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신고
"선생님. 행구가 어제도 안 들어왔는데 오늘도 이 시간까지 집을 안 들어 왔어예. 죄송한데 우리 행구 좀 같이 찾아 주모 안되겠습니까?"
누님이 떨리는 목소리로 동생을 같이 찾아달라고 전화가 왔다. 일요일 저녁 7시쯤. "제가 차가 있으니까 박형규 아버님이 갈 만한 데를 같이 돌아봐요!"라고 안심시킨 뒤 누님을 만나러 갔다.
누님은 내게 연신 고맙다 인사하셨고, 동생 욕을 시원하게 했다가, 또 "도대체 어디를 간기고. 걱정돼 죽겠네."라고 하셨다.
집 근처부터 자주 간다던 강구안 일대 등 2시간을 넘게 함께 돌아다녔지만 찾기란 쉽지 않았다.
"누님. 혹시 모르니 실종 신고를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시간도 많이 늦었고..." 우리가 찾는 것보다 경찰이 찾는 게 훨씬 낫겠다고 생각해서 했던 말인데 '실종 신고'라는 말을 들은 누님은 그렁 그렁하던 눈물을 왈칵 쏟으며 "우리 행구 우찌 된 건 아니겠지예?"라고 울음을 터트리셨다.
겨우 진정시키고 가까운 파출소에 들러 실종 신고를 하고 나와 가까운 벤치에 앉았다.
"괜찮으실 거예요. 얼마 전에 저랑 같이 병원 갔다 오면서 '집수리하는 날, 내가 다시 태어나는 날이다'라고도 하셨다니까요." 누님을 너무 위로하고 싶어 아무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행구가 그런 말을 했어예? 아이고 마 다시 태어나기 전에 죽으삔거 아입니까. 행구가 참... 애가 착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무이, 아부지 일찍 돌아가시고 제가 맏이라서 동생들 다섯을 우찌 우찌 다 책임져야 했었어예. 과일 장사할 때였는데 다른 동생들 아무도 안 도와주는데 행구만 무거운 거 있으면 옆에 와서 거들어 주고 말도 예쁘게 하고 그랬지요. 지도 빨리 집에 보탬이 되고 싶었는지 17살 때부터 한 20년 동안 배를 탔지예. 그 뒤로는 조선소에서 근무하면서 늦게 와이프를 얻어 가 결혼을 했지요. 그것도 제대로 된 아가 아니었어가지고 좀 살다가 지 딸을 데꼬 집을 나갔다입니까. 그게 한 2년 전인데 그 뒤로 행구가 저 지경이 되삣지요. 어느 날은 '배 타러 가야 되는데, 바닷가가 어느 쪽이었지?'하고 일하러 가야 된다고 짐을 챙기고... 이상한 소리를 한다입니까. 방안에 멍하니 앉았다가 '내가 우짜다가 이리 됐노.'라고 하는데 참 마음이 아팠어예. 그러다가 또 술 쳐묵고 들어오면 그렇게 화가 날 수가 없고예! 선생님한테는 집 수리하는 날 다시 태어나는 날이라고 했다고예? 병원 갔다 온 그날예? 저한테는 '누님 폐지 그만 줍고 이제 나랑 좀 놀러 다닙시다. 산책도 다니고.'이라더라니까예. 참나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우짜든 간에 행구가 병원 진료도 잘 받고 수급자도 되고 하면 저도 폐지 안주울라고예. 저도 몸이 아픈 데가 한두 군데가 아입니다. 암튼 선생님 만나고 나서 확실히 술을 좀 줄이긴 했어예. 수시로 '그 젊은 총각은 언제 온다노.'라고 물어예. 아이고 그 젊은 총각이 이렇게 니를 찾을라고 몇 시간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어디 있노." 하시고 또 눈물을 흘리셨다.
박형규 아버님의 삶을, 누님의 삶을, 이 둘의 삶을 난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어쩌면 서로가 서로의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었던 그들의 삶. 얼마나 가닿아 그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아니 내가 뭐라고 위로를 한담. 그저 지금보다 조금은 나은 삶을 사실 수 있게 잘 도우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했다.
다음 날 아침 누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행구 찾았어예! 강구안 골목 구석에 자빠져 자고 있다입니까! 아... 얼마나 다행인지... 우찌 그리 또 화가 나는지! 친구들이랑 이틀 동안 술 쳐 묵고 정신 못 차리고 있다가 제가 찾은 거 아입니까. 친구가 아이지예. 그 동식이라는 놈이 있는데 맨날 우리 행구 술 심부름이나 시키고 이리, 저리 데꼬다니는 놈이 있는데. 아이씨 참말로 속상해서!", "정말 다행이네요! 누님이 경찰보다 더 빨리 찾으셨네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우짜든간에 감사합니다. 우리 같이 점심 먹어예. 오늘은 제가 꼭 사겠습니다!"
휴 다행이다. 나도 아버님이 너무 보고 싶었다. 밥도 같이 먹고 싶었다.
"아버님 걱정 많이 했어요. 진짜 진짜 다행이에요. 이제 막걸리 좀 그만 드시고, 막걸리 색깔 나는 이 숭늉 드세요!" 되지도 않는 농담에 두 분이 웃어 주셨다.
"내가 잠깐 미쳤었는갑다. 근데 술 먹던 사람이 갑자기 술을 아예 안 먹으면 진짜 큰 일 난다니까. 참나 그래도 나 살았는지 죽었는지 걱정해 주는 사람이 두 명이나 있네. 하하."
누님은 "문디새끼. 그래도 예전엔 행구가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병원도 안 가려고 했는데 지금은 병원도 잘 가고 건강도 많이 좋아졌는데... 다시는 술 처 묵고 길바닥에서 자빠 자기만 해봐라!"
된장찌개 국물보다 얼큰하게 으름장을 놓으시고 크게 밥 한 숟갈을 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