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메시를 세상으로
"아 행님 당연히 괜찮죠. 다음 주에 이순신 공 차는데 같이 오시죠!" 이순신FC 담당자는 친한 후배 사회복지사였다.
진형이에게도 기쁜 소식을 곧바로 전했다!
"진형아 이순신FC에 공차러 와도 된대!", "아 진짜요? 아 좀 부끄러운데 한번 하고 싶네요."라며 부끄러운 듯 나름 기대하는 목소리였다.
일주일 후 이순신FC가 축구하는 곳에 함께 갔다. 이순신FC 담당자는 "우리와 함께 운동하기 위해 처음으로 나온 진형이라는 학생인데 자기소개 부탁해요."라고 했고 진형이는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옆에 있는 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짧게 마쳤다.
솔직히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는 할 수 있을까라고 조금은 걱정했던 것 같은데 그래도 꾸벅 인사까지 하는 모습이 또래 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드디어 이순신FC 첫 데뷔전! 11명 사이에서 서로의 플레이를 다독이며 정신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쳤다.
됐다.
집에서 새벽까지 컴퓨터 축구 게임과 씨름하던 진형이가 이제는 운동장에 나와 상대 선수와 몸 싸움하고 우리 팀이 골 넣었을 땐 함께 기뻐하며 최선을 다해 뛰고 있다. 기특하고, 장하고,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축구하는 모습을 가끔은 꿈꾸기도 했지만, 오랜 시간을 은둔했던 진형이기에 '과연', '설마'와 같은 기대 없는 마음으로 바라보진 않았나. 그래. 내가 해주는 게 아닌 진형이가 할 수 있게 옆에서 방법을 가르쳐 주고 결국 선택은 본인이 할 수 있게 도우는 것. 믿고 응원해 주는 것. 그거면 됐다.
나 혼자 감격에 쓰나미에 휩쓸려 경기를 끝내고 나오는 진형이를 향해 달려가 고목나무에 매미가 매달리 듯 와락 안겼다. "선생님 저 패스 미스를 너무 많이 했어요. 운동은 했지만 아직 체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 상대편 11번 선수 너무 빠르던데요." 첫 번째 경기를 끝내고 나온 진형이는 선수들처럼 눈빛이 진지했고 본인의 플레이와 경기 전반을 복기하고 있었다. 기특하고, 장하고,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잘했어. 너무 잘했어."
그 후 한 달 정도 동행했고 이후에는 진형이가 이순신FC 담당자에게 직접 연락을 받아 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았다. 걸음마를 뗐으니 이젠 스스로 걷고 뛸 수 있게 조금씩, 조금씩, 나의 역할을 줄였다.
이순신FC 회원들의 다정한 격려와 환대 덕분에 진형이는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었고 정기 파트너로 함께 하겠다는 활동 신청서도 작성했다.
축구를 시작한 아들을 위해 어머니께선 새 축구화를 선물했고, 진형이도 생활 패턴을 바꾸고 살도 빼기 위해 식단도 했다. 100kg가 넘던 진형이는 운동을 시작한 지 몇 달 만에 80kg대로 아주 샤프한 청년이 되어있었다.
그러고 어느 날 "선생님 저 사회복지사 되고 싶어요. 저처럼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진형이는 꿈이 없는 친구가 아니었다. 처음 만났을 땐 축구를 못하니 축기 심판이라도 되고 싶어 했고 그 이후엔 돈을 많이 번다는 이유로 택배 기사가, 그리고 이번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하고 싶은 게 바뀔 때마다 왜 하고 싶은지 물었고, 어떤 걸 하든 네가 행복하고 의미 있는 일이었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이번엔 이유도 명확했다.
"사회복지사 되려면 봉사활동을 많이 해야 된다고 하는데 복지관에서 봉사활동할 수 있어요?" 있다마다! 마침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청소년봉사동아리가 있어 새 학기부터 참여할 수 있었고 매 활동마다 지각, 결석 없이 성실히 참여했다.
이순신FC에 안정적으로 활동하고, 진형이의 꿈을 찾아가고 있을 때쯤 사례관리 점검을 통해 '이제는 사회복지사의 도움 없어도 혼자 잘할 수 있겠다.'라는 판단으로 사례관리를 끝내기로 결정했다.
이렇다 할 상담 기술도, 사례관리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던 초보 사례관리사가 진형이를 만나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나날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던 진형이 덕분에 나도 훌쩍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잘했어. 너무 잘했어. 앞으로도 너의 삶을 늘 응원해."
*그 후 이야기
사례관리 종료 후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진형이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 돈을 벌고 싶다.'는 이유로 자퇴를 하고 일자리를 구했다. 진형이도 나도, 고등학교 진학할 때 "다녀보다 정 아니다 싶으면 그때 그만둬도 돼."라고 말했던 걸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도 고등학교는 졸업해야지."와 같은 뻔한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 못했다. 캐묻진 않았지만 아마도 어려운 가정 형편을 이미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던 진형이는 엄마의 도움이 되고 싶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지금은 어엿한 성인이 된 진형이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인이 되었다. 휴가 나오면 소주 한 잔 사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