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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평 2편

어쭙잖게 배운 놈

by 브라질의태양 Mar 16. 2025



김씨 아저씨의 건강 상태는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 때문에 우울해하셨고 대포차량 범칙금이 현 거주지로 올 때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대포차든 뭐든 일단 본인 명의의 차량을 보유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기초생활수급자 선정도 늦어지고 있었다. 그 외에도 법적으로 이혼한 내용이 없었고, 부모와의 관계 단절이 되었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우선 대포차부터 해결하기 위해 김씨 아저씨를 만났다. 절차가 복잡했고 증명해야 될 것도 많았다. 경찰서와 시청을 오가며 '운행정지명령'이라는 뭔 소린지 모를 어려운 말들을 들어가며 어쨌든 접수도 마쳤다. 다행인 건 복역 중 차량 보험이 갱신된 내역이 나와 명의 도용이었음을 입증할 수 있었다.

“숙제를 하나 끝내고 나니 힘이 쭉 빠지네요. 긴장했었나 봅니다. 오늘 같이 다녀줘서 너무 고마웠습니다.”, “이제 첫 단추를 끼웠으니 잡힐 때까지 기다려봅시다. 아버님 애 많이 쓰셨습니다. 앞으로 좋은 일만 가득할 거예요.”


그리고 밥. 돈이 없어 반찬 하나 제대로 사 먹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람이 먹고는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일주일에 한두 끼 정도밖에 안 되는 적은 양이긴 했지만 밑반찬 서비스를 연계했고 수급비가 나오기 전까지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게 상품권을 지원했다.

밑반찬은 일주일에 한 번, 목요일마다 내가 직접 전달하기 위해 방문했다. 그 외에도 수시로 김씨 아저씨를 찾아가 '하루에 한 번은 나가서 걸으시라.', '식사 잘 챙겨 드시라.', '약 먹을 땐 술 먹지 마시라.' 꼬박꼬박 잔소리를 했다.


어느 한 날은 방 안에서 TV소리는 들리는데 아무리 노크를 하고 "아버님! 복지관 조상현입니다!" 불러도 문을 열어 주지 않는 것이었다.

몇 시간 뒤 다시 찾아가니 그제야 문을 열어주곤 "어이구? 복지사님 오셨었습니까? 제가 잠이 들면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자버린답니다. 그리고 혹시나 돈 받으러 찾아오는 놈들이 있을까 봐 아예 모르는 척할 때도 있어요. 예전엔 자고 있는데 그놈들이 들어와 깨우는데 얼마나 식겁을 했는지 모릅니다."라고 했다.

"아버님 안 놀래시게 제가 올 때는 복.지.관. 조.상.현.입.니.다! 라고 크게 말할게요."라고 안심시켰다.


봄이 지나고 이제는 살짝 더운 바람이 불어올 초여름 즈음 대포차 운행정지명령도 떨어졌고, 수급자 선정도 되어 날씨만큼이나 아저씨의 형편도 조금씩 풀려가고 있었다.

급하게 해결해야 할 숙제들을 끝냈다고 생각할 때쯤 아저씨는 병원 가는 일이 잦아졌다.

아저씨 : "당화색소 수치가 너무 높아서 혈액 청소를 해야 될 수도 있다네요. 지금 입원 안 하면 진짜 죽을 수도 있답니다."
상현 : "아버님, 우선 입원은 꼭 하시고 병원비가 많이 나오면 아버님이 부담하실 수 있을 만큼 부담하시고, 그 외에 병원비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복지관에서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김씨 아저씨의 몸 상태는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입원 기간은 일주일가량이었고 퇴원할 무렵 김씨 아저씨에게 전화가 왔다.

아저씨 : "병원비가 20만원 정도 나왔는데 이거 어떻게 하면 됩니까."
상현 : "아버님 병원비 20만원 중 어느 정도 내실 수 있겠어요?"
아저씨 : "복지관에서 도와준다고 해서 입원했는데 지금 와서 무슨 소립니까. 조금도 병원비 낼 여유가 없습니다."

전화 상이라 그런지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아저씨는 약값 정도를 지불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복지관에서 내기로 했다.

근데 돌이켜 보니 전화 상이라 얘기가 잘못된 게 아니었다. 입원하기 전에 난 아저씨에게 "병원비가 많이 나오면 아버님이 부담하실 수 있는 만큼 부담하시고."라고 얘기했던 게 잘못이었음을 깨달았다.

사례관리 교육을 받을 때 '의존성이 높아질 수 있으므로 당사자에게 모든 걸 다해주면 안 된다.', '하나를 하더라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지 먼저 묻고, 나머지 부분을 도와야 한다.'라고 배웠다.

배운 걸 써먹는다고 했지만 난 대충, 명확하지 않게, 부담하실 수 있을 만큼, 이라고 얘기했고 아저씨는 으레 병원비를 내준다고 생각하셨을 터. 오히려 나에게 배신감마저 느끼지 않았을까.

어쭙잖게 배운 놈 때문에 아저씨의 자존심만 상하게 한 내가 한심스러웠다.


며칠 뒤, 모텔로 돌아온 김씨 아저씨를 찾아가 밥 한 끼 하자고 했다.

아저씨가 먼저 "제 욕심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아껴보려고 그랬는데... 그동안 도와주신 은혜도 모르고 욕심을 부렸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했고

난 "아닙니다. 병원비 부담하는 거에 대해 명확하게 합의하지 않은 제 잘못도 있고 전화상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오해도 생겨 아버님 자존심도 상하게 한 것 같아 죄송해요. 그래도 이렇게 얼굴 보고 서로 이야기하니 좋네요."라고 했고

아버님은 "복지사님 웃는 모습 보니 제가 더 좋네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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