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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ent designer Apr 16. 2021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법

호텔 vs 민박

봄내음을 싣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코 끝을 스친다. 제법 따뜻해진 날씨까지 한몫 더해 마음을 간지럽히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5세 4세 2세 우리 집에 같이 사는 귀여운 애들 이름은 여름, 하늘, 바다.

8살 조카의 말을 빌리자면 자연 삼총사. 자연 삼총사와 함께 하는 여행은 즐겁다. 누군가는 "어휴, 애 셋을 데리고 여행은 무슨 여행이야"라고 하겠지만 우리는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꼭 주어야만 하는, 꼭 주고 싶은 것 들을 발견하기 위해서 종종 집을 떠난다.


우 리 들 의  어 느  멋 진 날.  (호캉스)


로비에 들어서면 세련된 재즈 음악이 흐른다. 문 하나 통과했을 뿐인데 다른 세상에 들어온 느낌이다. 큼지막한 라운지체어에 편안한 차림으로 여유롭게 앉아 있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체크인을 한다. 호텔 직원의 단정하고 정중한 대접에 괜스레 우쭐해진다. 폭신 거리는 카펫이 깔린 긴 복도를 지나 방으로 들어서면 두 번째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일상의 걱정이라곤 한 톨도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이 깔끔하게 정리된 방과 시원하게 펼쳐진 오션뷰 까지, 새하얀 호텔 침대에 몸을 던지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진심 어린 탄성을 내뱉는다.

"아___ 좋다!"


"엄마아아아!"

그럼 그렇지, 아이들이 여유를 만끽하게 둘 리가 없다.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키즈룸과 수영장 투어를 시작한다. 체력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놀고 놀고 또 놀고 난 후에야 겨우 방으로 돌아온다.  커다란 욕조에서 함께 따뜻한 거품목욕까지 즐기고 나면 몸과 마음이 노근 노곤 해 진다. 보스락 거리는 호텔 침구에 누워 아이들을 재운다. 이불의 적당한 무게감이 아이들을 포근하게 하는지 금세 잠이 든다. 완전히 잠든 걸 확인하고 나면 살금살금 빠져나와 무드등을 켠다. 이제부터는 어른들의 시간. 남편과 나는 준비해온 와인과 치즈를 그럴듯하게 차려놓고 창밖의 야경과 침대 위의 아이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와인잔을 부딪힌다.


여 행 은  살 아 보 는  거 야 ! (에어비엔비)


한적한 시골 동네의 골목길을 구비구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작은 단층집이 보인다. 인상 좋은 주인 내외분과 귀여운 강아지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한다. "먼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아이들이 온다고 해서 방을 미리 데워놨는데 따듯할지 모르겠네" 다정한 한마디는 처음 만난 사이의 낯섦을 한순간에 무장해제시킨다. 방에 들어서자 바닥이 뜨끈뜨끈하다. 주인분의 따뜻한 마음까지 더해진 온기가 몸과 마음을 녹여준다.


할머니 집에 온 것처럼 금세 적응한 아이들은 마당에 나와 마음껏 뛰어 논다. 맑은 공기와 넓은 마당 귀여운 강아지 까지,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어둑어둑 해가 지면 주인집에서 밥 짓는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배가 고파진 우리도 밥을 지어먹는다. 어느새 밖이 깜깜해진다. 이불장에서 꺼낸 보드라운 극세사 재질의 꽃무늬 이불을 깔고 토닥토닥 아이들을 재운다. 아이들이 잠들면 역시나 어른들의 시간이 시작된다. 오는 길에 동네슈퍼에 들러 산 막걸리 한 병을 들고 마당으로 나온다. 남편과 나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한 밤하늘의 별을 안주 삼아 막걸리잔을 부딪힌다.


호텔 여행이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에 가보는 거라면 민박여행은 다른 사람의 일상 속에 잠시 다녀오는 느낌이다. 둘 중 어느 쪽이든 여행은 좋다. 새로운 공간에 가고, 다른 시간을 살고,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경험들이 삶을 충만하게 만들어 준다.


아이들에게 꼭 주고 싶은, 꼭 주어야만 하는 건 아주 작고 사소한 '행복의 순간들'이다.


여행 가기 전날 밤의 설렘, 엄마 아빠의 들뜬 표정, 사각거리는 호텔 침대 속에서의 부드러운 촉감, 재즈음악이 흐르는 세련된 공간의 기억, 뜨끈뜨끈한 구들방의 온도, 새벽녘의 풀벌레 소리, 시골 동네의 아침 공기 냄새.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집 문을 열었을 때의 안도감 까지.  이런 작은 기억들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훗날 작은 일에도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크고 대단한 행복 말고 작은 행복을 자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가지지 못한 것에 미련을 두기보다는 주어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지금의 우리도 그러하기를.








내일, 곰돌이빵 작가님은 '연필'과 '펜' 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모호한 경계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 6인이 쓰는 <선 긋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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