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한 움큼
김씨 아저씨는 2년여간 복역 후 출소하여 3평 남짓한 모텔방에 살고 있었다. 당뇨가 심해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았고 연락하는 가족, 지인도 전혀 없는 상황. 세상에 홀로 남겨진 거나 마찬가지였던 김씨 아저씨를 만나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안간힘을 썼던 이야기.
※ 사례관리
'사례관리'는 당사자를 개별화하여 상당 기간 함께하면서 여러 자원을 활용하여 복지를 이루고 더불어 살게 돕는 일.
"안녕하세요 주민센터입니다. 한국모텔(가칭)에 거주하고 있는 40대 후반 남자분이 계신데 아무 연고도 없고 당뇨 때문에 건강이 아주 안 좋으세요. 식생활도 어려우시다던데 복지관에서 받을만한 서비스가 있을까요?"
보통 주민센터로부터 의뢰가 들어오면 가정방문하여 대면 상담을 먼저 한다. 김씨 아저씨는 핸드폰이 없어 주민센터 직원이 모텔로 찾아가 복지관에서 방문 예정임을 안내했다고 한다.
김씨 아저씨는 복지관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한국 모텔에 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요 바로 옆에 있는 복지관에서 근무하는 조상현 사회복지사라고 합니다." 먼저 내 소개를 하고 식사는 하셨는지,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셨는지, 가볍게 안부를 물었다.
"하는 게 있습니까. 몸도 안 좋고 돈이 없어서 어디 나가지도 못합니다. 나가면 다 돈이니까... 일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처음 만난 김씨 아저씨는 정말로 건강이 심각하게 안 좋아 보였다. 며칠은 굶은 사람처럼 말라 있었고, 안색도 안 좋고, 당뇨 합병증 때문인지 한쪽 다리도 부어있었다. 아직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않아 수급비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경제적으로도 아주 힘들어하고 계셨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이 좀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결혼해서 애들 낳고 하다 보니 안 해본 일이 없어요. 일을 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계속 힘든 날이 반복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신문에 돈 벌게 해 준다는 광고를 본 거예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연락했는데 그게 문제였죠. 사기를 왜 당하냐, 그런 건 바보나 당하지라고 했는데 당하려고 하니까 진짜 이게 사기인지를 내가 모르고 있더라고요. 그놈들 말에 눈이 돌아가 제 신분증, 도장 다 줬지 뭡니까. 투자금이 필요하다고 처음에 100만원, 그다음엔 500만원, 어느새 1,000만원이 되어 있던데 제가 돈이 어디 있습니까. 겁도 없이 사채까지 써서 그놈들한테 갖다 받친 거 아닙니까. 그랬는데 그놈들은 내 명의를 이용해서 대포통장, 대포차 만들어서 사기를 치고 다닌 거 아닙니까. 졸지에 제가 사기꾼이 되어 있더라고요."
김씨 아저씨는 말하는 중간중간에 "아이고, 선생님 잠깐만요." 하고 당이 떨어진다며 옆에 있던 설탕 봉지를 뜯어 한 움큼씩 집어 입안에 털어 넣었다.
"빚은 빚대로 져서 날마다 사람들이 집에 찾아오는 거예요. 제가 도망 다니니까 부모님 집에도 찾아가고... 부모님도 무서워서 이사 가시고 저한테는 연락도 하지 말라고 하고. 그래서 가족들이랑 연락 안 한 지도 수년 됐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와이프도 도망가고 아이들은 보육원에 있는데 보고 싶어도 제 사정이 이러니 잘 가보지도 못합니다... 이거 안되겠다 싶어 차를 렌트해 그놈들 잡겠다고 몇 날 며칠을 다녔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교통사고가 났는데 별거 아니었어요. 살짝 접촉 사고여서 제 전화번호 주고 왔는데 그 사람이 뺑소니로 신고한 거 아닙니까. 졸지에 뺑소니범도 됐지요, 아 근데 그 교통사고 냈던 차 렌트비를 안 내긴 했어요. 그건 잘못했습니다. 그거까지 가중처벌까지 해서 2년 살고 나왔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가히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삶을 살아오고 있었음을. 그러면서도 진짠가? 어디까지 믿어야 되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난 잘잘못을 따지러 온 사람이 아닌 앞으로의 아저씨의 삶을 도와주기 위해 온 사회복지사이기에 의심을 지우기로 했다.
허나 의심하기엔 김씨 아저씨의 목소리는 정직하고 간절하게 들렸다.
"오늘 저를 처음 만났는데도 이렇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부분까지 말씀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복지관에서 도울만한 게 없는지 잘 찾아보겠습니다. 자주 뵈어요!"
3평 남짓한 방안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긴 시간 동안 나는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쩌면 아저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믿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길 바라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