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는 날
10월 6일, 드디어 집수리 날짜가 잡혔다.
아버님을 만난 지 한 달 보름 만에.
"아버님! 다음 주부터 집 수리한대요! 기분이 어떠세요?"
"아직 실감이 안 난다. 다 니 덕분이다."
"에이 뭐가 다 제 덕분이에요. 아버님이 병원도 잘 다니시고 술도 줄이시고 하니까 집수리 날짜도 잡고 그랬지요."
"우쨌든 고맙습니다. 얼마 안 되지만 내 집이기도 하고 우리 행구가 살 집이니까 공사비에 보태주이소."
불쌍하다고, 힘들다고, 그저 모든 걸 해주는 게 아닌 집주인이 집주인 노릇 할 수 있게 수리비를 일부 부담하는 걸로 이야기 나누었던 적이 있다. 그걸 누님께서 기억하시고 내게 봉투를 건넸다.
집수리는 약 5일간 진행될 예정이라고 했고 그동안 갈 곳이 없으니 입원해서 진득하게 치료 좀 받고(술도 못 마실 테니 잘 됐다고 누님께서 그렇게 좋아하셨다.) 나오자고 두 분이서 결정했다고 한다.
D-Day
아침부터 공사 소리로 온 골목이 요란하게 들썩이고 있었다.
"왔나. 내사 마 가슴이 막 두근두근 거리네. 병원 갔다 오면 공사 끝나 있긋제? 내 진짜 다시 태어나는 날이다."
"아버님이 이렇게 기뻐하시는 거 보니 저도 너무 좋아요! 근데 이 가방은 뭡니까?"
"아! 그래도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있을라모 속옷이랑 로숀이랑 이것저것 좀 필요할 것 같아서 제가 좀 챙겼습니다."
"역시 누님밖에 없습니다!"
설레는 마음 가득 안고 함께 병원에 갔다. 삐 37.9. 삐 38.2. "열이 나서 병원 출입이 안 됩니다. 코로나 검사받으시고 가세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아버님은 멀뚱멀뚱, 두리번두리번하며 살짝 누님 눈치도 보는 것 같고.
바야흐로 코로나가 창궐하던 2020년 10월. 그 말대로 아버님의 갑작스런 발열로 인해 병원 출입부터가 거부된 상황이었다.
치료해야 된다고요. 아니, 갈 곳이 없다고요. 안 그래도 병원에 갇혀 있는 게 싫으시다고, 술도 못 먹으니 입원은 절대 안 하실 거라는 아버님이 어떻게 마음을 먹고 왔는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우짜긋노. 일단 우리 집으로 가자." 누님께서도 실망감을 감추며 나지막이 이야기하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다들 어이가 없는지, 아니면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다들 침묵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집수리하는 것도 매일 보고. 잘 됐네."
"잘 되긴 므시 잘 돼! 나 혼자 지내기도 좁아 죽긋는데 우찌 같이 있을끼고!"
불편한 동거의 시작을 알렸다.
다음 날 누님댁에 찾아갔다.
"아따 나는 진짜 억수로 불편한데 행구는 잠만 잘 자드라니까요! 코는 또 얼마나 고는지!" 기다렸다는 듯이 재잘재잘 고자질하는 누님이 귀여워 보였다.
"근데 행구는 '누나랑 있으니까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TV도 보고, 시간도 잘 가고 좋네.'라고 하드라니까요. 나도 뭐 덜 심심한 건 있었는데 갑자기 같이 지낼라니까 집이 좁아서 답답하네요. 아 그리고 문자 왔는데 코로나는 아니라네예. 문디그튼기 왜 그때 열이 났을꼬."
그다음 날도 누님댁에 갔다.
"같이 지내니까 행구가 너무 착해졌어예. 술 먹으러 안 다니고 내가 박스 주워오면 테이프도 떼주고 도와 줄라는 마음이 얼매나 예삐고 착한지."
"병원에 입원 안 하고 누님 집에 입원을 잘했네요. 누님이 명의네 명의! 두 분이 같이 계시니 보기도 좋아요. 진짜 예전에 비해 아버님 얼굴도 너무 좋아지시고. 이참에 그냥 같이 사세요! 집 공사하고 옆방도 엄청 넓던데요!"
"아예 생각 안 해본 것도 아닙니다. 근데 또 이 집을 두고 우찌 가겠십니까."
병원에 입원을 못해 어쩔 수 없이 누님집에서 지내게 된 게 오히려 좋아. 전화위복! 이때까지 두 분을 만나면서 본 모습 중 가장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애증이 아닌 애정하는 표정과 말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렇게 둘 사이가 조금씩 변화되고 있을 때 공사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우와. 우리집 맞나. 아따 이제 청소한다고 쌔가 빠지겠네." 진짜 다시 태어난 것처럼 아버님은 어린아이와 같이 싱글벙글 웃으시며 집 안 구석구석을 돌아보셨고 누님은 벅찬 얼굴로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오래 감탄하고 오래 기뻐하다 대청마루에 세 명이 조르르 앉아 누님이 사 온 요구르트를 홀짝였다.
"처음엔 어디서 왔는지 의심스러웠는데 한 번, 두 번, 자주 오고, 말도 잘하고, 장기도 두고 하다 보니까 정이 가더라고. 나한테 이런 혜택이 올 줄 누가 알았겠노. 냄새나는 집에 와서 볼품도 없는 나를 만나러 와줘서 고맙다."
"아버님 이런 말도 할 줄 아시고! 잉 저 눈물 나요. 저도 너무 감사해요. 아버님 덕분에 저도 많은 걸 배웠어요. 근데 누님도 덩달아 얼굴이 많이 좋아지신 것 같아요!"
"행구가 진짜 예전엔 술만 먹고 다니고 꼴도 보기 싫었는데 지금은 술도 적게 먹고 말동무도 하니까 심심하지도 않고 좋다."
"근데 너네 복지관 관장은 한 번 안 오나."
"하하하! 아버님 덕분에 눈물이 쏙 들어갔어요. 진짜 관장님도 멋지게 고친 집 보러 오라고 할게요!"
시간이 지나 다시 곰팡이가 얼룩져도, 장판이 상처 나도, 천정에 구멍이 뻥 뚫린대도 두 분이 함께라면 거뜬히 고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후 아버님은 누님 따라 새벽마다 폐지를 주우러 함께 다니시며 "하루에 해야 되는 것이 고정으로 생겨 사람이 게을러질 수가 없는 거라."라고 하셨다.
몇 해가 지난 지금도 집을 잘 관리하고 계시며 가끔 만나 장기를 둘 때면 취하지 않은 아버님을 도무지 이길 수가 없었다.
아버님을 처음 만났을 때 마음먹었던 '약자를 대할 땐 더욱 예와 성을 다해.'
나, 이 말에 조금은 흉내라도 내었다고 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