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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수리하는 데 장기를 왜 둬요? 3편

집수리하는 데 장기를 왜 둬요?

by 브라질의태양


"복지사님, 집수리하는 데 장기를 왜 둬요?" 진행 상황을 공유하기 위해 주민센터 직원을 만났다.

"아, 네. 오늘이라도 당장 공사를 시작하고 싶지만 일방적으로 저희가 집수리를 해 드리고 아버님이 바뀌지 않으시면 두세 달 뒤면 결국 지금처럼 또 집이 엉망이 될 것 같습니다. 조금 더디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왜 집수리를 해야 되는지, 집수리 이후에도 내 집이라는 생각으로 유지해 나가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아 아버님이 잘하시는 장기를 두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진짜 요즘은 술도 좀 줄이신 것 같다니까요!"

담당 주무관은 집수리가 하나도 진행 안된 거에 대해 놀라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아버님 댁을 방문해 장기를 둔다는 사실에 의아해했지만 내 대답이 끝나고 나서야 "대단하십니다."라고 하셨다.

대단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을 이겨내 보려고 술도 조금씩 줄이고 있는 아버님과 옆에서 도우는 누님, 그리고 장기 두는 걸 상담하는 시간이란 걸 인정하고 응원해 준 복지관이라고 생각했다.

난 그저 장기를 둘 줄 아는 내가 조금 기특할 뿐이었다.

여하튼 처음엔 누군가 집에 온다는 게, 약속이 있다는 게 익숙지 않아 못 만나고 오는 날도 부지기수였지만 꾸준히 하는 것 말곤 달리할 줄 아는 게 없어 계속 찾아갔다.


아버님과 장기를 둔지 보름쯤 지났을까. 본색을 드러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아버님 집수리를 하려면 계획서 같은 거를 써야 되는데 그거 어렵다입니까. 저도 어려운데."
"그라모. 그런 거 나는 모른다."
"그래서 제가 우찌 잘 적어 볼 거니까 아버님은 저한테 말씀만 해주세요. 어디 어디를 고쳤으면 좋겠는지, 수리하고 나면 이 집을 어떻게 관리할 건지 하고요."
"집이야 뭐 비가 새니까 천정을 좀 고쳤으면 좋겠고, 벽지랑 바닥도 엉망이고... 이틀에 한 번은 빗질을 해야지."
"우짜든 간에 집을 깨끗이 치우고 나면 아버님이 건강해야 관리도 잘하실 거 아입니까. 술도 두 잔 먹을 거 한 잔만 묵고! 다리도 불편하신데 치료도 받아야 집도 잘 지킬 거 아입니까."
"술은 조금씩 줄이고 있다. 병원... 지금은 엄두가 안 난다."
"혼자 병원 가기 힘드시면 누님이나 저랑 같이 가요. 에이~ 아버님 이래 가지고 집 지킬 수 있겠습니까?"
"내가 또 하면 하지."
우리 이제 좀 친해진 듯. 농담도 하시네.


그러고 며칠 뒤 집수리를 위해 업체와 함께 아버님 댁에 방문했다.
"공사를 진짜 하긴 할낀가베."
"그럼요. 아버님이 말씀 잘해주셔서 계획서도 잘 준비하고 있어요. 청소도 잘하신다고 하셨잖아요."
"이제 청소한다고 쌔가 빠지겠네."
"하하! 근데 오늘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아 보이세요. 내일 병원 같이 가보실래요?"
"그라던가."
"아버님 저랑 약속하는 거예요! 내일 꼭 같이 가요! 손가락 걸고!"


병원 가기로 한 날. 아버님이 댁에 안 계시면 어떡하지. 또 술 드시고 못 가신다고 하면 어떡하지. 내가 언제 병원 간다고 했어!라고 하면 어떡하지. 어떡하지 병에 걸린 나는 아버님 댁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까지 주문을 외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웬걸! 오랜만에 외출이라고 말끔히 면도도 하고 샤워도 했다는 아버님. "왔나."라고 밝게 웃으며 "오늘 병원 갈 거라고 술도 안마싯다."라고 자랑하셨다.

한 손에는 지팡이, 한 손엔 내 손을 잡고 절뚝이며 병원으로 한 발 한 발 들어갔다. 어떡하지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X-ray며 CT며 여러 진료를 본 후 결과를 기다렸다. 내내 내 손을 잡고 있던 아버님은 "쫌 긴장되네."라고 혹시 모를 결과가 나올까 맞잡은 손에 걱정을 나눠 잡고 있었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으나 자주 넘어져 타박이 심했고 술을 많이 마셔 속도 걱정이 된다고 주사와 함께 이것저것 약을 처방받아 왔다.


병원 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버님. 제가 왜 아버님 만나는지 아세요?"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려고 오는 거 아이가."
"아이고 아버님도 참~ 음... 아버님은 지금 생활하는 거에 만족하세요?"
"만족은 무슨 만족. 엉망이지."
"제가 아버님을 만나는 이유는 아버님이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생활하실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기 위해 만나는 거예요. 그리고 건강도 회복해서 집을 잘 관리해서 집을 지킬 수 있게, 예전처럼 집이 또 안 좋아지면 안 되잖아요."
"집 수리하는 날, 나는 다시 태어나는 날이다. 암튼 고마워 미치긋다. 누가 이리 와서 병원도 같이 가주고 찾아보고 하겠노. 오늘 고생 많았다."
"아이고 저도 고맙습니다. 내가 맨날 잔소리해도 아버님이 저를 또 좋아해 주시니까 올 때마다 저도 기분 좋게 있다가 가요. 오늘은 병원 갔다 온다고 장기 못 뒀으니 내일 한 판 해요!"
"은냐."

아버님이 기분 좋게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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