
부풀려온 나의 체중이 다 헛것처럼 느껴진다.)
몇 개의 횡단보도를 건너 도착지가 눈에 들어왔을 즈음에는 서점에 들어가 여유롭게 책도 구경했다. 스페인에서 중고 책만 샀더니 새 것이 너무 큰 소비로만 느껴져 사진 않았다.
서점에서 나와 ‘이제 역으로 들어가야겠다.’ 했는데 이상하게 그리로 가는 길이 죄다 막혀 있었다.
바로 앞에 역이 보이지만 침착하게 구글 지도를 켜서 경로를 확인했다.
바로 앞에 기차역이 우뚝 서 있는데 그리로 갈 수가 없는 이런 비통한.
눈치껏 기차를 탈 만한 사람을 스캔해 따라가 겨우 역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아, 그리고 유럽이 다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페인은 기차를 탈 때에도 짐 검사를 한다.
또 길을 잃었다.
엄마가 짐 검사는 1층에서 해야 한다고 당부 했었는데 1층에 짐 검사 존이 보이질 않고 왠지 2층에 있을 거 같아서 그리로 갔다.
1층과 2층을 계속 왔다 갔다 하다 피곤하고 불안해져서
그때부턴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계속 물어보기 시작했다.
직원에게 묻고, 캐리어를 끌고 가는 탑승객에게도 물었지만 이상하게도 문제가 바로 해결되질 않았다.
더 돌아다니다 우연히 짐 검사 존을 발견했다.
이 곳에서 짐 검사 할 수 있냐고 물었는데 쿨하게 하라고 해서 검사를 받았다.
맥도날드는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어 엄두를 낼 수 없었고 샌드위치를 파는 카페에서
꽤 오랫동안 줄을 선 끝에
8달러 넘는 연어 베이글을 얻어낼 수 있었다.
출발을 약 20분 남겨두고
모니터에 플랫폼 번호가 떠서 그리로 향했다.
자꾸 애 먹는 얘기만 써서 보시는 분들이 재밌으실지 모르겠다. 하나만 더 쓰겠다.
기차에 타는데 발판이 꽤나 얇고, 틈이 넓고, 높이는 높고, 체감 상 조금 빈약해 보였다.
졸라 큰 캐리어를 들어서 기차 안까지 넣을 수 있을 거 같지가 않았는데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까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
실은 기차 열차 승무원 아저씨가 체구가 크시길래 혹시 도와주려나 했는데 그는 정말 단호하고 프로다웠다.
바로 앞에서 내가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는 동안 그는 차분하고 지루하게 서서 날 내려다보았다.
난 파들파들한 손목을 주무르며 좌석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